사방에 꽃 피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꽃은 단지 날씨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식물의 반응일 뿐 아니라 한 생명이 생겨나서 결실에 이르게 되는 생장 과정의 중요한 징표이다. 꽃이 지면 열매가 열리고, 또 다음 생장을 위한 씨앗도 잉태된다. 그래서 식물의 생장 과정에서 꽃은 피어난 현상 이상의 근원적이고 순환적인 의미를 갖는다. 일찍이 인간은 식물 생장의 과정과 현상을 파악하고 식물의 꽃과 잎, 열매와 뿌리의 생김새와 생장 과정의 특징에 은유를 통한 문화적 의미를 부여해왔다. ‘은유적 상징’에 해당되는 이러한 의미는 고금을 막론하고 시와 소설, 그림과 공예, 생활과 공간, 풍속 등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소재이다. 특히 생활용품과 공예품의 모양이나 무늬로 장식되어 기물의 용도를 좀 더 드러나게 하거나 귀하고 특별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꽃은 이러한 장식의 소재 가운데 단연 으뜸으로 등장한다. 파주관 개방형수장고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타워 수장고에는 도·토기, 석기 재질의 다양한 용도의 민속유물들이 있다. 이 봄, 파주관 열린 수장고에 놓여 있는 유물들을 돌아보며 수장고에 피어있는 꽃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봄의 전령, 매화
2층 맨 끝의 11수장고 8장의 2단에는 꽃이 핀 매화나무 두 그루가 묵직한 돌로 된 두 개의 화분에 장식되어 있다. 바닥 중앙에 물빠짐 구멍이 있고, 낮은 다리를 달았다. 화분 몸통의 장식처럼 매화를 심었던 것일까?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짙은 잿빛 돌 화분에 하양, 분홍 매화가 피었을 모습을 상상해 보니 무척이나 멋스러웠을 것 같다. 매화는 아직 찬 기운이 가시기 전 잎이 없는 가지에서 소담스러우면서도 눈부시게 화사한 꽃을 피워 다가오는 봄의 기운을 알리는 꽃이다. 일생 동안 은거하며 지낸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 초봄에 장안 동쪽에 있는 파교를 건너 산으로 들어가 눈이 채 녹지 않은 나뭇가지에서 처음으로 피는 매화를 찾아다녔다는 ‘파교심매灞橋尋梅’ 주제는 엄동설한과 싸우면서 피어난 매화나무의 고결함으로 은유되어 조선시대 선비들의 글과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다. 봄의 전령으로서 매화는 민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동해안별신굿 제단에 매화가 제단화로 올려지는데, 봄이 아닌 다른 계절에는 매화를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구나 노리개, 비녀 등에 장식된 매화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한쌍의 원앙이나 꿩이 곁들여진 매화는 남녀 간의 사랑과 가정의 화목으로, 번성한 매화나무의 꽃과 동자는 다산의 상징으로, 고목이 되어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는 건강과 장수의 상징으로 두루 사용되었다.
