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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도시 속의 섬, 그 오래된 이야기 부산 영도

영도, 영도구. 부산 바깥에 사는 이들에게는 그저 부산의 어떤 지명 혹은 행정구의 명칭이겠거니 싶은 이곳은, 부산 시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아주 오래된 전설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이주해 온 사람들도 있으며,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풍경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의 그리고 한반도의 아픔을 기억하는 곳
영도는 부산에서 가장 외떨어진 지역이면서도 지리적으로는 부산의 중심지와 가장 가깝다. 다양한 어패류가 거래돼 전국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자갈치 시장과 과거 부산의 중심지였던 남포동과 광복동, 대한민국 수출 최전선인 부산항까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이 바로 영도다. 하지만 심리적 거리가 물리적 거리만큼 가깝지는 않다. 부산 중심지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섬인 탓에 다리를 건너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도는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조선철공소’가 들어선 곳. 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항해를 마치거나 앞둔 선박을 정비하는 곳이 늘어났고, 1970~80년대 원양어업 붐과 함께 선박 수리 조선의 메카1)로 발돋움했다. 특히 대평동이 그러했다. 그래서 새로 배가 들어오면 기술자들이 장비를 들고 배에 올라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고치고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붙은 이름이 ‘깡깡이 마을’이다.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던 과거의 영광은 이제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평동에는 같은 일을 하는 회사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다만 풍경은 달라졌다. 예술마을 프로젝트를 통해 온통 회색 혹은 검은색 장비와 부품, 기름통으로 가득 차 있던 공장들에는 벽화가 그려졌고 운항을 멈춘 배는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런 깡깡이 마을에서 내다보이는 영도다리는, 6·25전쟁 당시 실향민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북한군을 피해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던 피난민들은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헤어지는 일이 빈번했기에 영도다리 인근에는 헤어진 가족과 친지를 찾는 인파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래서 영도다리는 한때 부산뿐 아니라 한민족 전체의 아픔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런 상징성을 가진 영도다리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는데, 1932년 3월 착공해 1934년 11월 도개교跳開橋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교체의 한 끝 또는 양쪽 끝이 들리게 된 구조의 다리로 개통됐으니 2022년 현재 다리가 놓인 지 88년이나 됐다. 물론 그사이 여러 번의 보수공사가 진행되었고 특히 1966년 9월에는 차량 통행량 증가로 인해 더 이상의 도개는 이루어지지 않는 다리로 변모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11월, 기존 왕복 4차선 다리를 왕복 6차선으로 확장하며 영도다리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였던 도개 기능을 다시 회복하고 도개 행사로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았다. 현재는 해마다 10월이면 영도다리를 주제로 하는 축제를 열어 영도다리의 상징성과 영도의 정체성을 기리고 있다.

 

저 위, 봉래산에 사는 영도할매
섬들이 대개 그러하듯 영도에도 산이 있다. 해발 395m 높이의 봉래산이 바로 그곳. 총 16개의 둘레길을 갖고 있어 영도 주민들의 훌륭한 산책길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어져 온 영도할매 전설의 주된 배경으로 더 유명하다. 영도할매는 영도를 지켜주는 수호신과 다름없는데, 다만 영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누구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영도 바깥으로 이사하려는 사람들은, 영도할매가 잠이 든 밤에 몰래 영도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부산 사람들이 “영도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고 하던 말도 여기서 유래됐다. 물론 이제는 그저 오래된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지만,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대도시인 부산 안에서도 이런 신화적 공간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영도가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독특한 문화가 단지 영도와 부산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토박이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영도를 찾은 이들이 지금의 풍경을 만들었다.

바다가 있으면 어디에도 있는 영도의 삶
영도에도 해녀들이 있다. 제주에서 이주해 온 이들이다. 그들은 제주에서의 삶을 영도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도 바다가 있고 그 바다에 해삼, 멍게, 전복, 성게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주 바깥에서도 해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출향 해녀’라 부르는데, 영도는 출향 해녀들의 첫 기착지였다. 1887년, 벌써 100년도 더 된 일이다. 영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 할 수 있는 태종대로 향하는 길목에는 그런 해녀들을 기리는 영도해녀문화전시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제주 해녀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영도까지 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물질을 해왔는지 소박한 전시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특히 VR을 통해 직접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또한, 전시관 1층에는 실제 해녀들이 영도 앞바다에서 채취한 갖가지 해산물을 직접 맛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어 더더욱 특별하다. 영도로 모여든 이들은 비단 해녀들만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수많은 피난민이 이곳 영도로 피난을 왔고 새롭고도 고단한 삶을 시작했다. 따라서 제대로 된 곳에서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비탈진 곳에 집을 짓고 이곳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그 고단함과 수고로움은 이곳저곳에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은 하얀 포말을 만들어내는 해안선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졌으며,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흰여울마을의 역사가 되었다. 지금의 흰여울마을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름다운 배경으로 등장해 더 없이 낭만적인 공간으로서 그 기능을 더하고 있다. 이곳은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연상하게 한다.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고취시키는 것은, 10여 년 전부터 영도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다양한 카페들이다. 특히 오래된 산업시설 등을 개조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들의 등장은 영도를 부산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음식만큼은 크게 변화가 없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돼지국밥은 더더욱 그러한데, 트렌드에 맞춰 가벼운 맛으로의 전환을 이루기보다는 예전 그대로의 깊고 진한 맛을 그대로 이어가는 게 영도 돼지국밥의 특징. 재미있는 사실은, ‘누린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진한 맛의 돼지국밥들이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유명 국밥집에서는 점심시간 대기를 각오해야 한다.

 

영도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부산국제크루즈터미널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을 찾는 게 좋다. 올해로 개관 10년을 맞은 박물관은, 부산뿐 아니라 한반도의 해양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한편 미래로의 발전 방향을 확인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되어 있는 모형들과 유물들의 상태, 그리고 관람객을 배려하는 동선과 공간 구성, 조명 등은 전국 어느 박물관보다도 트렌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오래된 도시의 가장 신선한 장소가 박물관이라는 사실은, 마치 영도의 현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산으로의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반드시 영도를 포함시키도록 하자. 부산뿐 아니라 한반도의 오랜 역사가 거기에 오롯이 담겨 있으니까.

1)  영도에서 찾지 못하는 것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선박부품업체가 집결되어있는 곳으로 불렸다.


글 | 정환정_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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