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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그래픽적 사고를 통해 표현되다

 

2014년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적인 이미지를 만들겠노라 다짐하며 작은 스튜디오를 열었다. 당시에는 독립한지 얼마 안 된 터라 자기 주도적 작업을 통해 한국의 색과 나만의 정체성 있는 작업을 실험하며 탐구했다. 한국적인 색과 형태의 기준을 명확히 단정 짓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픽을 통해 새롭게 재해석하는 작업의 연속이기도 했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조선과 근대 그리고 역사 속에 남겨진 당시 삶의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으며 그중에서 단연 민화적 요소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민화, 복起福의 의미를 담다

 

2006년 나의 첫 직장이었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민화-변화와 자유로움』 특별전의 도록 작업을 제작했고, 당시 수습 디자이너였던 나는 고해상의 민화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민화와의 만남은 지금까지도 다양한 작업에서 풀어내고 싶고 풀어내야만 하는 인생의 과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유학 당시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만남에서 민화는 항상 이야기의 화두였다. 일본의 1세대 디자이너인 카메쿠라 유사쿠는 본인이 직접 조선의 민화 자료를 찾아다닐 정도로 민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으며, 직접 디자인하여 출간한 ‘이조의 민화’라는 두 권의 방대한 도록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그만큼 그들의 눈에 민화는 그 어떠한 문화유산보다 매력적인 그래픽 요소로 보이는 듯했다.

화조도, 꽃과 새, 19세기 후반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민화-변화와 자유로움』 특별전의 도록에 등장하는 ‘일상 공간을 장식한 민화’라는 주제에서 안방에 가정의 화목을 소망하는 ‘화조도’, ‘어해도’가 전시되고 의례 역할을 담당한 마당에는 ‘모란도’와 ‘곽분양행락도’와 같은 그림이 전시된 것과 같이, 민화는 삶과 생활 속에 깃들여진 일상의 이미지이자 기원의 의미이다. 2014년부터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만들기 시작한 ‘축, 복’ 포스터가 홍대 길거리에서 팔리기 시작하면서 몇몇 갤러리로부터 전시의뢰를 받기까지 기복起福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미지들은 한국인들에게 좋은 기운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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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조형과 과감한 표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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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 그래픽 심포니아> Poster / B1(728 x 1030mm) / Digital Printing /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 2015

‘자유로움의 민화’에서는 작은 화분에서 고목같이 뻗어 나온 나무 기둥의 모습과 같이 자유분방한 조형과 과감한 표현 방식의 민화를 보여주는데, 이는 현시대의 회화 및 디자인에서 흉내 낼 수 없는 조형성과 색채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부분이 그래픽과 교차하는 부분이자 나 자신이 포스터라는 미디엄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 맥락과 같은 것이었다.

개인작업 중 대다수가 한글자로 표현된 포스터들이 많다. 대지에서 한글자가 보여주는 강렬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유교적 덕목을 적은 ‘효제충신예의염치’의 ‘문자도’와 같이 글자의 모양을 도식적으로 표현하여 문자의 기능적인 의미보다는 기호적이고 예술적인 시각이미지로의 접근이었다.

또한 작업에서 사용하는 색의 체계는 대부분이 민화 혹은 한국의 이미지들을 추출하여 활용하기도 하였다.

태백시로부터 새롭게 거듭나는 ‘문화도시 태백’을 표현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태백 답사를 통해 보고 느낀 탄광촌의 흔적을 민화의 ‘문자도’에서 보이는 굵고 힘 있는 획과 ‘금강산도’의 산맥을 태백의 석탄 조각들로 풀어내기도 했다. 신들의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작업한 영월을 표현한 포스터에서는 영월의 아름다운 산과 강의 풍경을 ‘일월오봉도’와 같은 민화적 색채로 ‘문자도’화 하였다.

 

가장 최근 작업이자 현재 전시 중인 『만월만복』전을 위한 포스터 중 ‘달과 호랑이 그리고 곶감’이라는 작업은 민화의 해학적인 스토리와 형태를 ‘한가위’라는 주제 안에서 재해석하였다. 또한 ‘문방도’와 같이 사물을 정면에서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기법은 차례상에 정성스럽게 쌓여진 배와 사과로서 구성했다. 현재 스포츠브랜드와의 협업에서는 민화 속 상상의 동물들을 이용하여 평창 동계올림픽을 겨냥한 그래픽을 제작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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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많은 회화 작가 및 디자이너들이 민화라는 주제를 재해석하는 시도는 많았으나, 민화가 가진 소박하며 담백한 ‘멋’을 뛰어넘은 경우는 드물다. 본인 역시도 민화를 집약적으로 매체 안에서 정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며 민화의 다양한 조형 세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그려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민화는 단순히 옛 그림이기 이전에 모든 접근 방식이 그래픽적 사고를 통해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어떠한 화파의 영향도 받지 않았으며 틀에 갇히지 않은 채 계속해서 꾸준히 변화해온 선조들의 자유로운 표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완벽한 그림을 다시 그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민화를 다시 접하며 새삼스레 민화의 멋스러움에 감탄하게 된다.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민화 – 변화와 자유로움 PDF
글_채병록│CBR Graphic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시각 정보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다마 미술대학 미술표현연구 대학원 그래픽 과정을 마쳤다. 2014년 제 11회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 포스터 부문 본상, 2015년 차이나-이탈리아 인터네셔널 디자인 위크 에볼빙 실크로드 금상 및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CBR 그래픽 대표로 포스터는 물론 제품 디자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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