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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추천

큐레이터 최은수에게 듣는 옛날 비옷이야기

장마의 끝자락. 산 중턱에 구름이 무겁게 걸려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더 큰 비를 예감하게 한다.
이런 날은 외출을 안 하면 좋으련만….
비를 핑계 삼아 게으름 피울 만큼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
갓 위에 대나무 살을 기름종이로 덮은 갈모를 쓴다.
모자가 만든 그늘과 비가 떨어져 흐르는 소리가
이유 없는 안도감을 준다.

우중 나들이. 나막신을 신고 길을 나선다. 광화문 대로에 장마비가 내린다. 흰색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갓 위에 갈모를 쓴 노인, 도롱이를 걸치고 머리에 삿갓을 쓰고 소를 끌고 가는 농부, 큰 방갓으로 온 몸을 가리고 가는 아낙, 나막신을 신은 할머니와 손녀가 길을 걸어간다.
제법 굵어진 빗 속을 갈색 삼각형들이 천천히 움직인다. 나도 그 삼각형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우산 대신 갈모와 방갓을 머리에 쓰고, 우비보다도 멋진 도롱이를 입고, 장화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버선발이 젖지 않게 나막신을 신었다. 이렇게 비 내리는 날 비에 젖지 않도록 차려입는 차림을 우장雨裝이라고 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도롱이와 삿갓을 쓴 차림새
비 오는 날, 도롱이와 삿갓을 쓴 행인_내셔널지오그래픽 1910.11
먼저 우비인 도롱이는 ‘도랭이·둥구리·되롱이’라고도 부른다. 한자어로는 사의蓑衣·우롱雨籠이라고 하는데, ‘띠 풀로 만든 옷, 비를 피하는 덮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도롱이는 띠 풀이나 볏짚·보릿짚·밀짚 등으로 만드는데, 층층이 치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속을 보면 아주 정교하게 뜨개질을 한 것처럼 짜여 있다. 그래서 빗물이 겉으로만 흘러내리고 안으로는 스며들지 않는 매우 과학적인 비옷이다. 농촌에서는 비 오는 날 들일을 할 때 어깨·허리에 걸쳐서 사용했으며, 머리에는 삿갓을 썼다.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와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에게 각기 내구마內廐馬 1필씩을 내려 주고, 또 제로 하여금 겸사복兼司僕 김이金彝와 더불어 활을 쏘도록 하였는데, 김이가 여러 번 맞히니 임금이 활 1장과 도롱이衰衣 1벌을 내려 주었다.”
 세조5년, 1459라는 기록으로 보아 도롱이는 매우 귀한 물품으로 하사품 또는 사신의 선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추운 겨울에는 군사들이 산이나 들에서 밤을 지새울 때에 이불로 사용하거나 말 탈 때 방한용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어 겨울에도 매우 요긴한 물품이었다.

 

한편 신발은 징이 붙어있는 징신, 나막신을 신었다. 나막신은 통나무 속을 파내어 배 모양으로 만들고, 신의 앞뒤에 굽을 달아 신었다. 그래서 실제로 신어보면 매우 무겁고 불편하며, 또 걸을 때 소리가 나서 예의를 차리는 자리에서는 신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유물을 보면 굽이 닳아서 없어진 것, 굽을 고쳐서 신은 것 등이 있어서 나막신을 꽤 즐겨 신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이의 장수와 복을 기원하며 생일선물로 준 나막신, 신코에 무늬를 새겨 넣어서 만든 여성용 나막신, 투박한 남자신 등이 전해지고 있다.

 

갓과 갈모

갓과 갈모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다양한 나막신

다양한 진신

 

머리에는 무엇을 썼을까? 부채모양 모자의 갈모를 썼다. 갈모는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는 것으로 원래의 이름은 갓모笠帽이며, 우모雨帽라고도 했다. 갈모의 모양은 펼치면 위가 뾰족하여 고깔 모양이 되고, 접으면 쥘부채처럼 된다. 기름을 먹인 갈모지 사이에 가는 대나무를 붙이고, 꼭대기에 닭 벼슬처럼 생긴 꼭지를 달아 만들었다. 비가 올 때 우산처럼 펴서 갓 위에 덮어쓰고 실끈으로 턱을 매었는데, 갓 없이 쓸 때는 갈모테를 쓴 다음에 썼다. 그러나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꼭 날씨나 계절에 상관없이 사계절 내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해가 내리쬐는 더운 여름에는 양산처럼 쓰고, 눈 내리는 겨울에는 우산 대용으로 쓴 것이 참 재미있다.

 

조상들의 비옷은 화학재료로 만든 우비나 우산, 장화, 젤리슈즈 등 오늘날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를 재료로 한 친환경 우장이다. 이것만으로도 자연에 순응하고, 즐기며 살았을 조상들의 삶이 느껴진다.
장마가 한창인 요즘 인왕산에는 비구름이 무겁게 걸려있다. 우산, 우의 그리고 장화…. 날이 궂어도 멈출 수 없는 일상은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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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은수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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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한근수 댓글: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비옷이 참 흥미있네요.
    알기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환경 개념도 그 당시에는 없었겠지만
    이제와서 보니 이런 제품을 자연으로부터
    구해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그들의 탐구정신에 경의를 표하는 바 입니다.

  2. 정려진 댓글:

    안녕하세요? 저는 기업체 홍보실장이며 마케팅 디자이너 정려진이라고 합니다. 한달 간 도롱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 큐레이터님의 알찬 정보에 이거야~ 하는 느낌이 들어 고마운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늘 여기서 보내주시는 귀한 사진과 소식 …잘 받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초등학생 내 아이들을 데리고 또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방학을 통해 우리의 옛것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싶은 워킹맘입니다. 수고하세요

  3. 김서린 댓글:

    재미도 있고 요즘의 날씨와도 걸맞아.. 즐겁게 읽어내려갔습니다
    님의 좋은 자료 덕분에 안목을 넓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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