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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비단결 같은 산과 강 그리고 사람들
금산,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이름은 들어봤지만 실제 가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장소들이 있다. 그곳에 존재하는 혹은 생산되는 무엇인가의 명성은 높지만, 그것을 직접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할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직접 경험이 필요하다. 귀한 비단처럼 숨겨놓은 금산을 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곳에 맞닿아 있지만, 많은 것을 감춘 고장
금산은 그 지리적 특징이 독특하다. 충청남도의 동쪽 위로는 대전광역시, 오른편으로는 충청북도, 아래로는 전라북도와 면해 있다. 그러다 보니 소속 행정구역이 자주 변경되곤 했다. 1895년에는 충청남도 진산군이었지만 이듬해인 1896년에는 전라북도로 편입되었고, 1914년에는 진산군 인근 지역과 함께 금산군으로 통합되었다. 이어 1962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와 같은 충청남도 금산군으로 재편성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그 이름과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해도, 많은 사람은 금산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각별한 인지도를 갖고 있다. 그곳에서 재배되는 인삼 때문이다. 한때 전국에서 유통되는 인삼의 80%가 금산에서 거래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산은 인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기후가 인삼 재배에 알맞기 때문이다. 물론 인삼은 그 특성상 한 번 수확한 후 오랫동안 휴경 기간을 가져야 하지만, 뛰어난 재배 기술과 다양한 유통망을 확보한 전문 농업인과 상인들이 모두 금산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인삼 수도”의 위상을 갖추게 된 것. 그래서 금산과 지형과 기후, 풍토 등이 유사한 곳에서 재배된 인삼들은 우선 금산으로 모이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이제는 경기도와 충청북도 등으로 재배 지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금산은 여전히 전국 인삼 재배 면적 중 1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 그래서 금산 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 안에서도 검은 가림막을 설치해 놓은 인삼밭과 그로부터 풍겨오는 향긋한 인삼 향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젊은 박물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
지난 2018년 5월 28일은 금산군 역사에 오래도록 기록될 날이었다. 금산군 내 유일의 공립박물관이자 지역주민의 문화공간인 금산역사문화박물관이 새롭게 탄생한 순간이었으니까.
“실질적인 준비는 2014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금산의 역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많은 노력들 덕분에 1,700여 점의 유물을 수집해 1층 금산역사관과 2층 금산생활민속관에서650여 점을 전시하게 되었지요.”
금산역사문화박물관의 안재필 학예연구사는 “금산역사관을 통해 우리나라의 보편적 통사를, 금산생활민속관을 통해 금산만의 토속신앙과 향토문화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 1층에서는 구석기 유물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대표적 유물들을 차례대로 감상할 수 있었는데, 안재필 학예연구사는 “특히 구석기 유물들은 금산에서 발굴된 것들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라고 강조했다.
“구석기 유물의 특징 중 하나는, 발굴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당시의 인구밀도가 워낙 낮았기 때문이죠. 그런 유물들이 출토됐다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금산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금산의 특징을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금산생활민속관에서는, 농민들이 실제 사용하던 각종 농기구와 풍물기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중요한 행사 때 사용하던 호쾌한 문양의 실물 깃발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한, 금산 지역 내 토속신앙에 대한 설명이 실감 나는 모형들과 함께 자세히 설명돼 있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금산이 어떤 곳인지 알리는 데에 아쉬움이 없는 알찬 기획과 전시였다.
박물관 바깥을 향하는 프로그램 운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관 직후인 2019년 3월에는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다문화꾸러미 대여 운영 사업을 진행했으며 2021년에는 민속생활사박물관협력망 교육운영사업에 선정되어 금산에 소재하고 있는 태조대왕 태실을 활용해 조선의 안태문화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 주말이면 시끌벅적해지기 일쑤라는 금산역사문화박물관. 이제 막 개관한 박물관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선한 기운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즐거운 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었다.

금산의 참모습, 푸르거나 인상적이거나
금산을 돌아볼 계획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금산산림문화센터다. 중부권 최고의 생태종합휴양단지를 자처하고 있는 이곳은, 휴양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시설이 항상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선호가 높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을 동반한 경우, 목재체험장에서 다양한 공작활동을 통해 목걸이부터 목제 스피커까지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좀 더 활동적인 가족과 동행한다면 잘 꾸며진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선택의 폭도 상당히 넓은 편. 금산뿐 아니라 인근 지역으로의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숙박을 겸해서라도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금산은 국내 최대 인삼 유통 거점. 단순히 물동량이 많다는 의미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인삼과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들이 금산에 모여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지금이야 의학과 각종 건강기능 식품의 발달로 인해 인삼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실험들이 더 많은 인삼의 효능들을 밝혀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금산의 인삼시장은 여전히 많은 종류의 인삼들이 가득 차 있다. 인삼은 크게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수삼과 수삼의 껍질을 벗겨 하루 이틀 말린 백삼, 수삼을 증기로 찐 후 말린 홍삼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금산에서 주로 유통되는 것은, 최대 산지라는 명성에 걸맞은 싱싱한 수삼들. 크기와 모양 등에 따라 몇 가지 등급으로 분류하는데, 판매는 1채(750g) 단위로 이루어지는 게 보통. 물론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가정에서 삼계탕 재료로 사용할 정도라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만약 인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건너편에 금산인삼관을 찾도록 하자. 3층에 걸쳐 인삼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공부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초대형 인삼주 단지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장엄함을 자랑한다. 덕분에 이곳을 찾게 된 이들은 금산에서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된다. 인삼이, 아니 금산이 한민족의 건강과 안녕을 오랫동안 지켜왔던 것처럼 말이다.

 

미니인터뷰

금산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알리겠습니다
-안재필(금산역사문화박물관 학예연구사)

젊은 박물관이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금산 유일의 공립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많은 분이 함께 노력하고 계십니다. 덕분인지, 한 번 찾으셨던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재방문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지요. 특히 한 번 봤던 유물을 다시 한번 자세히 관찰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그런 분들이 블로그나 SNS에 좋은 후기를 남기신 것을 보면 감사하고 보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는, 금산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획을 준비 중입니다. 금산은 삼국시대 때부터 상당한 전략적 요충지였거든요. 보은에는 삼년마다 주인이 바뀐다고 할 정도로 치열했던 삼년산성, 금산 바로 옆 옥천에는 백제 성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다가 전사한 관산성, 그리고 금산에는 백령산성이 소백산맥을 따라 대 신라전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백제의 성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다 전사했던 곳도 바로 관산성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길목이었고요. 왜군은 호남을 차지하기 위해 수군은 한산도로, 육군은 금산의 이치로 진격하였는데요, 한산도에서는 이순신에게 막히고 이치에서는 권율에게 격퇴 당하면서 호남 진출이 무산되고 임진왜란 전체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또 권율에게 격퇴 당한 왜군들을 토벌하기 위한 고경명과 의병들이 전사한 곳도 금산이며, 뒤이어 조헌의 700 의병이 다시 공격하여 순절하고 칠백의총을 세운 곳도 바로 금산입니다. 권율 장군이 승전고를 울렸던 이치대첩 이전, 왜군들은 금산전투에서 적잖은 병력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왜군들이 금산을 아무 소모 없이 지나쳤다면 이치대첩은 성립 불가능한 전공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전시할 수 있는 당시의 유물은 없지만, 메타버스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한반도 역사에 있어서 금산이 어떤 곳이었는지 더 많은 분께 선보이려 합니다. 새롭게 찾아올 전시를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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