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에서 돌아올 때마다 집안에 하나둘 쌓이는 인형들. 수집벽이 있는 것은 아닌데, 한두 개씩 무심코 집다보니 그리 된 것이다. 재작년 12월부터 세계인형조사를 담당한 이후로 조사 대상과 방향에 대한 고민들이 늘 따라다녔다. 인형조사 역시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내게 켜켜이 쌓인 삶의 경험들과 어떻게 연계될 것인가 하는 과제로 직면하게 되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을 성인이 되어서도 소중히 간직하거나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인형병원을 찾곤 한다. 파리 파르망티에 거리에 있는 인형병원의 앙리 르네 원장90세은 인형 수선이 병든 아이를 치료해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고, 손님들이 만족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어린애가 그 인형을 깨고서 3일 동안 아팠대.
그래서 고쳐줬어. 아이가 두 볼에 뽀뽀를 해줘서 행복했어.”
– 앙리 르네, 2017. 7. 11
일본 오사카 누이구루미병원의 호리구치 코미치 이사장42세은 인형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언제든 받아주는 존재라면서,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한다고 했다.
“봉제인형을 안는 과정에서 옥시토신이 분비가 된대요.
그걸로 인해 힐링 효과를 얻을 수가 있나 봐요. 그 부드러움과 안는 걸로.
그래서 병원에서도 앞으로는 환자인형를 치료해서 그 환자가 건강해짐으로써
가족들의 마음도 같이 치료하는 테라피스트therapist같은 그런 것도 목표로 하고 있어요.”
– 호리구치 코미치, 2017. 4. 22
‘남아=로봇, 여아=인형’이란 장난감의 도식적인 분류방식 즉 젠더의 구분은 ‘남성성’,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한다. 아이 성별에 따라 어른들이 건네는 장난감을 통해 아이들의 자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용’이나 ‘남자용’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져야 한다. 문득 독일 뉘른베르크장난감박물관 라투스 박사48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동독 크리미어 회사에서 만든 수제인형 ‘우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딸 셋이 갖고 놀아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어요.
(우타는) 4살 생일선물로 엄마가 사주셨죠.
지금 생각해도 좋은 것은 사내아이에게
여자인형을 선물한 것예요.
남녀 양쪽의 감성을 키워주신 것에 감사해요.”
– 우르스 라투스, 2017. 7. 8
영국에서는 여아용, 남아용 장난감이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에서 ‘장난감이 장난감일 수 있게’Let Toys Be Toys라는 캠페인이 펼쳐지기도 했다. 자아개념 속에 자리 잡는 인격 형성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며, 가지고 노는 장난감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나무, 돌, 종이, 천, 금속 같은 재료로 자신을 닮은 인형을 만들어왔다. 인형은 사람들의 상상과 소망을 담아 누군가의 노고로 세상에 나온다. 일본 이와쓰키의 전통인형장인들은 ‘인형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일본인의 정서에 조응하면서 장인정신을 잘 이어가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축복하기 위한 인형을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람을 느끼죠.
어떻게 하면 잘 만들까 항상 고민합니다. 하루에 20시간 일해도 전혀 힘들지 않아요. (중략)
인형은 아이들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이므로, 100개를 만들어도 다 달라요.
아이들이 다 다른 것처럼 하나하나 성심성의를 다합니다.”
– 이이츠카 다까시67세, 이와쓰키인형 의상부문 전통공예사, 2017. 4. 11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가 인형 제작에서 중요합니다.
이점을 직원들이나 장인들에게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평소 마음을 수련하여 평정심을 유지하고, 또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 야사쿠 츠네요시76세, 야사쿠인형점 회장, 2017. 11. 2
인형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친다. ‘아직도 애들처럼 인형을 갖고 노느냐’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인형이 성인에게 ‘철없는 것’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인형조사는 어린이에게만 소비되는 단순 소모품이 아닌 국가나 그 지역을 표상하는 시대적 산물이 바로 인형이라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