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경식(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국립민속박물관은 직원들이 현지를 찾아가 조사·연구한 결과를 모아 조사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2024년 12월에 발간한 『전통 향신료와 농민문화』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세 가지 향신료 고추, 마늘, 생강을 주제로 전통 지식과 주민들의 삶, 그리고 세 가지 향신료 관련 다양한 사회상을 다뤘다.
초기 이 조사보고서는 마늘을 주제로 각지 마늘 재배지의 특성과 차이, 소비 관행, 농민문화를 다루려 했지만 ‘전통 향신료’로 주제를 변경해 대부분의 한식에 쓰이는 고추와 생강도 함께 다루어 더 폭넓은 자료를 담아냈다.
‘전통지식’이라는 관점
‘전통지식’이라는 용어는 본래 인문 분야에서 사용하지 않아서 대중에게 생소한 용어였다. 1992년 생물다양성 협약에서 사용되었고 2010년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됨에 따라 해당 용어가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는 농축산식품부 주도하에 2012년 전후 농업유산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조경학자들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통지식은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이어온 지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는 ‘농경·어로 지식’이 있다. 2003년 유네스코 유산체제가 확립되면서 기존 관습, 표상, 표현, 지식, 기능 등 무형적인 것이 포함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무형유산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기존에 다루지 않던 전통적으로 전승되던 농경과 어로 지식이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 조사보고서에서는 기존에 사용되었던 전통지식과 새로 바뀐 무형유산법의 관련 내용을 근거로 들어 조사·연구 배경을 가지고 전통 향신료를 다뤘다.

영양의 수비초 고추밭

마늘 손질하는 단양의 농부들

서산 생강밭
전통 향신료 관련 전통지식의 전승 양상
이 조사보고서는 크게 고추와 마늘, 생강을 다뤘다.
고추의 경우, 고추 재배지로 유명한 경북 영양 지역을 중심으로 고령의 농민들이 고추의 형태와 맛 등으로 고추를 구분했던 방법, 그리고 고추 씨앗을 받는 방법, 재래종이 사라지게 된 배경을 다뤘다.
마늘의 경우, 경북 의성과 충북 단양을 주 조사지로 선정하여, 재배 방법의 차이를 다뤘다. 예부터 마늘이 논에서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옛 자료와 농민들과의 면담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단양에서는 마늘을 재배할 수 있는 논은 그렇지 않은 논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의성에서는 기존 관개시설을 활용해 논에서 재배하던 마늘의 면적을 확대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등 두 지역의 재배 방식 변화에 대해서 주목했다. 그리고 단양의 마늘 농가를 중심으로 농민의 일기와 면담으로 현재 이루어지는 노동 관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서술했다.
생강의 경우, 전북 완주와 충남 서산을 주 조사지로 선정하고, 재배 및 보관 방식의 모습을 다뤘다. 옛 문헌과 근래에 나온 조사보고서를 통해 전북 완주 봉동읍 일대가 조선 전기부터 유명한 생강 산지였으며, 전통적으로 아궁이 밑에 굴을 파서 저장하는 방식을 확인했고 이와 같은 방식은 1930년대 완주의 생강과 함께 서산으로 전파됐다.
두 지역의 공통점은 생강 저장 방식의 변화다. 집 밑에 굴을 파서 생강을 보관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저장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직굴이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가스 질식 사고 위험이 큰 수직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평굴로 변화했다. 이러한 공통점 중에 차이점도 존재했는데, 수평굴을 조성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완주 봉동에서는 산의 경사면을 파고 들어가 굴을 만들었으나, 서산에서는 산의 경사면을 깎아 굴을 만들고 콘크리트로 조성하는 것이 큰 차이다.
이러한 변화 양상을 살핀 것은 전통지식이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전승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승 주체들이 시대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통지식을 전승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농민, 주민의 삶과 사회상을 다루다
이 조사보고서에서 다룬 고추, 마늘, 생강을 통해서 사회상도 읽을 수 있다. 1987년 가을 갑자기 찾아온 고추 가격 대폭락은 농심을 성나게 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각종 농업정책에 대해 농민들의 불만이 터졌다.
당시 고추 시위로 떠들썩했던 전남 무안, 전북 임실, 경북 영양을 찾아 관련 내용을 담아냈다. 이와 함께 현재 농민들이 사용하고 있는 마늘 파종기가 도입되는 과정도 살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소형 마늘 파종기는 2000년대 찾아온 마늘 파동과 관련이 깊다. 당시 한·중 무역 협상으로 중국산 냉동 마늘의 대량 수입이 결정됨에 따라 마늘 재배 농민들은 궐기대회를 갖고, 정부 청사를 항의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에서는 마늘 농가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소형 마늘 파종기를 개발하게 됐다. 당시 이러한 과정을 농민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조사자들은 고추 시위와 마늘 파동 등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는 농민과 주민을 인터뷰하고, 각종 사진과 신문 자료, 연구자료를 인용해 시대상을 읽어내고자 했다.
그 외에 과거 생강 재배 농민이 전국을 다니면서 생강을 팔던 이야기, 순창의 고추장 체험 농가의 코로나-19 극복 이야기와 고추장을 만들어 파는 노부부의 이야기, 경북 영양 산골 주민들의 시절식 고추죽, 그리고 지역에 따라 마늘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 개발과 지역 시장 활성화 사례, 생강 재배에 나선 귀농인 사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