부귀공명富貴功名의 꽃, 모란
수장고에 핀 꽃 중에 단연 으뜸은 모란이다. 어느 수장고를 가던 모란이 장식된 유물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파주관 현관을 들어서면 정면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는 5수장고에 놓인 해주항아리에는 실제 크기만 한 모란으로 장식되어 있다. 모란은 키가 큰 꽃대가 올라와 탐스럽게 큰 꽃이 핀다. 강렬한 붉은 색의 꽃이 크기마저 크니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유물의 모란은 대개 청화로 그려져 푸르거나 먹색일 경우가 많은데, 실물과 다른 색일지라도 탐스러운 꽃모양으로 모란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모란은 ‘꽃 중에서 부귀한 것이다牡丹花之富貴者’라 하여 화왕花王 또는 부귀화富貴花라 불렸다. 신라의 선덕여왕에 얽힌 모란이야기는 모란의 전래와 더불어 상류층의 꽃, 귀한 꽃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켜준다. 조선에 들어 성리학을 근본으로 했던 선비들은 화려한 꽃의 모양과 부귀나 미인과 연관된 모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사회경제적 환경과 신분제의 변동이 활발했던 19세기에 이르러 ‘부귀’ 지향적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모란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꽃 자체로 마당의 한켠에 심겨 감상의 대상이 되었으며, 문양으로 흉례와 길례의 의례용품을 장식하거나 장엄하는데 사용되었다. 특히 부귀를 상징하는 꽃으로서 모란은 새로운 인생의 출발인 혼례용품을 장식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왕가의 가례嘉禮를 장식했던 모란 병풍은 민간에서도 사용하였고, 신부의 혼례복에도 모란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수저집, 바늘꽂이, 골무, 베갯모 등 신부의 혼수품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식문양이 모란이다. 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모란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적지 않은 생활용품에 장식으로 등장했다. 파주관의 1층 5수장고와 2층 9수장고에 있는 20세기 초반의 단지와 요강에는 대담한 필치로 모란을 그려놓았는데, 모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도식화되고 간략화 되었지만 탐스러운 느낌만은 여전히 남아있는 모습이다.
군자의 꽃, 연
대표적인 목재 민속유물 소반, 떡살, 반닫이를 모아놓은 16수장고는 파주관의 백미로 관람자들에게 인기 좋은 곳이다. 수장고 벽면을 가득 메운 격납장의 스케일감에 이끌려 16수장고에 들어가면 사각의 진열대에 열병한 군사들처럼 놓여진 소반을 마주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그게 그거 같아 보여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하나 다른 모양과 장식의 소반들이다. 그들 사이에 유난히 빼어난 자태를 보이는 소반이 있다. 상인지 꽃 모양 장식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연꽃 모양의 일주반이다. 잎맥으로 가득 찬 연잎 모양의 상판은 잎도 되고 연못도 된다. 그 안에 연꽃 봉우리가 피어나고 물고기, 거북이도 산다. 연꽃은 더러운 연못에서 깨끗한 꽃을 피운다하여 선비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불교에서는 연꽃이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 피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함을 상징한다고 하여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긴다. 민간에서는 씨앗을 많이 맺는 연의 특성에 주목해서 연꽃을 다산의 징표로 보았다.
은일자의 꽃, 국화
개방형수장고 가운데 가장 많은 꽃 문양을 볼 수 있는 곳은 16수장고에 떡살과 다식판이다. 떡과 다식의 장식은 둥근 모양이 많아서인지 유난히 꽃과 잎을 장식한 예가 많다. 꽃술이 있는 중앙 부분을 중심으로 360°로 가지런히 펼쳐진 꽃잎 모양이 평면을 장식하기에 알맞아서인지 선과 면으로 된 모양틀의 문양에 많이 등장한다. 중앙에 꽃 모양을 새기고 주변을 다양한 문양대로 두른 것도 있고, 꽃잎의 선을 살대처럼 무수한 선으로 표현해서 도안화한 장식도 있다. 문양화된 것들이 보니 도식화되어 있지만 국화과의 꽃 모양을 다양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이다. 여러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여름이 아닌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국화의 특성을 빗대어 ‘오상고절傲霜孤節1)’,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은일자의 모습에 비유해 ‘군자의 꽃’이라 했다. 무릇 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 국가와 임금에 충성을 다하고, 물러나면 귀거래하여 자연에 은거하는 삶을 이상적으로 여겼고, 도연명이 그랬던 것처럼 집안에 국화를 손수 심어서 가꾸기도 했는데 모두 국화가 지닌 오상고절의 은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양기가 가득한 날,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국화주를 먹고 높은 산에 올라 노는 풍습이 있었다. 전통 혼례의 초례상에 송죽이나 사철나무 장식과 함께 계절에 따라 꽃도 함께 장식했는데, 가을에는 국화를 장식했다고 하며, 회갑 잔치에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국화꽃을 바치기도 했다. 요즘의 풍속에서도 국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언제 시작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장례식에 흰색 국화를 헌화로 사용한다.
1)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절개를 지키다
글 | 김윤정_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