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이나 전통 마을 등에서 한복 입은 이를 마주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외국인의 한복 체험이야 그렇다 치고, 그것보다 신기한 것은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도심의 거리에서도 일상화 된 한복인 ‘생활한복’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종종 보인다. 요즘 한복 입는 것이 유행인 걸까? 황이슬 한복디자이너를 만나 한복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와 자연스럽게 살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복은 제가 경험한 환경과 문화에서 가장 예쁜 옷이었어요. 명절이나 결혼식 날이면 언제나 엄마는 서랍에서 한복을 꺼내 입혀주셨어요. 가장 기쁜 날, 예뻐 보이고 싶을 때 꺼내 입는 옷이 바로 한복이었죠.”
황이슬 디자이너에게 ‘한복’에 애정을 갖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였다. 고운 한복 한 벌쯤 갖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고, 그 한복은 보통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나 입었으니까. 한복을 입으면 내가 유난히 예쁜 것 같았고, 특별해진 것 같았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요. 한복은 참 예쁘지, 무척 아름다워. 그런데 그렇게 예쁜 옷을 왜 평소엔 입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건 명절에나 입지 일상에 입는 옷이 아니라는 편견을 이유로 들어요.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한복이 입고 싶으니 꺼내달라고 하면 아무 때나 입는 옷이 아니니 안 된다고요. 의아했어요. 이렇게 예쁜데 왜 ‘아무 때나’ 입으면 안 되는 걸까. 그땐 몰랐죠. 요즘 시대에 입기에 한복은 기능적으로 여러 가지 결점을 가진 옷이라는 것을요.”
그동안 한복이 우리의 일상에 전혀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님과 고름, 커다란 소맷부리 등의 번거로운 부분을 단추와 지퍼 등으로 대체하여 입고 벗기 좋은 형태로 지은 현대형 한복, 일명 ‘개량한복’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옷은 주로 특정 계층 혹은 특정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옷이 되었고,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선입견을 갖게 했다. 그 인식을 전환하려면 그 이상의 기능과 스타일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목표는 하나였어요. ‘한복도 패션이다’. 한복이 우리 고유의 멋과 아름다움이 어린 전통 복식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패션으로서 당당히 시내 한복판을 활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그건 바로 ‘현재성’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생활한복 사업이 10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현재성’이다. 그가 말하는 현재성은 무엇일까.
“제가 옷을 만들 때 이 옷이 적절한가, 적절치 못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예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공간을 이용할 때에 제약이 많아요. 그런 복잡하고 좁은 공간에서 치마폭이 너무 넓다거나 손잡이를 잡을 때 옷이 방해된다면? 그건 전혀 적절하지 못한 옷이겠죠. 대중교통에서도 자유로워야 그야말로 생활한복이죠.”
전통적인 여성의 한복을 입고 지하철을 탔다고 상상해 본다. 가슴 위에서 끝나는 저고리는 손잡이를 잡을 때 겨드랑이를 훤히 내보일 것이고, 가슴부터 시작되는 풍성한 치마는 발 뒤꿈치까지 내려와 행여 문틈에라도 끼이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숱하게 오르내려야 하는 계단에서도 분명 번거로울 테고. 확실히 지금의 일상을 살아가기에는 불편함이 따르는 옷이다. 이런 부분에 현재성을 부여하여 활동에 불편을 주지 않는 ‘오늘의 한복’으로 디자인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도심에, 지금 이 시간에 뛰어들어도 어색함 없이 잘 섞이는 생활한복을 만드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그가 디자인한 옷을 구매하는 구매층을 보면, 20대와 30대가 70% 정도를 차지한다. 구매자의 대부분은 조금 특별한 옷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하고 옷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며 또 흐름을 선도하고자 한다. 어떤 행사를 앞두고 조금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거나 직업적인 이유로 생활한복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즘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구매자 층은 해외여행을 앞둔 여행자들이다. 그들 사이에는 한때 생활한복을 입고 해외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인증샷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엄마를 졸라서 생활한복을 사 입고 수학여행에 갔는데, 반 친구들은 물론 옆 반 친구들, 선생님들까지 모두 찾아와서 옷 참 예쁘다고 칭찬을 받았다는 고등학생 친구도 있었어요. 또 한국화를 그리시는 화가 분이 그림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식으로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생활한복을 입으니 사람들의 작품 이해에 더 깊이를 주더라는 말씀도 들었고요. 생활한복이 튀는 옷임은 분명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나를 매력적으로 보아주는 거죠. 아마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중적인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 같아요. 튀지만 튀지 않는, 관찰 당하지만 싫지 않은 그런 적절함을 생활한복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전통을 깨뜨리느냐고 손가락질 하는 분도 있어요. 우리의 전통에 함부로 손을 댔다는 것이죠. 하지만 전통은 한 시대에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선 시대에만 보아도 전기, 중기, 후기 모두 조금씩 다른 형태의 한복이 존재해요. 생활 형태의 변화에 따라 복식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죠. 지금 우리가 ‘전통 한복’이라고 말하는 혼수용 한복은 조선 후기, 개화기 시대의 형태입니다. 이 옷 역시 끊임없는 개량을 거쳐왔고, 각 시대에 맞는 천과 바느질 방식이 적용되어 왔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생각지 않고, 그저 형태만 떠올리는 거죠.”
의복에는 생활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의복이 달라지는 것은 명백하다. 그래서 그는 만일 ‘한복’을 주제로 하는 전시를 마련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 한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한복의 정형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 변해온 한복의 변화, 그 속에 녹아 든 민초의 삶이 반영된 기록을 남겼으면 한다고.
“양복은 다양한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아요. 헌데 한복은 예복 외에는 다 물음표죠. 아쉬워요.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한복은 더욱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해요. 한국식 스냅백이나 개나리봇짐을 이용한 백팩 등 무궁무진 하죠. 한복도 이렇게 다양한 영역이 고루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중에 저는 아주 작은, 제가 선호하는 하나의 영역을 행하고 있는 것뿐이니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한복을 개발해 주었으면 해요.”
세계적인 콜렉션에서 한복을 모티프로 한 많은 작품들이 선보여지는 요즘이다. 굉장히 고무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콜렉션에서 선보여지는 한복은 다정함이나 포근함보다는 이색적인 느낌이 강해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한복의 세계화에 굉장히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것에 균형을 맞춰가며 우리 일상에서의 생활한복이 번져가는 것은 얼마나 이상적인가.
“여전히 생활한복은 사람들의 선입견에 맞서야 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저는 다만, 많은 분들이 열린 마음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한복을 입으려면 머리를 풀면 안되지, 하이힐을 신으면 안되지 하는 엄한 잣대보다는 ‘아, 우리 한복이 젊은 세대에서는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라고 포용해주시면 어떨까요. 생활한복이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때로는 유행이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이기도 했을 의복은 시대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의복 스스로가 현재에 맞춰지기 위해, 스스로 미래를 향하기 위해 꿈틀대는 움직임은 흔치 않다. 젊은이들이 한 시대에 멈춰있는 한복을 지금의 시대로 소환하고 있다. 보기 드문 현상이다. 민속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기록일 것이다.
우리에게 한복이 마치 청바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젊은 한복디자이너이자 <손짱디자인한복>, <리슬> 브랜드를 런칭한 창업가. 젊은이들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모님의 커튼 가게에서 시작된 꿈이 이제 사람들의 일상에 친근하게 들어서고 있다.
글, 사진_ 편집팀
댓글 등록
Her design is useful and fancy at present.
활동성, 매력성, 현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