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은 2012년, 지역 박물관과 협업하여 지역 문화를 발굴하고 지역인재를 양성하는 ‘지역순회전 사업’을 시행했다. 이 사업을 통해 지역 박물관에는 문화 개발을 비롯한 다양한 기회를, 국립민속박물관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위한 풍성한 전시를 제공하는 상생효과를 얻었고, 2015년 K-museums 프로젝트라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올해 K-museums는 서울 한복판의 민속박물관이 아닌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산산림박물관, 전라북도 익산시 원광대학교 박물관 그리고 경상북도 경산시 경산시립박물관에서 공동기획전을 개최했다. 전시를 담당한 황경선 학예연구사, 김창호 학예연구사, 김영인 객원큐레이터를 한 자리에서 만나 K-museums를 돌아보고, 짚어가야 할 부분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김창호 학예연구사(이하 김창호)_K-museums는, 국립민속박물관과 지역 박물관이 협업하여 특별전을 개최하고, 이를 통해 지역 문화를 발굴하면서 지역 박물관의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입니다. 사실 지역 박물관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면서 예산을 지원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만큼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도도 떨어지고, 그래서 예산 운용 등에 있어 홀대 받기 쉽지요.
국립민속박물관은 중앙기관으로서, 특별전이 자주 운영되고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지만, 관내에서 그 콘텐츠가 재활용되는 것 외에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할 기회를 늘 찾고 있습니다. 이 요구사항들이 서로 잘 맞은 것이죠. 국립민속박물관은 전시 등의 노하우 제공과 예산을 확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지역 박물관에서는 해당 박물관의 정체성을 부각하여 그 필요성이 인식되면 활동과 예산이 증가하여 자생력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K-museums의 가장 큰 목적은 중앙과 지역 박물관의 공존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에 있습니다. 지역 박물관은 그 지역의 거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면 중앙의 역할도 분명해지죠. 상생은 무언가 주고받는다는 개념보다 박물관의 시스템이 균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형태가 갖추어 질 수 있음을 말하고, K-museums를 통해 그것을 꿈꾸는 것이죠.
황경선 학예연구사(이하 황경선)_이 사업은 2012년 처음 시작되었는데요. 그 해에 보령에 있는 ‘보령석탄박물관’과 함께 <보령남포벼루와 문방가구> 전시를 진행했어요. 이 박물관은 1995년에 설립된 박물관인데, 그 특별전이 개관이래 첫 특별전이었어요. 이전까지 전시관 전체가 상설전시실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특별전을 열 수 없었죠. 이 전시를 통해 특별전시 공간이 생겼고, 지자체에서도 박물관과 전시콘텐츠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매년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해요.
이것이 바로 K-museums의 목적한 바를 가장 잘 표명해준 박물관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매년 다양한 주제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김영인 객원큐레이터(이하 김영인)_우리 관에 도움이 되는 것도 물론 있어요. 전시를 열면 어떤 유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가장 관건인데, 우리에게 어떤 유물이 있고, 전시에 필요한 어떤 유물을 어느 박물관에서 대여할 것인가 기본 데이터가 중요해요. 이 목록관리가 굉장히 힘들죠.
그런데 K-museums를 통해 교류하게 되면, 저희가 그 박물관의 유물을 함께 살펴보았기 때문에 어느 박물관에 어떤 유물이 있다는 정보가 쌓입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유물, 인력 등의 한계를 좁히고, 범위를 넓혀가는 긍정적인 효과가 아주 크죠.
김창호_원광대학교박물관에 마련된 특별전 <巫무 – 인간의 염원을 하늘에 잇다>2016년 5월 20일~7월 16일는 故김태곤 선생의 기증품을 중심으로 신과 인간의 중재자가 된 무당의 모습과 역할을 다양한 전시자료를 통해 전달하는 전시입니다. 우리 관에서는 이 기증품들이 어디에서 수집되었고, 또 누가 썼던 것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들을 제공해 주었고, 이를 통해 유물 정리, 내력 관리 등이 모두 이뤄진 셈이죠.
원광대학교박물관에서는 이 특별전이 끝나도 상설전으로 이 전시실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해요. 대여 유물 없이, 그곳에서 보유한 유물만으로 전시가 꾸려졌기 때문에 상설전으로 충분히 전환 가능하죠.
