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외형으로 좀 튀는 옹기가 있다. 대부분 항아리는 크기에 관계없이 배가 어느 정도 불룩해서 둥글둥글하기 마련인데, 새우젓독은 원통형에 가깝고 지름도 좁은 편이다. 새우젓독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한 번씩 묻는다. “이 항아리에는 도대체 뭘 담아요?” 그 대답이 끝나면 또 묻는다. “왜 이렇게 생겼어요?”
그 튀는 항아리, 새우젓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우젓독은 새우젓을 담아 저장하는 항아리이다. 이제 새우젓독에 대한 첫 번째 궁금증을 해결해 보자. 장독대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이 있는 장독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새우젓독도 있었다. 그 한켠 김치움 아래에는 김장항아리도 묻혀있다. 뭔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장과 같은 공간에 있는 새우젓의 위상이 새삼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발효 저장음식의 대표주자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과 영양, 겨울나기까지 책임지는 간장, 된장, 고추장, 김장은 그 장을 만드는 행위가 ‘일년지대계一年之大計’일 정도로 한 가정에 중요한 일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새우젓독은 장독대에 있을 정도로 쓰임새가 있나요?” 또는 “새우젓은 간장, 된장, 고추장, 김장만큼 중요한 것인가요?”라는 질문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새우젓도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새우젓독도 쓰임새가 톡톡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새우젓에 대해 좀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새우젓은 하蝦, 당하糖蝦, 진하眞蝦, 백하白蝦, 세하細蝦, 자하紫蝦라 기록된 젓새우를 염장한 젓갈이다. 젓새우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어획되는 회유성 어종인 작은 새우이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심하고, 만이 발달한 대륙붕지역인 우리나라 서해안 자연환경이 젓새우의 서식지로 알맞다고 한다. 16세기 초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토산조土産條와 18세기 후반 읍지를 종합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물산조物産條, 20세기 초 간행된 『한국수산지韓國水産志』에 실린 분포를 보면 젓새우 어장은 평안도부터 남해까지 이어진다. 서유구徐有榘가 19세기에 저술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새우를 소금에 담가서 젓을 만들어 팔역八域에 흘러넘치게 하는 것은 모두 서해의 당하이며 속칭 세하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도 “무릇 지금 나라에 흘러넘치는 것은 모두 서남해산 새우이다.”라고 한다. 이처럼 서남해산 새우젓은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생산과 소비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새우젓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새우 어획 시기와 새우에 종류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다. 어획 시기가 봄이면 춘젓, 5월은 오젓, 6월은 육젓, 가을에는 추젓, 겨울철은 동백하젓이라 한다. 초여름과 초가을에 잡히는 붉은빛의 곤쟁이로 담는 곤쟁이젓자하, 자젓, 감동젓과 민물새우로 담근 토하젓도 있다. 새우젓은 그중 육젓을 최고로 여기고 가격도 높다. 숙성된 새우젓은 달큰한 맛이 나고 돼지고기를 먹을 때 같이 먹으면 풍미가 살고 소화가 잘된다. 갖은 양념을 하여 반찬으로 먹기로 하고 두부찌개를 끓일 때 간 맞추는 용도로 사용되며, 그러나 무엇보다도 새우젓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김장철 김장재료이다. 홍석모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등장하는 막김치의 재료로 새우젓이 들어간다. 막김치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배추김치로 김칫독에 두어 겨울을 지내며 먹는 김장김치와 비슷하다. 『시의전서』의 ‘젓무’에도 새우젓이 들어가는데 젓무는 현재의 깍두기와 유사하다. 18세기 젓갈과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가 정착되는데, 서해안과 그 배경이 되는 내륙지방에서는 그 젓갈이 새우젓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김장김치에 들어간 새우젓은 알파-아밀라제α-Amylse 성분으로 발효를 돕고, 아미노산 함량을 높여 시원한 감칠맛을 낸다.
