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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는

보존처리, 후손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오래도록 전하기 위한 일

유물로 시대의 가치를 교감,
최소한의 보존처리로 치료하고 되살려

소중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보존처리’. 선조들의 지혜와 흔적을 지금까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이유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보존과학실은 여섯 가지 분야(섬유보존, 서화보존, 목재보존, 금속보존, 분석, 보존환경)로 보존업무를 수행한다. 섬유·서화·목재·금속 보존은 각 재질별 보존처리를, 분석 분야는 보존처리에 필요한 재질 분석을, 보존환경 분야에서는 수장고 및 전시실의 보존환경 관리를 담당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서화 소장품 보존처리를 담당하는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유물의 장기적인 보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소장품 보존의 과업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서화書畫는 종이나 직물 위에 먹과 같은 안료나 염료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쓴 것을 의미하는데, 무기물로 된 유물보다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요인에 특히 많은 손상이 발생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조선시대 선조들의 물건부터 근현대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형태와 재질의 소장품들을 보존하고 있는데, 타 박물관에 비해 근현대 생활용품이 많은 관계로 서화 유물 중에는 양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당시 양지는 산성지酸性紙에 해당돼 장기간의 보존에 견디기 어렵고 갈변화 및 바스라짐이 심하다. 그냥 두게 되면 바스라져 유물의 형태를 잃어버리거나 사라질 위험이 크다고 한다. 무조건 깨끗하고 새롭게 보존처리하는 것이 아닌 재질, 손상 및 오염 상태를 기초로 소장자료의 학예적 가치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처리를 목표로 보존처리를 수행한다.

무엇보다 보존처리자의 능력 범위 내 최적화된 처리 방안 고민하는 것 필요해
유물을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같은 형태의 유물이라 할지라도 거쳐온 환경, 보관 상태, 재질에 따라 보존처리의 범위가 확연히 달라진다. 사실상 같은 유물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보존처리는 객관적인 사료와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하며, “유물을 처리하기 전에 수많은 연구를 통해 최적화된 방법을 찾고, 보존처리자의 능력 범위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서화 분야에서는 유물을 대상으로 장황1)에 따른 시대별·주제별 변화와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연구 기반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더욱 정확한 보존처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자료와 보존처리 전시,
껌 포장지로 시대를 읽는 보존처리의 힘

국립민속박물관에는 현재 ‘새로운 자료와 보존처리’라는 이름으로, <7080 추억의 껌- 껌 포장지 보존처리>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껌 포장지가 단순히 껌을 표면상 곱게 장식하고 포장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넘어 당대 대중의 취향과 시대적 문화를 보는 거울로서 소중한 민속 자료가 되었다. 더욱이 국립민속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는 소장자료의 보존처리뿐 아니라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이 보존처리의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 구상부터 연출까지 전 과정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껌 포장지 보존처리 및 <7080 추억의 껌- 껌 포장지 보존처리> 전시를 직접 기획한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수집 담당자의 전화 한 통으로부터 진행된 보존처리로 인해 당시의 중요한 정보와 흔적,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인의 생활문화사를 주로 다루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보존처리의 영역이 현대의 유물까지 확대된 점은 실로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기증받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의 껌 190여 점 가운데 97점이 보존처리 대상이 되었다. 수집 당시에는 껌에서 녹아나온 갈색 오염물이 포장지를 뒤덮고 있어 디자인 등을 확인하기 어려웠으며, 훼손된 껌이라는 식품을 어떻게 수장고에 보관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이에 전지연 학예연구사는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는데, 첫 번째로 껌 내용물을 대신할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훼손된 은박지를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껌 내용물은 오랜 시간으로 부서지고 깨져 형태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단맛을 내는 데 사용된 당류로 인해 오염 정도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최대한 지속 가능한 상태로 소장자료를 유지하기 위해 껌 내용물로 껌의 유연함을 살리는 면섬유로 된 종이 모형껌을 사용해 대체하였다. 그리고 97점의 껌 포장지 중 은박지에서 ‘은박’과 ‘박엽지博葉紙’ 사이의 ‘접착 성분’을 분석하였고, 접착제가 파라핀 왁스Paraffin Wax임을 밝혀 보존처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었다. 근현대 유물은 전통 유물과 달리 다양한 형태와 재질을 다루고 있기에 현대에 개발된 재료로 활용된 제품의 보존처리 방법을 새롭게 제시하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껌 포장지 보전처리 전후 비교 사진

