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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 <한국인의 일 년> 재개관

전면 개편한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 재개관

2020년 1월 상설전시관2 개편을 위한 준비를 막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 세계를 팬데믹Pandemic으로 몰고 간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 피해는 박물관도 비켜갈 수 없었다. 박물관이 문을 닫고 예정된 전시도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문을 닫는 동안에도 전시 준비는 계속되었고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전시를 위해 힘써준 많은 업체 분들은 열악한 공사장에서 연일 마스크를 쓴 채 작업을 이어갔으며, 해외에서 들여오는 자재 수급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늘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12월 9일 예정된 개관일을 하루 앞두고 박물관은 또다시 휴관에 들어갔고 언제 문을 열게 될지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2021년 3월 20일 드디어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이 관람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 년>은 기존의 전시 주제와 공간, 전시품을 전면 개편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따른 세시풍속, 생업과 신앙, 의식주의 생활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된 공간에서 펼쳐진다.

 

고품격 전시공간 구성과 감각적인 연출로 재탄생한 상설전시관2
독자 여러분들은 박물관을 찾아 관람할 때면 ‘어? 이 전시는 지난번에 왔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도 있네?’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전시가 바로 ‘상설전’이다. 참신하고 시의성 있는 전시 주제와 실험적인 전시 디자인이 구현되는 ‘기획전’과 달리 ‘상설전’은 최소 10년 이상의 수명을 갖고 오랜 기간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스타일을 규정하는데 어려움과 한계점이 많은 전시이다. 그렇기에 박물관의 ‘상설전’은 엄선된 소장품들이 전면에 나오고 박물관의 성격과 방향을 드러내는 대표 전시이자 박물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전 상설전시관2 <한국인의 일상>은 2009년 1월에 한 차례 개편하였고, 11년이 지나 2020년 새롭게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 또 다른 10년을 위해, 상설전의 생명 연장을 위해, 전시 디자이너로서 어떤 디자인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훌륭한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도 매력을 잃지 않는 법이다’.

오늘날의 최신 유행 디자인을 그대로 반영한다거나,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유행을 선도한다면? 그 또한 관람객들이 기대하는 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는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들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미적·공간적 경험을 전달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무엇보다도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되 유행의 요행을 따르지 않고, 장식적인 요소는 배제하면서 간결하고도 고전적인 형태, 그러면서도 안정적인 색상을 택하여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민속’도 현대적 감각으로 공간 속에서 재탄생하여 세련미를 갖출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공간 구성을 하면서 가장 큰 난관은 전시장 내 각기 다른 둘레의 48개 기둥이었다. 부술 수도 없는 이 기둥들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가 가장 관건이었다.

크게 유물 중심의 전시존, 한옥을 활용한 실감형 영상존으로 영역을 나누고 세부적으로 7개의 존으로 공간 구성을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높은 유선형의 벽체를 세웠다. 전시장 입구에는 사계절, 일 년의 주기로 되풀이된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 구성을 쉽게 도식화한 영상 사이니지를 통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경직도 병풍과 그 옆 동일한 흰색 병풍 모형에 3D 프로젝션 맵핑되는 경직도 속 인물들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전시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였다. 〈정월〉을 비롯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별 유물전시존은 전반적인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모던하게 잡아 풍부한 유물 및 전시 매체가 부각되도록 했다. 계절별 풍경 영상과 중앙전시대 유물의 유기적 배치를 통해서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진열장은 유물교체와 관리가 편하도록 시스템 진열장으로 설계하고, 고투명 저반사 유리를 사용하여 관람객의 유물 관람을 저해하지 않도록 했다.

특히 〈여름〉존은 우리 선조들이 뜨거운 햇빛과 소나기를 피해 처마나 오두막에서 잠시 쉬어갔듯이, 관람객들도 유물을 감상하며 받은 피로를 잠시나마 풀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마련하였다. 대나무를 사용한 자연소재의 천정 구조와 12개의 기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매스형 진열장, 그리고 진열장을 둘러 배치한 툇마루에 앉아 여름 계절의 시원한 풍경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민속’ 전시는 유물 간의 맥락을 고려하여 디스플레이하는 것은 물론, 민속 ‘현장’의 분위기를 전시장에 구현하여 보여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어업 관련 자료인 위도띠뱃놀이, 제주 영등굿 속 ‘띠배’와 ‘배방선’, 동해안 지역 미역 채취에 쓰이는 ‘떼배’를 전시하기 위해 실제 바다의 느낌을 전시장에 옮겨 놓고자 기획했다. 물결치는 파도의 모습과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실감 나는 영상과 음향으로 연출해 마치 관람객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 있는 현장감을 선사하였고, 관람객은 이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장 후반부 실감형 영상존 〈한옥에서의 사계절 풍경과 삶〉에서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에서 옮겨온 한옥을 중심으로 주변 벽면에 양동마을의 실제 촬영 풍경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상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계절의 정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획했다. 6대의 초고화질 프로젝터를 연동하여 3D 프로젝션 맵핑의 최신 기술이 접목된 가로 해상도 10K급 초고화질 미디어 파사드Media fasade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잠시나마 한옥에서 마음이 쉬어가는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유물과 관람객이 보다 가까워지도록 하는 체험과 약자를 위한 배려, 둘 다 잡은 전시 기법 구현
전시장 안에서 모두가 편안하고도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 기법이 적용되었다. 점자패널, 촉각 전시물, 약시를 위한 빅레이블글씨가 큰 전시해설 책자이 바로 그것이다. 각 부의 주제를 설명하는 패널 하단에는 점자를 포함한 촉지도점자 전시 배치도를 함께 마련하여 시각 장애인의 편안한 관람을 도모하였다. 아울러 ‘고써레’, ‘키’ 등 쉽게 만질 수 없는 전시품들을 3D 입체프린터로 제작한 촉각 전시물과 점자설명을 배치해 누구든 전시품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끼며 촉각을 통한 전시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 밖에 전시품 설명과 사진을 크게 인쇄한 책자를 통해 노령의 관람객과 약시 관람객을 배려하고자 했다.

또다시 10년, 유익한 영감과 흥미로운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박물관의 전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획, 설계 및 제작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이 동반된다. 특히 이번 상설전시관2 개편 프로젝트의 경우는 그 규모나 복잡성에서 더 세밀하고 긴 호흡을 필요로 했으며, 박물관 내·외부의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졌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천정에서 바닥까지 공간 인테리어·진열장·영상미디어·그래픽·조명 등 여러 전시연출 요소를 전면적으로 탈바꿈하고 그야말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 상설전시관2,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넘어 오랫동안 많은 관람객의 발길이 닿고 유익한 영감과 흥미로운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사랑받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순간 전시는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시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James Gardner & Caroline Heller-


글 | 유민지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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