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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사적인 대중교통, 택시

짧은 거리이지만 버스 경로로는 너무 돌아가서,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짐이 많아서, 인원이 많아서, 몸이 불편해서, 지하철이 끊겨서. 우리는 많은 이유로 택시를 탄다. 꽤 오래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택시에는 승객의 사연, 택시 기사의 사연, 라디오의 사연이 늘 흐르고 그 이야기들을 타고 세월도 흘러왔다. 한국교통연구원의 강상욱 박사를 만나 우리 삶과 택시에 대해 들어보았다.

 

택시, 100년을 달리다

택시, TAXI. 택시라는 말은 어디서 온 걸까.

“택시는 평가하다, 요금을 재다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타카taxa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차 뒷바퀴에 ‘택시미터taximeter’라는 요금 계산기를 장착한 차로 원하는 곳까지 이동하고, 그 요금을 내는 거죠.”

우리나라에 택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9년 무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돈을 내고 차를 탄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했을 리 없다.

“부자, 일본 사람, 화류계 여성들이 당시에 택시를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었어요. 택시 한번 타려면 워낙 돈이 많이 드니까 서민들은 이용할 수 없었죠. 한 시간 남짓 타면 쌀 한 가마니 요금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서민들 사이에서 ‘택시계’라는 것까지 등장해요. 서로 한 푼 두 푼 모아서 택시 타고 남산이라도 둘러보자, 목적지 없이 그저 한 번 타고 다녀보자 했던 거죠.”

오랜 시간 서민들에게는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던 택시가 그나마 대중화 된 것은 6.25 전쟁을 앓고 난, 1960년대부터였다. 철도는 망가졌고, 버스는 일정 지점에서 지점까지만 이용할 수 있으니 불편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곳까지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택시뿐이었다. 1967년 회사 택시에 이어 개인택시가 등장했고, 1970년 콜택시가 나타났다. 1972년에는 공항택시가 생겼다.

“물론 그 때에도 택시는 고급 교통 수단이었죠. 어디 모임에 가서 ‘택시 타고 왔다’고 하면 다들 굉장히 부러워했습니다. 그만큼 재력이 있다는 얘기였거든요. 택시 기사들도 본인의 직업을 무척 자랑스러워했어요. 제복을 입고 운전하는 기사들도 있었고, 그 차림 그대로 모임에 나가기도 했죠. 당시 택시 기사 월급이면, 집 한 채 금방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다시 없는 호황기였던 셈이죠.”

택시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 온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밀려들어오는 외국인들의 체격을 감당하기에 ‘포니’는 너무 작았다. ‘스텔라’를 앞세운 중형택시 시대가 도래했고 택시 대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모두들 택시를 몰면 부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간과한 것이 었었어요. 택시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자가용도 많아졌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니까 택시는 늘어갑니다. 수요는 줄고 공급이 많아지니 대당 수입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침체 국면에 접어들게 되죠.”

자가용이 늘고, 버스와 지하철, 마을버스 등 대중교통수단 또한 촘촘히 발전하면서 택시 승객은 지속적으로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대리운전이 등장하고, 우버, 카쉐어링, 콜버스 등 공유경제를 표방하면서 새로운 운송서비스의 출현으로 택시는 디딜 땅이 좁아지고 있다.

위기 탈출에서 고해성사까지,
택시 기사의 역할

현재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는 택시는 25만여 대에 이른다. 이용객은 하루 900만 명. 단 한 명의 승객을 위해 움직이는 무척이나 사적인 이동 수단인 만큼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 택시에서는 일어난다.

