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인 1946년 개관한 국립민족박물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 시간 수도 서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의 민속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해왔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현대인들의 생활문화를 기록하며, 한국인들의 문화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켜온 것입니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많은 것이 집중된 나머지, 다른 지역의 정체, 쇠퇴, 소멸을 걱정하게 된 것입니다. 박물관을 비롯한 문화 인프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토의 균형 발전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큰 과제가 되어 있는 지금, 국립민속박물관은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특별시로 이전해 국가와 지역에 새로운 문화적 희망을 부여하는 더 큰 모색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31년을 목표로 세종시에 신관을 지어 이전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중추 문화 국가로 우뚝 설 대한민국의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완전히 새로운 문화 향유의 장을 여는 일입니다. 이러한 새 문화 공간은 중남부권 지역의 핵심 국립 문화 시설이 되어 이 지역 주민들의 문화 접근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지역문화와 세계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이해를 드러내는, “세계로 열린 창”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문화를 중심으로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비교함으로써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해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이로써 새 국립민속박물관은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아 인류 사회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국립민속박물관은 세계의 여러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이를 토대로 세계를 이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데 무한한 영감을 주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 박물관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다양한 관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용적인 박물관을 지향합니다. 저마다의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박물관 입구에 도착한 관객들이 지체 없이 편리하게, 단 하나의 계단도 오르지 않고, 전시실과 강의실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문턱 없는 박물관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어린이와 노인이, 반려동물까지도 언제든지 찾아와 이야기꽃과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정감 넘치는 박물관을 꿈꿉니다.
새 박물관은 세종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금강과 제천이 만나는 곳에 건립되기에 두 물줄기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경관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건물의 외양이 하천은 물론 주변의 중앙공원과 멀리 전월산과 잘 어우러져서 이 지역의 훌륭한 경관 요소가 되어야 하며, 건물 안에서도 하천과 그 주변의 경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상 이변에 따른 하천의 범람 위협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설계가 필요합니다.
8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 온 국립민속박물관은 세종시의 국립박물관단지 안에서 다른 신생 박물관들의 리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아울러 소장품 17만여 점과 아카이브 자료 106만여 점을 보유한 국립민속박물관은 여러 박물관의 선두에 서서 박물관단지로 관객들을 유치하는 제1의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새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단지 내 다른 박물관 건축과 적절한 관계를 설정하면서 설계해야 합니다.
끝으로 새 국립민속박물관 청사가 소장품 보관·관리, 전시, 교육, 조사·연구, 사무 등 여러 기능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설계되기를 바랍니다. 이용자와 운영자가 쓰기에 가장 편리한, 가장 기능적인 건물이 가장 아름다운 건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건물 주변으로는 전통 가옥 등 대형 전시물을 건립할 옥외 전시 공간도 고려해야 합니다. 모쪼록 건축이 공공에 이바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건물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 장상훈_국립민속박물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