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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한국전쟁의 아픔,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 거제, 거제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봄기운이 완연하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벌써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느껴지는 곳이 있다. 남해안 한가운데로 성큼 나아가 있는 거제가 바로 그곳. 조용한 섬이었던 거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곤 했다. 덕분에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어쩌면 거제가 ‘크게 구한다巨濟’는 이름값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 섬에서 진행된 또 하나의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휴전한 한국전쟁 당시 거제는,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장소였다. ‘1·4 후퇴’라고도 불리는 흥남철수작전의 종료지이자 유엔군이 관리하는 포로수용소가 설치된 곳이 바로 거제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수용소가 설치된 곳은, 현재 거제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고현·수월지구. 이후 포로 분리에 따른 분산 수용을 위해 거제도 남부면 저구리, 용초도와 봉암도 등지에 수용소가 추가 설치됐다.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는 북한군 포로 15만여 명, 중국군 포로 2만여 명 등 최대 17만 3천여 명의 포로가 수용됐으며, 그중에는 300여 명의 여성 포로도 포함돼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정전회담이 열렸지만, 전쟁 포로 문제로 협상은 난항을 겪게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전향자가 잇따르며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간의 극심한 이념 갈등과 유혈사태가 빈번해진 탓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첨예한 대립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약 반년 만인 1954년 1월 거제 포로수용소의 운영이 종료되며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의 상흔을 생생하게 재현한 전시물들을 통해 평화와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가장 먼 곳에서 가장 활발하게 변모하는 박물관
2013년 국립민속박물관 생활사박물관 협력망에 가입하며 올해로 10년째 국립민속박물관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거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프로그램 개발사업과 다문화꾸러미 대여사업 등을 통해 지역 박물관으로서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개관 22주년 기념전시이자 K-Museums 공동기획전인 「캠프 넘버 원, 거제도 포로의 일상」을 계기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세밀하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게 됐다. 공동기획전을 위한 특별전시 공간은 정해진 기간 이후 철거되기 마련이지만, 거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새로운 상설전시관을 기획·조성했던 것. 덕분에 관람객은 더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더 쾌적한 공간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상설전시관에서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들은, 다름 아닌 실제 포로들이 사용하던 각종 유물.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직업 훈련 용품부터 철조망 등을 이용해 불법 제작한 사제 무기까지, 같은 공간에서 사용됐다 믿기 힘든 것들이 혼재돼 있다. 이를 통해 거제 포로수용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곳이었는지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한국전쟁 타임라인 덕분에 이곳이 가진 의미를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거제의 경우
거제는 다른 어느 곳보다 독특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섬. 거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만 보고 오기는 아깝다. 절경은 두말할 것도 없다. 또, 얼마 전부터는,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든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겨울이 되면 싱싱한 대구로 가득 차는 외포항과 멀지 않은 곳의 매미성이 그런 곳 중 하나다. 매미성은 2003년 9월, 거제를 비롯한 경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태풍 매미로 인해 텃밭을 잃은 백순삼 씨에 의해 20년 동안 건설이 이어지고 있는 건축물. 다시는 태풍으로 농작물을 잃지 않겠다는 집념에서 시작된 ‘축성’은 이제 거제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되었다. 단 한 장의 설계도도 없이 그저 머릿속에서 그려놓은 그림을 따라 이만큼의 성을 쌓아 올렸다는 점이 무엇보다 놀랍지만, 거가대교도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도 그에 못지 않게 뛰어나다. “SNS 인증샷” 용도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주말에는 여유로운 계획과 함께 방문하는 게 좋다. 거제식물원 정글돔은, 매미성과 달리 정교한 설계와 계획을 토대로 건설된 곳. 4,486㎡ 면적에 최고 높이 30m, 7,472장의 유리로 완성된 국내 최대 규모 실내 식물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내부에는 300여 종 1만 주의 열대수목이 자라고 있는데, 이곳 역시 다양한 포토존을 지정해 놓고 있어 방문객들이 아름다운 한 컷을 남기기에 더없이 좋다. 특히 새둥지를 본떠 만든 포토존은, 30분은 줄을 서야 할 각오를 해야 할 정도.

 

유리로 뒤덮인 식물원이기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곳은 여름이면 한증막을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워진다. 그러니 가급적 너무 더워지기 전에 방문하는 게 좋다. 4월에도 반팔차림이 어울릴 정도니, 혹시 좀 더 완연한 봄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정글돔을 찾도록 하자. 어떤 계절에도 푸르게 자라고 있는, 그래서 거제를 꼭 닮은 풍경을 바로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미니인터뷰

역사를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곳으로 초대합니다
-정지연(거제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학예연구사)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1999년 개관 이래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시설 5개년2019~2023년 보수사업 중에 있습니다. 올해는 전시관 리모델링 종합계획의 마지막 해로 포로 재교육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형 전시관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한, 2023년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으로, 유적공원 역시 다양한 특별전과 프로그램 및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고요. 개관 이후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모색해 오는 동안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국립민속박물관 여러분의 직접적 참여가 굉장히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관람객들도 더 큰 만족을 얻어 가시는 것 같아요. 물론 기획자로서의 고민도 큽니다.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관람객으로서 알고 싶은 궁금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에 대해서요. 상황에 따라 전자가 우선될 때도 반대로 후자가 우선될 때도 있지만, 결국은 ‘공감과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이러한 ‘공감과 사유’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느끼며 알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유적공원과 박물관 방문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현충 주간 행사가 있는 6월, 체험형 전시관을 개관하는 7월, 2박 3일 동안 문화재 야행이 펼쳐지는 10월을 추천드립니다. 포로수용소유적공원과 박물관은 다채로운 전시와 역사 체험을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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