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심효윤(국립아시아문화전당 연구조사과 학예연구사)
왜 김치는 한국 사람들에게 각별할까. 나 역시 김치와 함께 자란 사람이라, 김치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외국인의 눈을 잠시 빌려보자. 세계적인 음식 평론가 메이 친Mei Chin은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어떤 음식이 김치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의 절반이라도 미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김치 사랑이 얼마나 특별하게 보였으면 이런 평가가 나왔을까. 실제로, 한국의 한 유력 언론은 한때 배추 흉작을 ‘국가적 비극’이라 표현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병사들을 위해 김치 통조림이 개발되었고, 2008년 국제우주정거장에 처음 파견된 한국인은 특수 발효된 김치를 챙겨갔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정부가 이 ‘우주용 김치’를 준비하는 데 수백만 달러를 들인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우주의 방사선 환경은 유산균의 변형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와는 다른 방식의 안정적인 발효 기술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김치는 왜 한국인에게 단순한 반찬 그 이상일까. 비닐하우스도 수입 채소도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김장을 했다. 가을이면 배추와 무 같은 채소를 소금에 절여두었고, 이렇게 저장한 채소는 한겨울과 이듬해 봄까지 비타민과 무기질을 공급해 주었다. 발효를 이용한 이 저장 방식에서 김치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김장은 단순한 음식 준비가 아니었다. 한겨울을 함께 날 가족과 이웃들이 마당에 모였다. 배추를 씻고, 무를 썰고, 양념을 비비는 손끝에서 사람들의 체온과 땀이 함께 버무려졌다. 그렇게 담근 김치를 항아리에 눌러 담고 뚜껑을 덮을 때, 시큼하면서도 짜릿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그 순간부터 김치는 천천히, 그러나 살아 있는 방식으로 익어가기 시작했다. 발효를 발명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발효가 우리를 창조한 셈, 그야말로 ‘사회적 발효’였다. 이러한 전통 지식과 공동체 문화의 가치는 2013년,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김장독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었다. 김치의 발효와 숙성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학적 도구였다. 김치의 종류와 조리법은 집집마다 달랐지만, 기본 원리는 같았다.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인 뒤, 고추와 마늘 등 갖은 양념에 버무려 항아리에 담고, 자연스럽게 숙성되기를 기다렸다. 김치는 항아리 안에서 서서히 익었다. 젖산균이 증식하며 젖산을 만들어내고, 이 성분이 김치 특유의 시원하고 깊은 맛을 만들어냈다.

김치광은 보통 부엌 뒤에 만들어 사용했는데, 주로 경기도나 충청도 지역에서 많이 이용했다. 자주 드나들기 편하도록 거적문을 설치해 작은 집 형태로 만들었다.(황헌만)
특히 고춧가루는 단순히 매운맛만 더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치 속 유해균의 성장을 억제해, 신선함을 오래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충분히 익은 묵은 김치는 깊은 감칠맛을 냈고, 예부터 별미로 사랑받아 왔다. 호남 지역에서는 이렇게 오래 숙성되어 곰삭은 맛을 ‘게미있다’ 혹은 ‘게미지다’라고 표현한다. 김치나 젓갈이 잘 익어 맛이 제법 들었다는 뜻이다. 단어 하나에 쌓인 시간과 풍미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표현이다.맛있는 김치를 오래 먹으려면 발효 과정에서 온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김치가 얼고, 반대로 높으면 금세 쉬어버렸다.
우리 선조들은 겨울철 땅속 온도가 약 -1℃로 일정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래서 김장독을 땅에 묻고, 그 위에 짚을 덮은 작은 움집 형태의 ‘김치광’을 만들어 찬바람을 막았다. 영하 10℃의 혹한에도 땅속 김장독은 –1℃ 안팎 온도를 유지했다. 이 온도는 젖산균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김치를 맛있게 익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또한 숨을 쉬는 옹기 독은 발효 중 발생하는 탄산가스를 적절히 배출하고, 일부는 국물에 스며들어 미생물의 활동을 조절해 주었다. 그 덕분에 김치는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지혜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한겨울에도 신선한 김치를 즐길 수 있었다.
한국인의 김치 사랑은 김치만을 위한 특수 냉장고 개발로까지 이어졌다. 김치냉장고는 김장독의 원리를 계승한 기기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냉장 기술이다. 이는 주거 환경의 변화와 함께, ‘부엌’에서 ‘주방’으로 바뀐 생활문화의 흐름을 반영한 발명이기도 했다. 도시화와 아파트 문화의 확산으로 장독대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김치를 제대로 보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김치냉장고는 김장독의 핵심 원리인 온도와 습도 조절 기능을 현대 기술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내장된 센서와 냉각 기술을 통해 김치를 가장 맛있고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김치냉장고는 1984년 금성사(현 LG전자)의 ‘GR-063’ 모델로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집집마다 장독을 사용하는 문화가 남아 있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보급의 전환점은 1995년, 만도기계가 ‘딤채’를 출시하면서 찾아왔다.
