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증가하는 봄이 되면 피부는 겨울티를 벗기 시작한다. 피부에 수분이 올라와 각질이 사라지고 피부결이 고와지며 윤이 난다. 메이크업이 가장 잘 받기 시작하는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화장품이 없을 것 같던 과거에도 선조들은 따뜻한 햇살이 시작되는 봄을 기다렸다. 선조들의 메이크업은 2단계로 구분되었다.
첫단계는 지금의 메이크업 베이스와 유사한 분칠로 피부를 하얗게 만드는 것인데 주로 쌀을 갈아서 만든 미분을 물과 기름으로 개어서 사용했다. 다음에는 꽃잎에서 얻은 색소로 볼과 입술을 칠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 꽃이 잇꽃으로 알려진 홍화이다. 또한 목탄을 사용해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화장품의 종류와 표현할 수 있는 색이 적어졌을 뿐 꾸미는 방식은 비슷했다.
화장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화장은 사전적의미로 ‘화장품 따위를 얼굴에 바르고 곱게 꾸밈’이라고 하며 주술문화에 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신과 인간 사이의 전령자인 주술사와 부족장은 의식을 시작하기에 앞서 화장을 하였다. 화장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꾸밈 보다는, 일반인과 차별화를 나타내는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후 전쟁에 나가는 전사의 얼굴과 몸으로 확대되면서 공포의 도구로까지 사용되었다. 지금의 화장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화장의 목적을 현대적으로 바꾼 최초의 시도는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 절대미인으로 칭송 받는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한 이집트 귀족층은 권위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화장을 시도했다. 벽화와 조각으로 남겨진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같이 검은 단발과 오뚝한 코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양 옆으로 검게 뻗은 눈매를 인상 깊게 볼 수 있다. 지금의 아이섀도우로 한 눈매 화장과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화장법이다. 아름다움에 눈뜬 이집트인들은 한 때 페니키아인이 전세계에 보급하는 화장품 원료의 가공을 거의 독점했다고 한다.
반면 동시대의 그리스인은 인위적인 치장보다는 몸의 균형과 비율로 아름다움을 논했다. 체육을 관장하고 몸을 정결하게 씻는 등 치장보다는 청결을 아름다움이라 보았다. 이후 로마시대에는 수많은 공중목욕탕이 건설되었고, 현대적인 위생관념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미의 기준은 달라지지만 치장과 위생 그리고 균형 잡힌 건강한 몸은 아름다움의 3박자가 되어 현재까지도 불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우리의 화장술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화장술은 인위적인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양에서는 수은과 안티몬을 비롯한 중금속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피부 본연의 색을 없애고 강제적으로 색을 입히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중금속은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죽음에도 이르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하였다.
반면 우리는 꽃잎과 곡식 등 자연에서 추출한 자연 원료를 주로 사용하였다. 피부 본연의 색 위에 부드럽게 스며들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화장법을 고안한 것이다. 그나마 홍화에서 뽑아낸 연지를 뺨에 바르는 정도가 강조할 수 있는 최대치였지만 그마저도 고려시대에는 장려되지 않았다. 고려 여인들의 생활상을 서술한 [고려도경]에는 ‘부인들의 화장은 향유를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눈썹은 넓게 그리고, 세 폭으로 된 검은 비단으로 된 너울을 쓴다.’ 라는 글이 실려 있다. 화려한 치장을 멀리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중시 여기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고려말기로 갈수록 계급층을 중심으로 화려한 화장이 유행하였고 새로 건국된 조선에 큰 시사점을 남겨 주었다.
유교문화를 받아들인 조선시대 사대부 여인들은 외면적인 아름다움보다 내면을 가꾸는데 힘썼으며 염장한 기녀들의 화장과는 차별화를 두었다. 남성들도 항상 깔끔하고 단정한 옷가짐을 보였으여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분가루가 소개되었지만 가정에 빠르게 전파되지는 않았다. 전쟁 이후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상황에서 화장은 사치일 뿐이었다. 진한 화장을 한 여자를 보면 게으르고 허영심이 강한 여자라고 비하하였다. 주변에서 화장한 여자를 볼 수 없으니 화장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칼라TV의 보급 이후 화장품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브라운관에 비치는 배우들의 화려한 입술과 눈매는 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화장은 번거롭고 귀찮은 행위였지만 나도 배우처럼 예뻐질 수 있다는 생각은 없는 시간도 만들어냈다.
보는 것이 늘면 화장도 는다.
화장품이 보편화되었지만 연예인처럼 아름다워지는 화장은 쉽지 않았다. 도구는 살 수 있으나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데로 이색저색 팩트에 묻혀가며 두드려 보았지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콧대 높았던 화장술의 담장은 각종 뷰티 전문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낮아졌다.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하며 일반인도 충분히 연예인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했다. 화장술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뷰티 파워블로거는 하나의 직업이 되었으며 많은 여성들은 마우스 스크롤을 내려가며 그들의 화장법을 따라했다. 또한 숨어서 혼자 얼굴을 만지던 남성들도 인터넷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이 생겨났고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교류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모바일 시대는 화장술의 대중화에 정점을 찍었고 청소년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쥐면서 그들을 책상이 아닌 화장대로 불러들였다. 우먼타임즈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장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49%는 유튜브를 통해 화장을 배우며 23%는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무려 4명 중 3명의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화장을 접했으며 나머지 한 명도 그렇게 배운 친구를 통한다고 하니 결국 모든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을 거울 삼아 화장을 하는 것이다.
화장과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스마트폰은 화장 시작 나이를 확 낮추었다. 또한 넘쳐나는 남성 아이돌은 화장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남자가 무슨 화장을 하냐며 놀려대던 여성들도 예쁘게 꾸민 남성 아이돌을 보며 소리치고 환호했다. 그들은 화장한 남성에 대한 편견이 없으며 오히려 남자친구의 눈썹을 정리해주고 피부톤을 보정해주는 화장품을 선물한다. 시대에 따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변해왔지만 꾸밈은 수천년간 지속적으로 전파되었다.
화장에 눈에 뜨기 시작하는 연령이 지속적으로 어려지고 있으며 여성의 전유물에 발을 담그는 남성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이기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청소년의 화장 문화를 다루던 다큐멘터리에서 PD가 그들에게 왜 화장을 하는지 물었다.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거든요” 본인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선물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다.
참고자료
· 기사 www.wome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597
· 화장술의 역사. 시공 디스커버리
· 한방화장품의 문화사. 들녘
· 고려도경. 서해문집
· 한국화장문화사. 열화당
글 | 김동찬_화장품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