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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조기 명태 멸치
해양문화특별전

궁금하지 않으세요?
우리 바다에 수백 종의 물고기가 서식하는데 하필 조기·명태·멸치일까요? 조기가 서해로 북상하지 않자 맛과 모양새가 비슷한 물고기를 찾아서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가서 수입합니다. 명태는 우리 바다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수산물 수입 부동의 1위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보다 멸치를 많이 먹는 곳은 없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해양문화특별전의 대표 어종으로 선정해 전시하는데 수치에만 의존한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과연 조기·명태·멸치는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명태의 나라
조선은 명태의 나라였습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명태는 추석부터 많이 잡혀서 그물질 한 번에 배가 가득 차 산더미처럼 쌓인다.”라고 했고,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원산은 사방으로 장사꾼이 모여드는 곳이다. 명태 운송은 동해 물길을 따르고, 말로 실어 나르는 길은 철령을 넘는데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나라에 넘쳐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많이 잡혔으면 산더미처럼 쌓이고, 온 나라에 넘쳐났다고 표현했을까요. 1917년 기록을 살펴보니 총어획량의 28.8%였습니다. 한반도 바다에서 잡히는 수백 종의 물고기 중에서 단일 어종 어획량이 ’열에 세 마리‘라는 건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광복 후 명란젓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 1913~1980는 일제강점기 때 부산에 태어났습니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던 명란젓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거죠. 일본이 패망하자 후쿠오카로 건너가서 명란젓을 팔았는데 일본인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명태의 일본어 발음 ‘멘타이’에 ‘새끼’를 뜻하는 일본어 코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용어가 멘타이코明太子입니다. 중국 ‘밍타이위’, 러시아 ‘민타이’ 역시 명태를 자국어로 발음한 표기입니다. 한국어 ‘명태’가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퍼져나간 것입니다.

가장 좋아한 생선, 조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조기를 좋아했습니다.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상인의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배로 사방에 실어 나른다. 소금에 절여 건어를 만들고, 소금에 담가 젓갈을 만든다. 나라 안에 흘러넘치는데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귀한 생선으로 여기니, 대개 물고기 중에서 가장 많고, 가장 맛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서유구의 「난호어명고」 바닷물고기 편과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석수어조기’를 첫머리에 둔 것은 조선에서 조기를 중시했다는 방증이겠죠. 「자산어보」에는 “조기 떼를 만날 적이면 산더미처럼 잡을 수 있으나 전부를 배에 실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어획량을 자랑했기에 사람들은 조기를 가리켜 ‘전라도 명태’라고 불렀습니다.

 

맛의 지휘자, 멸치
우리네 밥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물고기는 뭘까요? 저는 단연코 멸치라고 말합니다. 멸치는 돔, 장어, 갈치, 고등어처럼 식탁 위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멸치의 힘은 젓갈, 액젓, 분말, 육수 형태로 다른 음식에 스며들어 맛을 내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멸치를 먹습니다. 김치를 먹어도 멸치를 먹고, 국을 먹어도 멸치를 먹으며, 나물을 먹어도 멸치를 먹습니다.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도 만든다. 때로는 말려서 고기잡이의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거도에서 잡히는 멸치는 몸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겨울에도 잡힌다. 그러나 관동에서 잡히는 멸치보다 못하다. 살펴보니 요즘 멸치는 젓갈용으로도 쓰고, 말려서 각종 양념으로도 사용하는데 선물용으로는 천한 물고기다.”라고 「자산어보」에 기록돼 있습니다. 멸치는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식재료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멸치를 젓갈 또는 말려서 포를 만들거나 각종 양념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멸치는 밥상 위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맛의 지휘자였던 셈이죠.

흔해서 귀하게 쓰인 물고기
“여항의 평민은 명태로 포를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가난한 가계의 유생 또한 제물로 올릴 수 있으니, 흔한 것이면서 귀하게 쓰인다”라고 이규경1788~1856은 말했습니다. 명태와 조기는 흔해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제사상에 오르는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규경은 멸치에 대해 말하기를 “그물을 한 번 치면 배에 가득 차는데 곧바로 말리지 않으면 썩어서 퇴비로 쓰고, 산 것은 탕을 끓이는데 기름기가 많아서 먹기 어렵다. 마른 것은 날마다 반찬으로 삼는데, 명태처럼 온 나라에 두루 넘친다.”라고 했습니다. 온 나라에 두루 넘쳐서 날마다 반찬으로 삼을 수 있는 물고기가 멸치였습니다. 조기, 명태, 멸치는 흔해서 우리에게 소중한 물고기였습니다.

 

여전히 ‘조명치’의 나라
서해로 북상하는 조기 떼를 따라 수천 척 어선이 뒤따르고, 어선의 뒤를 또 수백 척의 상선이 줄짓던 장관은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기는 이제 서해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조기 어획량이 급감하자 세계 곳곳을 뒤져서 모양과 맛이 유사한 물고기를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 서부 연안의 ‘영상가이석태’는 물론이고 ‘세네갈가이석태’, ‘대서양조기’ 등 일명 뾰족 조기로 불리며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명태는 동해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돌아올 징후가 없습니다. 동해에서 명태 어획량은 ‘0’이므로 100% 외국에서 들여옵니다. 2022년 수산물 총수입 121만 7,969톤 중에서 냉동 명태 수입이 33만 6,287톤이었습니다. 동해에서 단 한 마리의 명태도 잡히지 않지만, 소비량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멸치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우리네 밥상을 좌지우지하는 물고기입니다. 한국인 밥상의 숨은 주인공입니다. 여전히 한국은 조기, 명태, 멸치의 나라입니다.

전시 주인공은?
삶의 터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생동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원, 황태 덕장 사람들, 어시장 상인, 위판장 경매사와 중도매인, 시장상인, 조리사 등 조기·명태·멸치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동안 익숙했던 정숙하고 우아한 전시가 아니라 생업 현장의 떠들썩함을 들려주는 전시입니다. 눈으로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왁자지껄한 소리로 느끼는 전시입니다.

밥상에서 바다로
밥상 위의 음식은 많은 사람의 노고가 모인 결과물입니다. 어획, 가공, 유통, 판매, 조리하는 과정은 밥상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전시의 시선은 밥상, 시장, 바다로 확장됩니다. 이번 해양문화특별전은 조기·명태·멸치가 우리에게 지닌 의미를 찾아 밥상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글 | 김창일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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