“승객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그 공간에서, 자신과 아무런 관계 없는 택시 기사에게 곧잘 속내를 털어놓곤 합니다. 친구나 가족에게도 못할 말을 기사에게 하는 거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승객은 택시 기사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말에서 신뢰감을 갖습니다. 그래서 택시 기사들 입에서 ‘이것 좋더라’ 하면 저절로 입소문이 나요. 택시 기사들의 평가가 매출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만큼 택시 기사들은 움직이는 홍보원이자 소통 창구인 셈이에요.”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택시 회사를 가장 먼저 찾는 후보들도 있다. 택시 기사들에게 인사도 하고, 애로 사항을 들어주며 긴밀한 협력 체계를 이루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택시는 한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 주민과 소통이 가능하고 택시 기사 특유의 신뢰감을 바탕으로 충분히 어떤 홍보 매체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제가 젊은 시절에 탔던 ‘똥차’가 수시로 고장이 났는데 차가 길에 주저 앉으면 저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습니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그렇게 면밀히 봐주실 수가 없어요. 그 분들 특징이기도 한데 평소 시큰둥해 보여도 길을 묻거나 차에 대해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조언해주세요. 정말 급할 땐 연료도 직접 사다 채워주시고, 추운 날 차가 방전이라도 되면 곁을 지나는 택시 기사가 도와주었죠. 택시 기사는 도처에 있는 만능 서비스맨이에요.”

그래서 강상욱 박사는 택시 기사를 운수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분류한다. 택시 사업이 사양길이라고 여겨지는 지금, 어쩌면 이 시장을 다시 뒤엎을 수 있는 것은 택시 기사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기능인의 기능은 기술로 대체되고, 사람의 인간미가 부각되어 새로운 방향성을 찾을 수도 있다.

“쉬운 예로 목욕탕을 들어봅시다. 동네에 목욕탕 하나씩은 꼭 있었습니다. 명절 앞두고는 만원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집집마다 욕실도 있고, 욕조도 있으니 목욕탕은 망하겠구나, 했지만 사우나, 찜질방 등 오히려 고급 부가가치의 장으로 탈바꿈했어요. 무엇이든 사회의 흐름에 따라 그 틈새에 맞게 적응하며 진화합니다. 택시도 현재는 과도기일 뿐, 분명 다른 판이 시작될 겁니다.”

IT 산업과 맞물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하며 아주 새로운 판으로 시작될 택시의 바탕은 결국 사람이다. 가장 사람에게 밀착된, 단 한 명의 승객만을 위한, 승객의 요구사항이 반영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교통수단, ‘택시’.

“앞으로 택시를 이용하는 시간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동 시간 자체를 즐기는 거죠. 오로지 이동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시간을 활용하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 시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대체된다면 하나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할 만큼 진화할 수 있겠죠. 그땐 더 이상 택시라고 불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름은 달라지더라도 택시는 그렇게 지속가능한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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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기록한다는 것

만일 ‘택시’를 주제로 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면 어떻게 기획하고 싶은지 물었다.

“물론 그동안 택시 차량으로 쓰였던 차종을 쭉 세워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택시 요금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지금 택시 요금은 미터기에 입력된 대로 받지 않으면 위법입니다. 심지어 택시 기사가 돈을 좀 덜 받아도 신고하면 걸립니다. 지금은 이렇게 숨막히게 미터기 요금만 지키고 있지만, 옛날에는 훨씬 다양한 요금제가 있었어요. 합승, 대절, 택시계 등.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택시를 어떻게 탔는지, 또 돈은 어떻게 책정하고 지불했는지 등을 나열하면 재미있는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또 별난 택시 기사들이나 재미있는 택시를 보여주는 것도, 각 나라별로 택시를 인식하는 문화의 차이, 무엇보다 택시 기사들이 실어 나르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다룰 수 있다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라고, 강상욱 박사는 말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한 것은 결국 택시는 사람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시간과 이야기가 함께한다. 쭉 뻗은 도로 위를 달리는 택시에게서는 지금도 시간과 말주머니가 함께 달린다. 그 안에 담겨있을 우리들의 희로애락, 거기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 민속이 있다.

강상욱 박사 | 한국교통연구원
택시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와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택시 전문가. 택시를 중심으로 하는 대중교통 체계의 세계적인 추세를 가늠하고 분석하면서 택시가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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