이 박물관의 경우 대학박물관임에도 일반 시민 관람객이 많은 편이에요. 박물관 기능이 공공성을 가진 박물관으로 연장되니, 그 박물관이 보유한 유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박물관의 정체성이 더욱 확고히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영인_경산시립박물관 지역순회전에서는 꼭두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상례喪禮, 슬픔을 함께 나누다>2016년 6월 14일~8월 14일를 개최했어요. 이 특별전의 가장 큰 특징은 국·공·사립 박물관이 함께 기획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경산 지역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엿집 관련 상여계 문서중요민속문화재 제266호와 경산 지역의 부의기賻儀記, 통부록通訃錄 등과 꼭두박물관의 상여장식물 등을 바탕으로 전시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세 박물관의 담당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중, 기존의 상례전시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경산에서 하는 전시인 만큼, 경산의 지역성이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상례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인터뷰를 하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전시를 꾸몄습니다. 그 동안의 상례 관련 전시가 의례의 절차와 도구를 중심이 되었다면 이번 전시는 상례의 공동체적 성격과 사회통합적 의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황경선_통영시립박물관과 함께 개최한 특별전<통영統營, 명품으로 빛나다>2015년 6월 17일~8월 7일은 통영 공예의 역사와 실용성, 미감을 겸비한 생활 속 명품인 통영공예품을 소개하는 전시였어요. 통영시립박물관은 2013년에 개관해서 2014년에 지자체 예산이 낭비된다, 물먹는 하마다 라는 식의 지탄을 받기도 했어요. 예산이 부족한 곳도 아닌데 뭐가 문제일까 살펴보니 통영시립박물관이 통영의 공예품과 유물을 전시하는 곳임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이 없어서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었죠.
그렇다면, ‘통영의 공예품이 공예의 본고장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자’라고 정하고 통영시립박물관의 강선욱 학예사가 공예품 소장자들,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그들의 소장품을 특별전 기간 동안 대여하기로 했어요. 동시에 현재 통영 공예의 맥을 잇고 있는 지역 장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도 진행했고요. 드디어 특별전 개막식 날, 소장품을 대여해주신 분이 전시장을 둘러보시고는, 자신이 소중히 간직해온 자료를 기증하겠다고 의사를 밝히셨어요. 그 밖에도 여러 건의 기증과 기탁이 이어졌습니다. 이 특별전 덕분에 통영시립박물관은 박물관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면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고, 통영 공예품을 보전하는 지역의 대표박물관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민속박물관이 무조건 지역 박물관의 성장만 돕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도 받는 부분이 있죠. 저희는 생활사 박물관이라서 전시를 마련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올해 영인산산림박물관과 함께 기획한 특별전 <목가구, 나무의 이치木理를 담다>2016년 4월 6일~6월 6일는 ‘나무’와 ‘목가구’를 매개로 두 박물관의 특성과 자료를 융합하는 전시로 이뤄졌어요.
기존의 목가구 전시는, 대부분 목가구의 기능과 용도에 치중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나무의 물리적 성질과 그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영인산산림박물관은 나무의 물리적인 성질을 자연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여기에 오랜 시간 나무와 함께 해 온 우리의 생활사가 하나로 어우러져 그야말로 융복합 전시가 완성될 수 있었죠.
황경선_그리고 지역 박물관의 학예사가 어떤 의지를 가졌는지도 결과에 큰 영향을 주어요. 예산을 확보해서 특별전을 개최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지, 아니면 박물관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지역에서 박물관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표인지. 확실히 후자 쪽에 의지를 가진 학예사와의 협업이 훨씬 수월했어요. 분명한 목적과 발전을 위해 지원했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굉장히 적극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펼치거든요.
김영인 객원큐레이터, 황경선 학예연구사, 김창호 학예연구사
학예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박물관 업무에 대한 관심과 인정입니다. 그분들이 자신이 속한 박물관에서 해야 할 일은 사실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이에요. K-museums를 통해서 학예연구사가 이런 일을 하는 거고, 이런 전시를 꾸려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거구나, 라는 것을 체득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세 명의 담당자는 이 프로젝트가 중앙과 지역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서로의 발전을 독려하며 상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그리고 이 기회와 혜택이 더 많은 기관에게로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을 보탰다. 앞으로 K-museums 프로젝트는 일정 기간, 지금의 운영방침을 유지하게 될 예정이다. 지역 박물관이 각 지역성을 발휘하여 그곳에서 스스로 움직이고,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시스템에 정착하기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지금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