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는 윷놀이가 으뜸이다. 윷놀이는 “백제에 저포가 있다.”는 『수서隋書』의 기록으로 보아 오래된 놀이다. 고고학적으로는 포항 칠포리 상두들의 고인돌 덮개돌에서 윷판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편년을 앞당길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놀이보다 의례의 결과물이다. 설놀이로서 으뜸이 윷놀이라 했지만 실은 제석除夕은 물론 보름까지 윷을 놀았다. 제석은 섣달그믐날 밤을 가리키는데, 이날 밤은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수세를 했다. 밤을 새려면 놀이가 제격인데, 이때에 윷놀이를 즐겼다. 이른바 투전이나 골패를 하며 밤을 지새우는 세투歲鬪 보기의 하나이다.
윷놀이의 요소들은 복잡한 듯 하나 단순하다
윷놀이는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서 사위를 얻고 네 개의 말을 말판 위에 움직이는 판놀이Board game다. 윷판은 20개의 밭또는 궁을 ○으로 벌어놓고, 원형 안에 +자 꼴로 9개의 밭을 배열한 형태이다. 윷판은 놀이의 필수이기도 하지만 안동지방에서는 윷판 없이 놀기도 한다. 이를 건궁윷말이라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벌윷’이라 부른다. 바둑에서 암기暗碁를 하듯 놀기 때문에 29밭의 이름은 물론 윷말들의 이동 상황을 정확히 기억해야 한다. 비상한 기억력이 없으면 놀이가 어렵고 놀이판이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다.
윷가락은 도부터 모까지 다섯 사위를 얻는 일종의 주사위dice이다. 나오는 사위의 수만큼 윷판의 밭을 옮아갈 수 있다. 밭마다 이름이 제각각인데, ‘도’에서 출발하여 여러 밭을 유람하고 ‘참먹이’로 빠져 귀환하게끔 구성되어 있다. 윷판의 사위는 놀이꾼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임의의 수라는 점에서 윷놀이는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이와Roger Caillois의 지적처럼 ‘운alea’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듯 “죽은 나무때기가 가리키는 것이 윷사위”라는 말처럼 윷놀이를 가리켜 운놀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고, 윷가락을 활용하여 윷점을 치는 것도 이 원리에서다.
윷가락은 긴 막대형약 16~20cm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를 ‘가락윷’, ‘서울윷’, ‘장작윷’이라 한다. 장작윷長斫柶은 길고 굵게 만든 윷이라는 뜻으로 장자윷長者柶이라 하며,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은 「윷놀이擲柶戱」라는 시에서 ‘장자늇’이라 적었다. 기록상 최초이다. 가락윷은 널리 쓰이는 윷가락이지만 실은 손톱만한 크기나 2.5cm 내외의 작은 윷가락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종지종제기에 윷을 담아 던지는 방식인데, 현재에도 남부 지방에서 두루 쓴다. 이를 ‘종지윷’, ‘종제기윷’이라 하며, 때로는 접시에 담아 던진다 해서 ‘접시윷’이라 한다.
윷가락이 없을 때에는 콩알이나 팥알을 반으로 나눠 쓰기도 한다. ‘콩윷’이라 불리는데, 이때에는 토시 한 짝을 윷판 옆에 세워놓고 오른손에 콩알이나 팥알을 쥐고 흔들어 토시 속으로 던져 넣은 다음 토시를 들어내어 사위를 따진다. 만약 토시가 없을 때는 종이로 토시를 만들어 썼다. 이런 장면을 그린 그림이 기산 김준근의 <늇뒤는 모양>이다. 말판 위를 움직이는 윷말pieces은 각각 4개인데, 4개가 먼저 윷판을 빠져 나오는 사람또는 편이 이긴다. 말을 말코라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각각의 말을 ‘동’이라 부르고, 하나가 났을 때 ‘한 동 났다’고 한다. 넉 동이 먼저 나면 이긴다 하여 윷놀이를 달리 ‘넉동치기·넉동내기·넉동배기’라 한다. ‘동몰이’, ‘동뛰기’라고도 하는데, 이는 네 동의 말을 몰고 뛰어간다는 데에서 온 별칭이다. 공주 지역에서는 시간을 줄이려고 두 동으로 노는 두동배기도 즐겼다.
이처럼 윷놀이는 복잡한듯하나 실제로 단순하면서 짜임새 있다. 윷판에는 28수 내지 북두칠성의 주천周天과 관련된 천문학적 이상을 담았고, 행마行馬에는 춘분·추분과 동지·하지를 고려한 윷길을 배정하였다. 출발과 귀환의 놀이로서 여정旅程의 완급을 조정할 수 있고, 좌절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놀이로서의 짜임새를 갖췄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은 “윷놀이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수많은 판놀이들의 원형이다.”라고 품평했다.