딤채의 성공에는 뛰어난 성능뿐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아파트 건설 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도 대량의 김치를 담가두고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김치냉장고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늘어났다. ‘딤채’라는 이름도 흥행에 한몫했다. 조선 성종 6년(1475년)에 기록된 김치의 고어 ‘딤채’는 전통과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명으로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김치냉장고는 웬만한 가정에 한 대쯤은 있을 만큼 보편적인 생활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아현동 고개 김장시장의 모습.
김장시장은 김장철에만 특별히 열리는 임시 시장을 말한다.
(김한용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김치냉장고의 핵심은 전통 김장독 환경의 재현에 있다.
첫째, 김치냉장고는 저장 공간 자체를 냉각하는 직접 냉각 방식을 사용한다. 이는 전통 항아리에서 흙이 냉기를 머금고 서서히 전달하던 방식에서 착안한 설계다. 일반 냉장고는 냉기를 팬으로 순환시키는 간접 냉각 방식이기 때문에 공간 전체를 식히는 데 유리하지만, 내용물 주변의 온도 변화는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김치냉장고는 저장실 벽면에서 냉기가 가까이 닿도록 설계되어 내부 온도 편차를 최소화고, 김치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마치 온돌이 바닥을 직접 덥히는 것처럼, 김치냉장고는 냉기를 가까이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통 원리를 계승한다.
둘째, 김치냉장고는 숙성과 저장을 정교하게 관리한다.
내부 센서와 입체 냉각 기술을 통해 약 -1℃의 적정 온도를 꾸준히 유지하며, 유산균의 과도한 증식을 억제해 김치 맛의 급격한 변질을 늦춘다. 일부 제품에는 초기에 15℃ 안팎에서 발효를 유도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1℃로 전환해 장기 저장에 적합하게 만드는 자동 숙성 모드도 탑재되어 있다. 셋째, 항아리형 저장실 구조는 전통 김장독에서 착안한 설계다. 뚜껑을 위에서 여닫는 구조는, 차가운 냉기가 공기보다 무겁다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위쪽에서 문을 열고 닫으면 냉기의 유출을 막을 수 있어 내부 온도 차이를 최소화하는 데 유리하다. 이는 장독의 입구를 좁게 만들어 외부 공기와의 접촉을 줄였던 전통 방식과 닮았다.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김치냉장고가 보급되면서 가정에서는 사계절 내내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김장 노동의 부담도 크게 줄었다.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딤채 김치냉장고
모델(디자인코리아뮤지엄)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1908~2009는 ‘요리의 삼각형’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원주민 신화 속 조리 방식과 상징 체계를 분석해 조리 행위를 ‘날것’, ‘익힌 것’, ‘부패한 것(삭힌 것)’으로 분류했다. ‘익힌 것’은 날것의 문화적 변형, ‘부패한 것’은 날것의 자연적 변형이다. 이 구분은 ‘가공된 것과 가공되지 않은 것’, ‘문화와 자연’이라는 두 대립축을 따른다. 레비-스트로스는 직화는 자연에 가깝고, 삶기는 문화에 가깝다고 보았다. 직화는 음식이 불에 직접 노출되기 때문에 익힘이 고르지 않고, 조리 방식도 즉흥적이다. 반면 삶기는 냄비라는 도구와 물이라는 열 전달 매개체를 사용해 조리 과정이 간접적이고 균일하게 이뤄진다. 그가 가장 문명적인 조리 방식으로 본 것은 ‘훈연’이었다. 훈연은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음식 속 깊이까지 천천히 익히며, 장기 저장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김치라는 발효 음식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김치냉장고를 접했다면 무엇이라 말했을까. 발효는 장독이라는 문화적 도구를 사용하고, 젖산균이라는 미생물,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요소가 결합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문화적 조리 방식이다. 훈연보다도 발효가 더 문명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은 말한다. “뭐니 뭐니 해도 김치 맛은 땅속에 묻은 김장독이 최고지!” 그 말에는 단지 맛에 대한 고집만 있는 게 아니다. 가족의 입맛에 맞춘 김치를 직접 마련해 먹던 전통, 이웃과 함께 김장을 하며 나눴던 공동체의 기억, 그리고 사람의 손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어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김치 담그기의 60%는 사람이 하고, 나머지 40%는 미생물, 공기, 곰팡이, 효모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완성하기 때문이다.

김치 양념을 비비는 손끝에서 사람들의 체온과 땀이 함께 버무려진다. (Wikimedia Commons)
김치냉장고의 탄생은 단지 편리함을 추구한 결과가 아니었다. 전통 지혜의 현대적 계승이자, 한국인의 김치 사랑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진보였다. 하지만 김치의 맛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기술의 영역 너머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김치는 사람이 절반을 만들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완성하는 음식이다. 그 발효의 시간과 공간을 품어준 것은 숨 쉬는 질항아리와 땅속이라는 자연의 품이었다. 김치냉장고가 온도와 습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지만, 미생물들이 서로 경쟁하고 공존하며 발효를 완성해가는 자연 생태계의 복잡성과 생동까지 재현할 수 있을까? 기술은 발효의 조건을 설계할 수는 있어도, 맛의 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우리가 진짜 되찾아야 할 것은 온도를 맞추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 아닌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