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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큐레이션

내 마음 속 효의 잔해 발굴
『한국 효문화의 이해』

“나혼산”은 일본말이 아니다. “나 혼자 산다”라는 짧은 문장을 더 짧게 줄인 우리말이다. 어느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나·혼·산. 이 세 글자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혼산은 단순한 신조어가 아니다. 데이터가 웅변한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2022년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4.5%인 750만 2천 가구이다. 약 1년이 지난 2024년 3월, 전국 1인 세대 수는 1천2만 1천413개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아니라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이다. 1인 세대 ‘1천만’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1인 세대 조사에서는 60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60대는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50대와 60대를 함께 일컬어 ‘낀 세대’라고 부른다. 그들은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들은 부모에게 효를 다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자식들로부터 효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기라도 한 듯 『한국 효문화의 이해』라는 책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효라는 낱말 대신 ‘부양’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효행장려법>(2017년)에서도 “효란 자녀가 부모 등을 성실하게 부양하고 이에 수반되는 봉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효 개념과 결이 무척 다르다.

효란 무얼까? 어떻게 생겨났을까? 효는 자연스러운 인간 감정의 발로일까,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산물일까?

『한국 효문화의 이해』 | 김덕균(지은이) | 2024 | 시아북

이 책의 1장을 펼쳐보자. 효라는 글자가 생겨난 유래, 효라는 아이디어가 동양 사회에서 보편적인 테제가 된 연유를 갑골에 힘들게 새긴 서툰 필획과 청동 기물에 주조된 아름다운 무늬를 추적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은나라에서 발생한 효 개념의 씨앗이 주나라에서 뿌리내리는 과정을 고대의 문자 숲에 난 오솔길 따라 휘적휘적 되짚고 있다.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보자. 한국인이라면 퇴계와 율곡, 그리고 다산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현대인들은 조선의 석학들이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지혜를 배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고 말한 효는 낯설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저자는 조선의 지성들이 실천한 효행을 마중물 삼아 가족과 부모의 존재에 대한 상념을 끌어낸다.

1인 사회라는 외로운 섬들의 다도해에서, 특히 효도할 부모도 이제는 곁에 없을 만큼 제 스스로 늙어버린 비혼들의 외딴섬들, ‘나혼산’의 바위섬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고 웹툰같이 쏠쏠한 재미는 기대하지 마시라. 1인 가구에게 ‘인생’이 발부한 가족 의미의 소환장이 기다릴 터이니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효는 개인의 차원을 한참 넘어서 있다. 우리 사회에서 효는 이제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거론되고 있다. 독거노인의 사회안전망으로서 시행되는 복지는 국가 정책의 일환이지만, 예전 같으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회적 효는 이제 한 사회와 국가의 안녕을 위한 주요 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왕이 통치하던 신분사회에서도 조선의 역대 임금들은 효행 정책을 매우 중시해 왔다. 이 책 『한국 효문화의 이해』는 역대 왕들의 효행 정책을, 그중 세종의 경우를 들어 해부하고 있다. 세종은 그림과 글로 이루어진 『삼강행실도』를 편찬해 백성들의 효행을 장려한다. 계기는 ‘김화’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패륜 사건에서 비롯한다. 이는 효를 가장 중시하던 조선 사회가 발칵 뒤집힌 지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삼강행실도』는 당시 궁벽한 시골의 어린아이와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온 백성이 보던 필독의 그림책이다.

효행 정책 시행은 유교 국가 조선만 그런 건 아니다. 그 이전에 불교가 흥성하던 시절의 고려와 삼국시대에도 통치 세력은 효도하는 풍속을 적극적으로 권장했을 이 책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즈음에서 되묻는다. 효는 자연적 산물인가, 정치적 고안물인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천 년 이상 이어져 온 불교의 시대, 출가의 시대에도 효의 전통은 지속되어 왔다. 이 시대에 불교적 효행, 유교적 효행, 전통적 효행이 융합된 채 연속성을 이어왔다는 저자의 통찰은 새겨들을만하다.

1년 전에 실시한 한국리서치의 <2023 종교인식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교인구의 비율은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 종교 없음 51%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절반가량이 자신이 믿는 종교가 있다고 고백한다. 기독교의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이다. 유교식으로 번역하면 “네 부모에게 효도하라”이다. 이 책 『한국 효문화의 이해』에서 기독교의 십계명과 유교적 전통의 효가 어떻게 융합될지에 대한 전망이나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저출산의 시대에도 효는 이어질 것이다. 효의 페르소나가 21세기 우리 사회에 어떤 형상으로 등장할지 미지수다. 현재와 같은 양상이라면, 1인 가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1인 가구의 운명은 또 어떠할지 아무도 모른다. 가이아의 분노가 인류에 대한 복수로 이어지는 인류세가 가속화될 때 더 이상 자연 출산이 불가능해지는 디스토피아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때에도 효는 여전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우리 마음속에 파묻혀 있는 한국 효문화의 잔해를 발굴했으면 한다. 『한국 효문화의 이해』라는 작은 삽을 들고서…


글 | 김재경_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민속소식』 202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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