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민속놀이

끈 하나로 세계가 연결되는
실뜨기 놀이와 고무줄놀이

글 편해문(놀이터 디자이너)

실뜨기 놀이와 고무줄놀이는 누가 만들었을까? 만든 사람이 있다면 왜 만들었을까? 궁금함이 생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따로 있다. 이 두 놀이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중동, 아프리카, 유럽에서 고루 발견된다는 것이다. 단순함에서 시작해 복잡함으로 나아가고 그 복잡함은 혼란이 아니라 놀이의 몰입이라는 대명제에 다다르게 한다는 점에서 실뜨기 놀이와 고무줄놀이를 새롭게 보아야겠다.

풍속화 고무줄놀이

실뜨기와 고무줄, 인류의 보편적인 놀이
실뜨기와 고무줄은 끈 또는 줄이라는 매우 단순한 것을 도구로 쓰는 놀이다.
둘의 공통점은 또 있다. 사용하는 도구는 한없이 단출한데 그 쓰임이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다. 두 놀이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가장 큰 동력임이 틀림없다. 나아가 놀이를 할수록 참신함 또는 창조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어 재미와 즐거움을 증가시킨다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영어로는 ‘String figures’로 쓰는 실뜨기 놀이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보편적인 놀이이다. 인디언, 호주 원주민, 아프리카 줄루족, 북극 이누이트, 몽골 등 전 세계에서 고루 발견된다. 인디언에게 실뜨기는 놀이를 넘어 무언가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실뜨기는 여러 문양과 도형 그리고 입체적 구조로 이야기를 만들고 전승하기도 한다. 문화를 오랜 시간 연구한 인류학자인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에 따르면 1888년 이전 전 세계 실뜨기 놀이 도형은 천 개에 가깝다고 보고하고 있을 정도이다.
현대에 와서도 실뜨기 놀이에 관한 관심과 전승은 인위적인 학습을 거치지 않아도 전승 집단인 어린이 스스로가 실뜨기 놀이의 재미와 만나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수많은 민속놀이가 지도와 권장 또는 학습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과 다른 매우 특이한 점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우선은 재미를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도구가 간단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좁은 장소와 자투리 시간에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어린이가 선택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춘 셈이다.
더불어 실뜨기 놀이는 패턴과 공간 이해, 손가락이라는 소근육 발달을 자연스럽게 증진하는 효과가 증명되고 있음도 함께 볼 일이다.

외국 어린아이의 실뜨기 모습

고무줄놀이와 실뜨기의 놀라운 유사성
고무줄놀이와 실뜨기 놀이는 형태의 유사성이 특히 눈에 띈다. 시작하는 모습이 거의 같다고 할 정도이다. 다른 점은 손에 걸고 하느냐 아니면 다리에 걸고 하느냐 정도이다. 고무줄놀이는 놀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무줄’이라는 전통 사회 이후에 발명된 소재를 이용하는 놀이이다. 물론 고무줄이 있기 전부터 있었던 놀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무줄이 발명된 이후의 이 놀이는 거의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그것은 고무줄의 탄성 즉 늘어나는 성질을 이용하여 고무줄놀이의 다양한 솜씨, 다른 말로 하면 스킬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발전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무줄 소재의 안전성 또한 신체적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여 지금 생각해도 고난도 기술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고무줄놀이로 발전하게 되고 이러한 놀이를 하는 누나나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매력을 한껏 느낀 동생들이 따라 하게 되면서 단단한 전승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고무줄놀이는 항상 노래와 함께했다.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안타깝게도 6.25를 배경으로 한 노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나, 가곡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등등의 성인이 부르던 노래가 차용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과 분단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반대로 이것과 결을 달리하는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서’와 ‘간질간질간질 발가락이 간지러워 병원에 갔더니’와 ‘킹 공 주 마 마 납 신 다(짠 월 화 수 목 금 토 일)’로 이어지는 언어 유희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놀이를 놀이로만 하지 않고 놀이와 노래가 함께 어우러져 재미가 배가되는 짜릿함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처럼 당시에는 가장 뜨거운 유행이었고 그런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한다는 것은 팬덤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전부터 있던 놀이에 당대의 시대상과 음악 문화가 결합해 고무줄놀이에 자양분이 이전된 셈이다.
고무줄놀이하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기억에 박혀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높이는 도저히 발끝으로 걸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였다. 어느 정도 높은가 하면 외줄 고무줄놀이에서 가장 어렵다는 ‘하늘’이라는 것이었는데, 고무줄을 잡고 있던 두 사람이 손끝에 고무줄을 쥐고 머리 위로 뻗어 암담할 정도로 높이 고무줄을 올리는 고무줄놀이의 거의 마지막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단계였다.
옆돌기하면서 발끝으로 공중에 가로놓인 고무줄을 낚아 와야 하는데, 정말 손가락 한 마디가 모자라 동네 누나들이 ‘죽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누나 차례만 오면 틀림없이 발끝에 고무줄을 걸고 땅에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에 환호성이 저절로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래서 자세히 살폈더니 그 누나는 나름의 기막힌 솜씨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기술은 이랬다. 느리게 보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들어주시라. 옆돌기를 해서 몸이 땅과 거꾸로 일직선이 되면 땅을 짚고 있던 손을 순간적으로 쭉 밀어 올려 손끝으로만 땅을 짚는 것이 아닌가. 그 한마디 차이를 넘어서는 그 누나의 솜씨는 가히 신기에 가까워 내 눈과 기억에 각인이 되었다. 이 기억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틀림없다. 고무줄놀이하는 누나들이나 구경을 하는 우리나 모두 놀이에 너무나 몰입했다는 점이다. 나의 기억이 착각이라면 순전히 그것은 놀이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장면이 어제 본 것처럼 떠올라 잊을 수 없다.

외국 어린이들의 고무줄놀이

한국 어린이들의 고무줄놀이

단순함과 무한한 가능성에 매료
네팔 카트만두에서 실뜨기를 여학생들과 아주머니들께 부탁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우리가 어려서 주거니 받거니 했던 실뜨기와 똑같은 날틀이니, 바둑판이니, 실패니, 젓가락이니, 베틀이니 도굿대니 하는 것이 순환했다. 옛날에 누군가 이렇게 먼 카트만두에서 우리나라로 이사와 알려줬나?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이 카트만두로 가서 알려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그때 느꼈던 것은 소박한 의미에서 ‘인류애’였다. 여학생과 실뜨기를 주고받으며 웃는 가운데 우리는 무언가 비슷하며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복잡한 장난감을 더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종류의 장난감을 더 자주 사주는데 이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당장은 장난감의 기능과 색깔과 소리에 아이들이 좋아 어쩔 줄 모르지만, 이러한 호기심은 이내 사그라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장난감들은 뜯어보면 그 속이 매우 복잡하지만 놀다 보면 쓰임이 단조롭다는 것을 곧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짧은 실 하나, 고무줄 하나로 하는 실뜨기 놀이와 고무줄놀이를 오래도록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 까닭은 고무줄놀이나 실뜨기가 지닌 재료의 단순함과 놀이의 열린 성격 때문이다. 이런 놀이는 한 가지 놀이 방법에만 머물거나 갇히지 않고 놀이하는 아이들이 얼마든지 다른 모양의 놀이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개방성을 지녔다. 지역마다 다양한 실뜨기 놀이와 고무줄놀이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창의성’을 고민하는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해야겠다.
전통을 다시 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네팔 여학생들의 실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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