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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속의 저장공간, 시장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유적지나 박물관, 그리고 ‘재래시장’에 가 보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초월해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와 문화가 저장된 유적지나 박물관은 이해된다. 하지만 시끄럽고 정신 없는 시장에서 어떻게 그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듣기 위해 건축가 김종대를 찾았다. 그의 사무실은 서대문 사거리에 있는 영천시장 끄트머리에 있었다. 그가 영천시장사업단장으로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었다.

 

시장, 민속이 모이는 곳

 

건축가 김종대는 2008년부터 5년간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건물을 짓는 건축과 물건을 파는 시장. 가까운 듯하면서 멀게 느껴진다. 그에게 시장이 무엇이길래, 본업에 종사하는 만큼의 시간을 투자해가며 매달리는 것일까. “저에게 시장은 곧 민속이 모이는 공간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민속은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거든요. 시장에는 주판과 모바일 앱이 공존하고 좌판부터 기업형 도매상가까지 공존합니다. 코흘리개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모두가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모이잖아요. 재래시장 외에 이런 복합 공간은 없습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쌓이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물건과 기술들도 쌓이는 시장이야말로 진짜 민속적인 공간이라고 말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생활을 가장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시장을 꼽는다. 그 이유 역시 시장이 가장 민속적인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특히 시장에만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 대해서 언급했다. “진정한 만남이라는 건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형 상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에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만날 일이 없어요. 그런데 재래시장에서는 물건을 사고 팔면서 소통이 안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 만남이 쌓인 흔적들이 민속 아닐까요?”

 

소통과 재미가 있는 공간

 

시장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재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현장이자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곳이다. 단순한 시장 터가 아닌, 아테네의 정치공간이자, 문화공간, 사교의 장, 경제활동의 터전이었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시장은 모든 걸 포괄하는, 삶의 중심지로서 큰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시장이 하던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른 공간들이 생겨났고, 시장은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건축가 김종대는 시장도 대중의 입맛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것만으로는 시장이 차별화 될 수 없어요. 시장의 강점은 물건을 사고 팔며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거죠.”

 

그는 외국의 프리마켓과 그린마켓을 예로 들며, 시장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사실 프리마켓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장사가 그렇게 잘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왜 황금 같은 주말을 소비해가며, 잘 팔리지도 않는 걸, 굳이 가지고 나와서 파는 걸까요?” 그는 재미와 소통 때문이라고 답하며, 뉴욕의 그린마켓을 방문했던 경험을 말했다. “가령 사과 잼을 판다고 했을 때, 판매자가 사과 잼을 만든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이 아주 흥미로워요. 가만히 서서 듣고 있게 되죠. 그 소통의 과정이 재미있고 상품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지는 거죠.”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스템에 의해 소외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시장을 선택한 거예요. 이런 소통과 재미가 있는 공감의 공간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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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강원도 고성군의 간성읍장 정경.
깊은 산 속에서 캔 산나물이나 더덕 등을 들고 나와 장터 골목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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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시장 정경.
세련된 간판과 아치형의 지붕, 말끔한 바닥이 눈에 띈다.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재래시장은 아직 어중간한 형태로 존재한다. 프리마켓도 아니고 그린마켓도 아니다. 건축가 김종대는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시장이 활성화되고, 자기만의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시장이 체험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과 관련된 어떤 체험이 즐거우면 젊은이들이 친숙함을 느끼고 시장을 많이 찾게 될 거예요.”

 

그에게 젊은이들의 체험을 위해 시도한 프로젝트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캐시몹을 예로 들었다.
SNS를 통해 작은 이벤트를 열어 젊은이들을 시장에 모이게 하는 거예요. 아니면 젊은이들이 시장에 자기 샵을 내고 SNS를 통해 광고했던 경우도 있어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과 시장을 결합시키기만 하면, 시장에 대한 홍보 효과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신나 보였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에 대해서도 말했다. “어린이들과 시장을 체험하며 상점마다 이야기를 붙이고, 이를 토대로 이야기 지도를 만들었어요.” 이처럼 젊은 세대들이 직접 체험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언어와 놀이로 시장이 재구성되면, 시장의 가치가 높아지고 수명이 길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민속에 대해 말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장을 찾아와 체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민속 아닐까요.”

 

인터뷰가 끝난 후, 김종대 건축가와 영천시장을 걸으며 꽈배기도 사고 떡볶이도 먹었다. 자연스럽게 김말이와 순대를 추가하고, 상인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은 마치 시장 상인처럼 보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영천시장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그가 상인처럼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도 상인이었다. 돈 대신 이야기와 관심을 받고, 물건 대신 시장과 문화를 파는 상인. 그와 시장을 응원한다. 복작복작한 사람 냄새와 재미있는 체험의 힘으로 굳건히 일어나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한다. 오래 전 엄마 손을 잡고 걸었던 시장이 그리울 때, 언제든지 찾아가서, 그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건축가 김종대 |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2005년, 파키스탄으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돌아와 재능기부 형태로 농촌체험 시설에 대한 디자인 컨설팅을 했고, 2008년부터 5년간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인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억으로 지은 집의 설계자로도 유명한 그는 현재 디자인연구소 이선의 대표와 영천신시장사업단 단장을 겸하며,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문화기획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글·사진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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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영순 댓글:

    전통시장의 활성화는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전통시장이 현대시장이 되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시골 5일장도 이름만 5일장이지 상설시장과 다를바 없는 곳이 대다수입니다.
    활성화로 인해 추억이 사라지고 정이 사라진 상술만이 남는 전통시장과 5일장은 오래지 않아 외면될 것입니다.
    시장 한바퀴 돌고나면 마음이 풍족해졌던 어릴적 기억되는 시장이 그립습니다.

  2. 정민영 댓글:

    어렸을 적 시장은 소통의 광장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구획되지 않은 광장이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하면 이 재래시장 아니었을까 합니다.
    소통 혹은 창조 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던 공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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