조선 후기 서해안을 중심으로 생산된 새우젓은 포구를 중심으로 수운을 통해, 한편으로 부보상의 유통망을 통해 내륙 구석구석으로 전해졌다. 바로 여기에 답이 있었다. 새우젓은 대량 생산과 전국적인 유통망을 통해 내륙까지 전해지면서 당시 김장을 앞둔 가정에서는 젓갈 선택에서 새우젓을 구입하기가 편리했을 것이다. 입동立冬, 11월 7일경을 기점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배추, 무, 갓 등 절인 채소와 고춧가루, 젓갈, 마늘, 파, 찹쌀풀로 버무린 김장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겨울나기를 위한 생존 음식이었다. 70년대 이후 냉장고가 보급되고 심지어는 맞춤형 김치냉장고가 발명된 이후, 현재에도 김장은 여전히 일 년 중에 집안의 중요한 행사이다. 마을공동체에서 품앗이로 했던 김장은 요즘 들어 부모와 출가한 자녀들, 혹은 성장한 형제들 사이의 중요한 가족 행사가 되었다. 기업이나 지역공동체에서는 집단적인 김장담그기 행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기도 한다. 2013년 12월 ‘김치와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 2017년 11월 15일 ‘김치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되었다. 김장은 세대를 잇고 공동체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전승문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즉 이러한 새우젓의 역할로 볼 때 그 보관용기인 새우젓독이 김장의 파트너로서 다른 장독과 나란히 있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새우젓독 모양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좁고 긴 원통형의 새우젓독의 비밀은 무엇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후기 새우젓배를 타고 황해 바다로 나가는 상상을 해본다. 어부들은 노를 저어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심하고 물살이 센 곳에 닻을 내리고 자리를 잡는다. 이 새우젓배는 이물배의 앞부분이 뭉툭하고 바닥이 평평해서 얕은 물에서도 기울지 않고 고정되어 있으면서, 양쪽으로 긴 나무檞木, 암해·수해에 그물을 걸어서 조수의 방향에 따라 하루 4번 쓸려오는 젓새우들을 잡을 수 있다. 새우젓배는 해선解船, 염선鹽船, 하염선鰕鹽船, 하망선鰕網船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어부들은 지역에 따라 젓중선, 젓배, 곳배, 멍텅구리배라고도 부른다. 바로 이 새우젓배에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배는 바다에 닻으로 고정되어 있고 어부들은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잡힌 젓새우를 보관해야 한다. 어부들은 배에 소금과 새우젓독을 실어가서 그물로 잡은 새우를 배 위에서 바로 소금과 혼합하여 새우젓독에 담아야 한다. 새우는 금방 상하기 때문에 소금으로 바로 절여서 보관해야 하고 이게 발효되면 새우젓이 되는 것이다. 한편 배 안은 공간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어부들은 새우젓 보관용 항아리의 배가 불룩하면 많이 실을 수도 없고, 배가 흔들리면 항아리끼리 부딪혀서 깨지는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또한 새우젓이 담긴 항아리는 작은 배에 실어서 포구로 옮기고 그 상태로 각지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내륙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독의 크기가 작아야 편리했을 것이다. ‘새우젓 메신저’ 부보상들이 새우젓을 팔러 다닐 때 독을 지게에 지고 다녀야 했는데 새우젓으로 가득찬 항아리가 너무 크면, 운송이 힘들었을 것이다. 즉 새우젓독은 이동이 많은 새우젓의 생산, 보관, 유통 과정에 적합한 맞춤형 용기였던 것이다. 현재처럼 플라스틱이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항아리, 나무 등을 보관용기 주로 사용했던 조선시대와 1950년대까지는 너무나도 지혜롭고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새우젓의 주요산지 근처에 대부분 새우젓독을 만들던 항아리 가마가 있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시 한번 장독대를 들여다 본다. 새우젓독을 보면서 갑자기 고개가 끄덕여지고 작은 미소가 번진다. 질문을 했던 분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둥그런 항아리들 사이에서 삐죽하게 잘 어울리지 않게 보이던 새우젓독이 이제는 실용성을 반영한 창조적인 생산물로서 조화롭게 보인다. 앞으로는 옆에 있는 소줏고리, 시루, 식초항아리 등도 꼼꼼히 보려고 한다. 다시 보니 새우젓독 말도고 다양한 항아리들이 많이 있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새우젓독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김장철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새우젓을 사면 좋겠다. 새우젓 산지에 나들이겸 찾아가도 좋고 주변의 축제에 참여해도 좋을 것이다. 올해는 고춧가루 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나도 김장에 쓸 재료들을 하나, 둘 준비해 두어야겠다.
글 | 안정윤_어린이박물관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