윷놀이의 규칙은 끊임없이 변한다
놀이는 놀이를 하면서 진화하기 마련이다. 좀 더 재미있게끔 난이도나 변칙과 관련된 변화를 주는 탓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규칙들이 추가되고, 그럴수록 재미를 더한다. 대표적인 변칙 중의 하나가 ‘빽도back도’ 내지 ‘뒷도’다. 빽도는 말 그대로 ‘백back’을 해야 하는 도이다. 네 개의 윷가락 중 하나에 특정 표시를 하고 이것이 젖혀진 ‘도’일 경우 말을 뒤로 물리는 규칙이다. 더러는 이를 ‘툇도退도’라는 하는데, 언제 생긴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1991년 신문 기사에 소개된 것으로 보아 그때쯤 추가된 규칙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에서도 이를 쓰고 있다. 이름하여 ‘후돌’인데, 윷말을 뒤로 후퇴시키는 뒷도와 비슷하나 두 칸을 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강원 지역에서는 두 개의 윷가락에 각각 ‘서’자와 ‘울’자를 적고, 두 윷가락이 함께 젖혀져 ‘개’를 치면 윷말을 중앙 밭방으로 옮기는 규칙을 쓴다. 왜 ‘서’와 ‘울’일까? 아마도 ‘서울’이 주는 중심적 관념과 지위성을 적용하여 윷판의 중앙 밭인 방房으로 윷말을 옮기는 특전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맞춤나기’라는 규칙이 있다. 말판의 최종 밭인 ‘참먹이’에 들어간 윷말은 반드시 ‘도’를 쳐야 나가는 규칙이다. 도 이외의 사위로는 참먹이의 말을 뺄 수 없다.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이 규칙이 쓰였는데, 쌍륙雙六의 놀이법을 빌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자동임신’, ‘자동유산’, ‘퐁당’이 있다. 이는 특정한 밭을 ‘자동임신’, ‘자동유산’, ‘퐁당’으로 지정하고, 윷말이 그곳에 이르렀을 때 ‘임신하거나 유산하거나 퐁당하는’ 행마 방식이다. 만약 윷말이 자동임신 밭에 이르면 한 동이던 말이 두 동으로 늘어난다. 자동유산은 뒤따른 말이 들어가면 죽는 것이고, 퐁당 밭은 들어간 말은 무조건 죽는 규칙이다. 이와 비슷한 규칙이 북한의 ‘함정’인데, 함정에 빠진 윷말은 ‘퐁당’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윷놀이로 그칠 수 없다는 듯이 다른 놀이로 분화한다
윷놀이의 놀이방식과 윷 도구를 활용하여 새로운 놀이로 바꾸기도 한다. 윷놀이가 지닌 가변의 용이성과 진지함의 다양성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손가락윷놀이’인데, 다섯 손가락을 윷판으로 사용하되 엄지는 도, 검지는 개처럼 손가락 하나하나에 다섯 사위를 정한다. 순서에 따라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사위에 따라 손가락을 접는다. 다음 차례에 접은 손가락의 사위가 나오면 접었던 손가락을 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다섯 손가락을 먼저 접는 사람이 이긴다. 1996년 2월 1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실린 내용이지만 실은 평북 희천군 지역에서 전승되었던 ‘손가락 꼽기’이다. 이 놀이는 윷놀이를 하는 데 필요한 수 관념을 익히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와 유사한 방식의 변형된 윷놀이가 따로 있다. ‘산윷算柶’ 또는 ‘보습윷’이라 하는데, 윷판과 말을 쓰지 않고 대신 한쪽에 산가지나 콩팥을 늘여놓고 윷을 쳐서 나오는 사위대로 거둬가는 놀이다. 도는 한 알, 모는 다섯 알, 이런 방식으로 윷가락을 차례대로 던져 최종적으로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이긴다. 평안도, 함경도 지방에서는 ‘산가지 따기’ 또는 ‘콩 따기’라 한다. 이에 더해 방법을 달리하기도 하는데, 일정 개수의 산가지를 도에서 모의 순서대로 늘어놓고 얻은 사위만큼 해당 사위의 산가지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만일 해당 자리에 산가지가 없으면 가져갈 수 없을 뿐더러 외려 자기가 모은 산가지를 반납해야 한다.
방바닥에 깔린 자리를 이용한 ‘자리윷’도 있다. 공주 지역에서 전승되었던 윷놀이인데, 자리의 날을 윷판으로 쓴다. 자리를 짤 때 왕골, 밀짚 등을 엮는 씨줄이 교차하여 자릿날이 생기는데, 이를 윷판의 말길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윷놀이의 방식처럼 이동하되, 윷말은 한 동만 쓴다. 자릿날 수가 많아 한 판을 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이다.
윷가락만을 가지고 노는 ‘보리풍년 윷놀이’도 있다. 공주지역에서 전승되었던 놀이인데, 손바닥이나 손등에 윷가락을 얹었다가 띄워서 잡거나 4개의 윷가락을 수직으로 떨어뜨리고 잡아채서 잡는 등 여러 가지 단계의 손재간으로 이어진다. 일반의 윷판 중 중앙의 +자를 생략한 둘레만의 윷판을 쓴다. 동지길에 해당하는 둘레의 20밭에 각 단계의 명칭을 써 놀이의 진행을 수월하게 하였다. ‘닭의 모아지’부터 ‘진치기’까지 20여 단계인데,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각 단계는 5회를 성공해야 넘어가고 실패하면 차례가 넘어간다. 이처럼 윷가락을 놀리며 논다 하여 ‘윷 놀리기’라고도 하고, 베틀질을 흉내 낸다 하여 ‘베틀윷’이라 한다. 더러는 마치 공기놀이하듯 한다 하여 ‘공기윷’이라 부른다. 일종의 손재간 놀이다.
아무리 즐겁다 해도 대보름 이후에는 그쳐야 한다
윷놀이가 아무리 즐겁다 해도 정월 내내 놀 수는 없다. 이제 한 해 농사를 위한 계획의 실천을 위해서 작은 것부터 손을 대야 할 때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대보름 이후에는 윷가락을 감추었다. 이런 사정을 담아 “보름을 넘겨 윷놀이를 하면 벼가 죽는다김매순의 『열양세시기』.”고 했다. 농본에 힘썼던 전통생활사에서 놀이와 일상은 하나인 것 같지만 이처럼 경계성을 지닌 활동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회화 자료나 시문학 자료들을 살펴보면, 윷놀이는 시절의 경계 없이 시시때때로 즐긴 놀이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재미있고 신명나는 놀이라는 뜻이다.
글 | 장장식_길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