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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걸어갈 길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의
협업으로 기대하는
우리의 미래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이창언 교수의 활동영역은 비단 문화인류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속, 문화재, 사회인류학까지 아우르는 그는 그래서 한국의 민속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모신 이달의 손님, 이창언 교수를 만나 민속과 문화인류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역사인류학적 전통을 잇다
이창언 교수를 가리키는 가장 대표적인 소개는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라는 문장이다. 1970년대 말, 문화인류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해서 동문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학과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남대 문화인류학과는 문화인류학 관련 학과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1972년에 개설되었습니다. 고고학, 민속학, 사회인류학을 아우르는 교과과정을 운영해 왔으며, 대학원 과정에 이 세 전공을 모두 개설한 전국 유일의 학과이기도 해요. 저는 이 학과에 입학해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군 생활과 박사후과정 이수를 위해 캐나다에서 1년 보낸 것을 제외하면 줄곧 학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창언 교수는 선배 교수님들이 영남의 지역연구에 기초한 사회와 문화의 지속과 변화에 중점을 둔 역사인류학적 전통을 이어왔다며 자신 또한 이러한 학문적 전통을 잇고 있다고 첨언했다. 현재 이창언 교수를 가장 바쁘게 만들고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BK4단계 사업에 선정되어 ‘지역 재생을 위한 문화유산 큐레이팅’이라는 아젠다로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고 그 가치의 현재적 의의를 찾아냄으로써 현대의 위기를 넘어 바람직한 미래를 구상하는 것을 목표로 대학원생들과 함께 연구 중인 것, 또 하나는 올 초 한국문화인류학회 제27대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인류학은 민속학처럼 필요성에 비해 저변이 약한 편입니다. 전국 10여 개 남짓 대학에 전공이 설립되어 있지만, 문화인류학의 방대한 연구영역에 비해 전공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에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학회의 힘을 모아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 환경 위기와 재난, 공간과 사회의 양극화 등 급변하는 상황에 따른 산적한 과제 해소와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에 인류학의 역할을 제시하는 계기를 조성하는 것을 과업으로 생각하며 학회장에 임하고 있습니다.”

민속박물관과 문화인류학의 공통과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민속 전문가로도 꼽히는 그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그가 생각하는 민속박물관과 문화인류학의 관계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문화인류학회가 설립된 1950년대 후반부터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문화인류학은 한국의 사회와 문화의 구조, 그리고 그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민속학의 주요 연구영역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지요. 1950년대에 국립박물관에서 도서 지역 조사를 실시했는데 문화인류학 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도서 지역의 고유한 풍습과 민속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후 한국의 민속문화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조사라 할 수 있는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의 간행에도 많은 인류학 전공자들이 참여했지요.”

이창언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1990년대 말엽에 조직과 기구를 확대하면서 사라져가는 민속문화의 현장과 유물을 발굴·수집·정리하는 작업, 연구기능을 대폭 강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면서 당시 다수의 인류학 전공자들이 학예사로 참여, 국립민속박물관의 기능 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창언 교수는 이 같은 관계성을 이야기하며 향후 민속박물관과 문화인류학의 공통 과제의 중요성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다문화가구가 전체 가구의 5%에 이른 지금 한국사회는 상이한 문화 사이의 충돌을 방지하고 상호 이해를 제고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상황에서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도모하는 노력에 민속박물관과 문화인류학은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민속박물관에서 실시한 ‘재외동포의 생활문화 조사 연구’를 의미 있는 성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도 초국가시대, 이주와 디아스포라와 같은 개념이 사회적으로 언급될 당시 전 세계에 걸쳐 현지 조사를 실행함으로써 시대를 앞서가는 연구 활동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지지일 터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이 더욱더 확대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세종시 이전과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이창언 교수 역시 할 말이 없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민속학 전공자들과 인류학 전공자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수도 서울에 박물관이 소재해야 국내외 수많은 관람객이 보다 편리하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접할 수 있다는 것에서 기인했다고 사료됩니다. 그럼에도 세종시 이전이 확정되었고, 아쉬움을 상쇄할 수 있는 다양한 계획도 수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령 서울 전시관은 이전하여 운영하더라도 지방 분관의 설립을 확대하는 계획이 수립된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국립민속박물관의 기능도 더욱 확대되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발굴과 보존과 전승을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예컨대 동해안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소금을 생산하던 토염은 이미 생산이 중단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최근 이를 발굴하여 문화재로 등록했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을 수 있으니 서둘러 진행해야 할 작업입니다.”

이창언 교수는 무엇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연구와 교육의 기능이 더욱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오사카에 국립민족학박물관이 대학원과정을 운영함으로써 조사, 연구, 교육의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하고 있는 데, 국내 대학에서 민속학과가 거의 사라진 현실을 고려할 때 국립민속박물관이 심화된 교육 기능을 겸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세계민속문화관을 운영하는 방안도 해봄직하고, 서울을 비롯해서 영호남 지역에 분관을 설립하는 계획에 대해서도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왕이면 영남권 분관은 경산지역에 설립되기를 희망한다”는 이창언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지역 분관의 설립을 계기로 분관들이 해당 지역에서 지역연구에 관심을 둔 민속학과 인류학 전공자들의 연구 활동의 중심 무대로 작용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22년 발간한 다문화 조사보고서

이창언 교수는 민속을 두 가지 측면으로 바라보았다. 하나는 역사 없는 사회나 민족이 없듯이 특정 민족이나 종족집단의 민속문화 역시 현재의 집단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알아야 하는 부분으로 민족이나 종족의 정체성을 논할 때 생활문화를 포함한 민속문화에 반영된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민속이 지니는 가치, 즉 옛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을 지속하는 모습에 담긴 인식과 실천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기획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 한국 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그 지역에서 생활하는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나서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거 지역사회의 자치 규약이었던 향약이나 협동 관행이었던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전통문화에 내재한 소중한 가치는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될 수 있습니다. 향약, 두레, 품앗이 등이 단지 박제화된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으로서만 인식될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현재, 나아가 미래 우리 모두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다루는 민속학은 인문학의 한 부분으로서 반드시 존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민속학을 조금 더 거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발전적 방향을 제시하는 이창언 교수. 그에게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이란 우리 민족의 삶이 지속하는 한,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일상적’이고도 ‘위대한’ 가치임에 틀림 없어 보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바라는 점이요? 민속박물관은 그동안 한국의 전통문화 보존과 전승에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향후 근대나 산업유산 부문에도 관심을 지금보다 좀 더 가져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다문화사회로서의 한국 사회를 고려하여 세계민속문화관이나 국내 거주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정의 비율을 고려한 민족별 민속전시관의 설립이나 전시회 개최도 고려해주기를 희망합니다.”


글 | 이창언_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인터뷰·정리 | 이경희_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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