20여 년의 보존과학 역사,
민속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보존과학 기반 조성

2000년대 즈음 우리나라에 ‘보존과학’의 개념이 확립되면서, 과학지식과 기술로 유물의 제작기술과 역사 등을 규명하는 분야로서 ‘보존과학’에 관한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1년에 수장고 내 자그마한 보존실 한 켠을 시작으로 20여 년의 보존과학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자료가 전통 유물부터 근현대 및 세계 민속자료까지 다양함에 따라, 여러 가지의 분석기기를 구비하고 이를 활용한 현대적인 분석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분석실에서 소장품의 보존에 필요한 재질과 열화 상태에 대한 정보를 보존처리 담당자에게 제공하며, 소장품의 이해를 위한 재료·기법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를 꼽자면, 2010년에 국립민속박물관 독자적으로 ‘자외선UV 인공 열화견’ 제작 기술을 개발하고, <안동권씨족도安東權氏族圖>라는 족보류 두루마리 유물에 이를 적용해 보존처리에 성공한 것이다. <안동권씨족도>는 1999년 입수 당시 만지면 부서질 정도로 화견畵絹의 열화劣化 상태가 극심했다. 그 시기 국내에서는 제작이 어려웠던 인공 열화견 제작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섬유보존 및 분석을 담당하는 오준석 연구관을 주축으로 수년간에 거쳐 기술을 연구했고, ‘자외선 인공 열화견’ 기술 개발에 성공해 2010년에 특허청 출원도 하였다.
보존환경 분야에서 보면, 국립민속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친환경 유해생물제어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메틸브로마이드(methyl bromide)2)와 같은 인체에 해로운 약품이 아닌 질소를 사용한 살충 시스템을 갖추어 2014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기증 유물뿐 아니라 새로 입수되는 박물관의 모든 소장자료는 이 시스템을 거쳐 수장고에 격납格納 된다. 또한, 수장고에서는 온습도 관리, 실내 공기질 측정, 유해생물관리 모니터링IPM, 방역 등을 통해 소장품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

보존처리에 대해 설명하는 담당 학예연구사

열린 복합문화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
파주 헤이리에 ‘개방형 수장고- 보존과학스튜디오’ 건립

국립민속박물관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소장자료의 안전관리 및 활용과 관람객을 위한 정보 서비스를 확대하고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부근에 개방형 수장고 및 정보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파주 개방형 수장고 및 정보센터에 조성될 보존과학실은 개방과 공유의 기능으로서 분석실, 보존환경실, 각 분야의 보존처리실을 주축으로 현재보다 좀 더 확장되고 안정화될 예정이다.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보존과학스튜디오’라는 공간을 새롭게 조성한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보통 접하기 어려웠던 보존처리의 내용, 즉 소장품의 재질에 따라 달라지는 보존처리의 재료와 기법, 처리 과정 등을 더욱 가깝게 접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소장품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보존처리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에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실제로 보존처리를 진행하는 공간도 공개하여 ‘보존’ 영역의 대중적 접근성을 확대해 나갈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변화하는 21세기 박물관 시설로서 유물에 대한 보존 분야에서의 지식과 정보의 공유를 통해 가치 확산과 관람객 스스로 지식을 얻는 열린 복합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1) 그림이나 글씨를 감상하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두루마리, 족자, 병풍, 책자, 첩, 책 등 다양하게 꾸며주는 형식, 형태, 기술
2) 1997년 몬트리올 의정서에 따라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 금지된 약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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