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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이 전하는

정동에서 자라난 빨간머리 앤의 이야기

소설 <빨간 머리 앤>을 아시나요?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지은 이 소설은 1908년 출간된 이후 전 세계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원제는 로 직역하면 ‘초록 지붕 집의 앤’인데요. 특히 1979년 <빨간 머리 앤>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며 본 소설은 더욱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우리나라에 소설 <빨간머리 앤>이 들어온 것은 언제일까요? 바로 이화학당의 교지 <거울>을 통해서였습니다. 이화학당의 교사 신지식은 1962년 교지를 발간하면서 <붉은 머리 앤>을 번역해 소개했습니다. 교지가 배포되는 화요일 점심시간은 학교 전체가 조용할 정도로 소설의 인기는 상당했다고 합니다. 항상 밝고 희망적인 캐릭터 앤에게 이화학당의 학생들은 자신을 투영하기도 했습니다. 교지 <거울>뿐 아니라 <이고>, <배꽃> 등의 교지를 여러 차례 편찬하고 백일장, 문학의 밤, 시 낭송의 밤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진행하며 학생들을 문학의 길로 이끌었습니다.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 기관인 이화학당이 자리했던 정동에서 교지 활동으로 성장한 여성 문인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정동에서 피어난 문학향기>. 국립민속박물관과 이화박물관이 함께 K-museum 공동기획전 사업으로 진행한 이번 전시는 이화학당과 여학생들 그리고 여러 문인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동과 이화학당은 여자들에게 갖는 의미가 큽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교사상으로 인해 여자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시기에 이화학당은 여자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갖고 한 명의 여학생으로 거듭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국어부터 시작해 세계 지리까지 다양한 학문을 배운 여학생들은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화학당에서 글을 배운 여학생들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거울>, <신여자>와 같은 교지를 만들며 문학에 대한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화학당은 문예반을 운영하며 교내 문예 콩쿠르를 개최하고 ‘이화문학상’을 시상함으로써 학생들이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다채로운 교내 문학 활동이 전시되어 있어 이화학당의 학생들이 성장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전시관의 한편에는 교지가 편찬되는 과정을 도식화한 장면과 당시 이화학당의 교실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교실의 왼쪽 벽에 적힌 “나는 이화의 거울이다”라는 문구는 교지를 편찬하던 학생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매 호 글을 써나갔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이렇게 문학의 꿈을 키운 이화의 학생들은 훌륭한 문인으로 성장함으로써 그 꽃을 피웠습니다. 초기에는 여성들의 문학 활동을 여류문학으로 부르며 그 특징을 한정적으로 바라보았으나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문학으로서 그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신동춘, 강성희, 전숙희, 이영희, 김제영, 허근욱, 손장순, 김지원의 작품을 전시하여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등 다방면으로 활약한 이화의 학생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동문학가 신지식은 이화학당과 여성 문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화여고 재학 당시 단편 소설로 등단한 이후 20여 편의 창작집을 출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아동문학가로 자리 잡은 신지식은 자신이 졸업한 이화여고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붉은 머리 앤>을 번역하여 교지에 소개했습니다. 이후 <빨간 머리 앤>으로 제목을 수정하여 소설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신지식이 기증한 자료와 그녀의 유품은 이화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전시장 내에 울려 퍼지는 <빨간 머리 앤> 주제곡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1886년 이화학당이 터를 잡은 정동은 근현대의 어지러운 현장 속에서 전통문화와 이국적인 문화가 공존했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글을 배우고 문학의 꿈을 키운 여학생들은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문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노력은 이화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 전시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진행됩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정동에서 피어난 문학 향기를 만끽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 | 박선형_제10기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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