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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개념의 변화와 가치 확장이
민속박물관 변화의 열쇠

2023년은 국립민속박물관이 현재의 자리인 경복궁 선원전 구역으로 이전하여 개관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종시로 이전 계획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과거에 쌓아온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도모해야 할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이 글은 2023년 9월 19일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최한 「미래 박물관의 역할」 국제학술대회에서 류정아 연구위원이 발표한 내용을 발췌하고, 이후 추가 인터뷰를 진행한 후 정리하였다.

소통하는 창조적 콘텐츠, 민속
류정아 연구위원은 문화정책, 축제, 관광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 6월, 20여 년간 몸담았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정년퇴직 후 초빙석좌연구위원이라는 직책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강의, 정부 사업 평가, 컨설팅, 자문 등 퇴직 전부터 하던 일을 계속하는 한편, 축제 성수기인 가을철을 맞아 전국을 누비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부와 대학원 과정 모두 정통 인류학을 공부하였지만 류정아 연구위원의 관심은 언제나 민속 영역과 맞닿아 있다. 하회마을 탈놀이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 축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문화관광연구원에 재직하는 동안 지역, 문화, 축제, 관광을 아우른 연구 영역을 다루어왔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지역민의 삶과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인 전통과 민속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연구 현장에서 체감한 민속은 죽어있는 과거의 잔존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석사과정생 시절 우연히 탈 전시회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탈은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아를 표출하는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탈과 탈놀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탈놀이는 국문학이나 민속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원형’이라는 실체에 가깝게 다가가는 연구에 집중하던 때였죠. 탈놀이에서 말하는 양반, 상놈, 백정은 더 이상 없고 탈놀이를 하는 사람도 더 이상 노비 신분을 가진 것도 아닌데 탈놀이 연구는 여전히 과거에 연행하던 시대적 맥락에서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현지 조사를 했던 1980년대에는 탈춤패가 탈놀이를 즐거운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연행자들은 지역의 ‘고유문화’를 전승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탈놀이라는 민속적 자원은 과거의 문화적 흔적이 아니라 현재 문화의 반영체였던 것인데 기존 학계에서 받아들이는 것과 향유자들의 관점 차이가 저한테는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었죠. 민속을 계속 유지하고 널리 알리는 작업은 민속적 원형 보존보다는 민속이 우리 고유자원의 우수성과 지역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공동체의 구심점임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민속 콘텐츠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무기
류정아 연구위원은 ’국립민속박물관 확대·이전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에 참여한 계기로 외부인이지만 내부 구성원만큼 민속박물관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민속박물관의 미래를 논하기 이전에 민속박물관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2023 국립민속박물관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류정아 연구위원

“일반적인 역사 계열 박물관과는 다르게 민속박물관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다루고 있으며 유물 중심이 아닌 콘텐츠 중심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박물관입니다. 그렇기에 박물관의 미래상을 그릴 때 일반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민속박물관만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민속자원을 박물관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민속자원 그 자체를 대중이 보러 오는 동력으로 삼아서 관광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합니다.”

류정아 연구위원은 양적인 규모만 늘리는 것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며 민속박물관이 발전적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에서부터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박물관이 갖지 못한 민속박물관만의 콘텐츠인 민속과 민속의 확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민속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닌, 우리 일상과 함께 숨 쉬는 개념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학계와 민속박물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속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골동품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박물관에서 보여주는 ‘민속’은 여전히 소외된 객체이자 보존된 유물의 모습으로만 드러나는데, 일상적 생활문화로 현대인의 삶과 연결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속이 삶을 대변하고 살아 숨 쉬는 문화라는 것을 민속박물관의 구성원들과 연구자들은 관념적으로 알고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민속박물관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민속에 대한 인식이 중요합니다.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서 외국인 관광객 숫자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내국인 방문 비율이 높고 지속적으로 찾는 박물관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반 대중 사이에 민속자원과 스토리가 주목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는데, 이를 유도하는 촉매제는 민속박물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꼽는 민속박물관의 가장 큰 성과는 어린이박물관이다. 민속 콘텐츠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제공함으로써 미래의 관람 수요층을 발굴함과 동시에 살아있는 민속의 저변을 넓히는 성과라 보았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강조하는 박물관, 미술관 활성화 정책, 문화예술 공간 정책과 관련하여 여러 연구 사업을 수행하던 중 민속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이 상당히 운영이 잘되고 참여율도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민속박물관이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러 오는 사람들이나 해외 관광객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민속자원을 처음으로 체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중에게 민속자원이 인정받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대단히 기뻤습니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세종으로 이전, 서울 잔류, 서울 또는 지방 분관 설립 등 국립민속박물관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다양하고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류정아 연구위원은 민속박물관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변화는 필연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당부한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뒤처지는 것이지요. 실질적으로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모르겠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이 이전한다면 현재와 같은 시스템과 규모, 운영 방식으로는 절대 안됩니다, 세종 확대·이전 기본계획 수립 연구에서 민속의 국제화, 민속의 창조적 가치 창출을 위한 융복합 학문적 연계, 관련 교육시스템 구축과 인력양성, 국제적 인력교류, 민속박물관과 민속학의 연계 등을 강조했던 이유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민속학과 민속박물관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전통,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학제적 논의와 지식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고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고 있습니다. 민속의 동시대성을 강조할 때 민속자원의 의미와 가치확장은 진정한 발전 방향을 정립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민속학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정책결정자들의 한계, 민속학적 자원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 다양한 기관들 간의 협의 부족, 학문간 소통 부족 문제 등 다양한 소요들이 뒤얽혀 있습니다.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본관과 어린이박물관 전경

민속박물관의 미래에는 한계가 없다
민속자원은 그동안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다루어져 왔고 국내에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악귀’, 국외에서는 영화 ‘코코Coco’ 등 성공 사례를 통해 활용 가치와 문화적 힘이 증명되었다. 민속이 기존의 틀을 탈피하고 다른 분야와 접목을 통해 활로를 찾는 것은 박물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선진 박물관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민속자원을 주요 소재로 하는 박물관들은 좁은 학문적 범주를 탈피하고 인접 학문과의 긴밀한 협력을 시도하는 추세이다. 민속 개념의 변화와 가치 확장이 민속박물관 변화의 열쇠라고 보는 류정아 연구위원. 그가 그리는 민속박물관의 미래에는 한계가 없다.

“민속의 현재적 가치를 찾아가는 작업, 현재의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와의 지속적이고 창조적인 협업, 다양한 학문 분야 전문가들과 협의 등을 부지런히 추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변화에 성공할 의지가 있다면 민속 엑스포, 민속 비엔날레, 민속 산업전 등 민속박물관이 새롭게 할 것들이야 많지요.”


글 | 류정아_한국문화관광연구원 초빙석좌연구위원
인터뷰·정리 | 김옥천_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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