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밭 대전은, 경부선이 건설되면서부터 명실상부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대덕연구단지는 과학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그 어느 곳보다 앞서가는 과학기술 연구가 치열하게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대전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율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노잼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적과 효율을 위한 공간들이 절대 다수니까. 하지만, 결코 온당한 작명은 아니다.
새로운 중심에서 시작된 새로운 역사
대전이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철도 역사가 시작된 시점과 일치한다. 1900년 경부선 철도 노선이 확정된 후, 1904년 공주군 산내면 대전리에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빠르게 인구가 불어났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1914년 회덕군과 진잠군, 공주군 유성면을 통합하며 기차역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 대전군이라 명명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던 대전군은 1935년 대전부로 승격되며 본격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광복 이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짧은 기간 임시수도로서 기능하기도 했지만, 치열한 전투로 인해 시가지는 대부분 파괴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의 대전에서 옛 건물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지금의 대전은 가장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는 지역. 국가에서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에는 정부산하 연구기관들 뿐 아니라 민간기업 연구소들도 대거 소재하고 있다. 덕분에 비수도권 지역 중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이 가장 활성화된 곳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전국 어디나 쉽게 닿을 수 있는 지리적 여건도 큰 역할을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 이렇게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가장 앞장 서서 써나가고 있는 대전에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이 위치한 것은, 그래서,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익숙한 역사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들
대전광역시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이 개관한 것은 각각 1997년과 2010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성씨의 근원을 모두 돌아볼 수 있도록 기획한 뿌리공원이 대전에 조성된 것은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 전국에 흩어져 생활하고 있는 종친들이 족보를 만들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대전으로 모여들었던 것. 그렇게 한자리에 모인 종친들은 족보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던 회상사라는 출판사에서 제작 일체에 참여했다고 한다. 비록 2021년 건물과 부지를 매각하고 폐업했지만, 회상사에서 제작하는 족보의 양의 워낙 많아 대전 인쇄골목이 형성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정도였다. 회상사가 성업하기 이전, 여전히 손으로 정성스럽게 제작한 족보들을 소장하고 있는 족보박물관은 족보가 지닌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하는 다양한 단초를 제시해 오고 있다. 특히 족보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며 봉건적이라는 선입관을 걷어내기 위한 기획들이 이곳의 자랑. 국립민속박물관과의 첫 번째 연계 전시 당시, 국내 최다 성씨이기도 한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 왕이 인도에서 건너온 허황후와 부부가 됨으로써 지금처럼 번성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던 것도 이곳 족보박물관이었다. 한반도는 오래전부터 다문화의 땅이었음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획은 족보박물관이 도서관과 다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실제로, 가장 많은 족보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국립중앙도서관과 정독도서관. 신생 박물관인 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족보는 채 1만 권에 이르지 못하기에 장서량으로는 차별화를 이루기 어렵다. 게다가 족보는 그 특성상 오직 글로만 구성된 데다 해당 문중과 당사자가 아니면 관심을 갖기 어려운 책이다 보니 관람객의 관심을 끌 다채로운 기획이 무엇보다 중요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간단하지만 다양한 아이템을 활용해 관람객 스스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족보박물관은 더 많은 문중의 족보를 열어 그 안에 기록된 다양한 사람들이 책과 책의 경계를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나와 내 곁에 있는 이들 사이에 경계가 없음을, 찬찬히 되짚어 오르면 결국 모두가 같은 곳으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각에도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고민을 오롯이 족보박물관만 혼자 떠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협력망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덕분에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지원이 물질적인 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기획과 교육 등 다양한 시도에 있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는 덕분에, 구청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임에도 항상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단다.
낯선 풍경 속에서 만나는 낯선 이름
대전이 행정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굳이 중언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 하지만 행정의 가장 속 깊은 곳까지 모두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충남도지사 관사촌이었던 테미오래가 아직 낯선 이름으로 인식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테미오래라는 이름은 지난 2019년 개관과 함께 시민공모를 통해 지어졌는데, “테미충남도지사 관사촌의 옛 지명로 어서 오라”는 뜻이 있다 한다. ‘높으신 분’들의 관사는 대부분 쉽게 접근하기 힘들기에, 환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부터가 괜히 반갑다. 테미오래는 관람시설과 문화창작촌으로 구성돼 있는데, 대전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9호로 지정된 도지사공관은 가장 대표적인 관람시설. 근대 건축과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되짚을 수 있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진행되고 있기에 대전을 방문하는 이라면 꼭 한 번 들러봐야 할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서양식 건축물 안에 들어가 있는 일본식 내부 구조는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인증샷’을 남기기에도 상당히 좋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을 만나다
대전을 유명하게 한 것들은 결코 적지 않지만, 요즘 세대에게 “대전”이라는 이름과 함께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성심당이라 답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전의 중심가인 으능정이 거리에 들어서면, 성심당 쇼핑백을 든 사람들을 무수하게 만날 수 있다. 주말이면 성심당에 들어가기 위한 긴 줄을 목격하는 것도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성심당을 이렇게 유명하게 만들었을까. 성심당이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56년. 피난민들을 싣고 서울로 향하던 길에 기차가 고장 나 대전에서 내리게 된 창업자가, 인근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를 이용해 찐빵을 팔았던 게 시초였다. 그때부터 “당일 생산한 것은 당일 소비한다”라는 원칙 아래 팔다 남은 빵은 노숙인이나 고아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에 대전 시민들 사이에서 성심당의 위상은 확고하다. 물론 IMF와 프랜차이즈 업체 확장 등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 빵들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일관성이 SNS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며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따뜻하고 맛있는 이야기들은, 성심당 본점과 멀지 않은 성심당 문화원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튀김소보로 모양의 주방 비누와 크림롤케이크 모양의 수세미 등은 관람객들의 눈길과 정신을 잡아끄는 중요한 아이템들이니 꼭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다. 성심당이 위치한 으능정이 거리는 그야말로 대전의 ‘핫플’이라 할 수 있는 곳. 대전의 근대사를 간직하고 있는 노포들부터 새로운 감각으로 대전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도 적지 않다. 취향과 관심에 따라 발걸음을 멈추거나 그 안으로 들어서 유심히 살펴볼 곳들도 많다. 그렇기에 꼭 찬찬히 확인하도록 하자. 대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인지 말이다.
미니인터뷰
모두를 위해 열려 있는 책이 바로 족보입니다
– 심민호(족보박물관 학예연구사)
족보박물관이 처음 개관했을 당시, 많은 고령 관람객들이 지팡이를 짚고 서너 시간씩 입장을 기다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족보를 통해 자신의 그리고 문중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지금 저희 박물관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지 알리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조상을 만나는 땅’을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게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죠. 각 문중의 권위를 상징하는 업적 위주로 역사를 나열하는 대신, 시조 이야기를 통해 흥미를 돋우는 한편 선원계보, 숭혜전지, 파평윤씨 산도첩 등의 소장자료를 활용해 한국 풍수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문중과 가계家系 그리고 풍수지리에 대한 탐구가 단순히 가부장적이며 비과학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당시 시대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기에, 곧 시작될 “국립민속박물관–K museums 공동기획전”은 족보박물관 입장에서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앞으로도 족보 박물관은 공익적 목적을 가진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도록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