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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1 | <역병, 일상> 특별전

마스크에 가린 미소지은 얼굴 온전히 바라 볼 일상을 위해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별을 경험한다. 그것이 사랑을 통한 이별이었든, 죽음을 통한 이별이었든 인간은 여러 형태로 누군가 또는 어떤 것을 잃어보기 마련이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노랫말 가사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는 부재에 대한 회한, 그렇다. 인간은 잃어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 2020년과 2021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변화를 맞이했다. 그 변화는 바로 평범하고도 당연하게 해오던 행위들이 제지당하는 것이었다. 5g도 채 되지 않는 마스크 1장의 무게는 우리의 삶을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게 짓누른다. 잠깐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아직도 우리 곁에 존재한다. 코로나19와 함께한 두 번째 해를 보내고, 단계적 일상회복에 발맞춰 코로나19라는 현대 ‘역병疫病’과 공존을 논해야 하는 현재, 문득 전통사회는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역병, 일상> 특별전을 2021년 11월 24일부터 2022년 2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전통사회를 뒤흔든 역병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의 생활과 치유과정을 조명하고, 역병 속에서도 일상을 영위해 간 평범한 ‘우리’와 ‘다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를 소개한다.

1부 일상+역병: 벽면 가득 채워도 모자란 역병의 기록, 참담함을 표현하는 아비의 일기
입구에 들어서면 부식된 철판 느낌의 구조물과 하얀 벽면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람객은 벽면 가득 쓰여 있는 역병 기록을 발견하고는 ‘이토록 인간의 삶에 역병이 도사리고 있었는가’를 느낄 것이다. 정사正史 속 역병은 기역饑疫, 대역大疫, 민역民疫, 여역癘疫, 질역疾疫 등 각양각색의 용어로 등장하기도 하고 두창痘瘡, 홍역紅疫 등 정확한 병명으로 나타난다. 전시장 벽면에 적어놓은 기록의 수만 족히 300개는 훌쩍 넘으니, 인류는 분명 역병과 동고동락하며 살아왔다. 인간 일상에 들어온 역병은 생활문화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몸의 흉터는 물론이거니와, 일기, 일상 언어, 연희, 회화 등에 남아있다. 통영오광대에 등장하는 다섯째 양반의 탈은 마마를 앓은 흔적이 뚜렷하다. 통영오광대 제2과장 풍자탈 속 말뚝이는 다섯째 양반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한다.

다섯째 양반 너를 두고 말을 하면 너 역시 구종驅從의 자손으로 너 어미가 행사가 부정한 걸로 강남대한군江南大漢君손님1)이 지나다가 네 얼굴에 표적을 하였거든 네가 무슨 양반이라 자랑하며…
-통영오광대 제2과장 풍자탈 마당 중 말뚝이의 대사

역병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창痘瘡을 앓는 아이가 어젯밤에 증세가 매우 심해져서 가래 끓는 소리가 밖까지 들렸으니 목숨을 구하지 못할까 염려되고 매우 걱정스럽다.
…중략…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이르러 두창을 앓던 아s이가 결국 죽었으니 비참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하겠는가.
이것은 그 아비의 운수가 좋지 않기 때문이니 더욱 분하고 애통한 마음을 견딜 수 없다.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노상추(盧尙樞, 1746~1829), 1778년 12월 27일

 

2부 ‘일상-역병’: 손님과 고양이, 그리고 사회적 거리
일상에 들어온 역병은 분명 ‘손님’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역병이라는 ‘불청객’을 몰아내기 위해 오히려 ‘마마媽媽’ 대접을 한다면, 머리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조선시대는 두창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두창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은 되려 순하게 머물다 가주길 바라며 ‘손님’으로 모시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그것이 바로 마마배송媽媽陪送굿이다. 마마배송굿은 두창에 걸린 지 12일째가 되는 날 밤부터 13일이 되는 날 마마신을 배송拜送하는 무속의례이다. 특히 여타 굿과는 다르게 마마신을 짚말[上馬]에 태워 전송하는 상마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윤개의 아들 연송의 두역痘疫이 거의 아물어서 무당을 불러서 감사드리며 신을 보냈다.
-『묵재일기(默齋日記)』, 이문건(李文楗, 1494~1567), 1561년 7월 29일

조선 사회에서 무속과 무당은 천시받는 존재였지만, 역병 앞에 살고자 하는 욕망은 사대부와 무당의 연대라는 이색모습을 연출한다. 1821년 조선 땅을 흔들었던 콜레라는 처음에 ‘괴질怪疾’로 불렸다. 민간에서는 이를 두고 쥐에게 물린 통증과 비슷하다고 하여 쥐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몸 안에 쥐신鼠神이 들어왔다고도 여겼다.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고 물러가기 염원했던 옛사람의 이색 처방을 두고 19세기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Charles Varat, 1842~1893는 신기한 감정을 내비쳤다.

콜레라의 마귀에게는 다소 이색적이고 적대적인 방법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단순히 집 대문에 고양이 그림만 붙여 놓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 콜레라와 경련이 쥐가 물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니 쥐가 무서워할 게 고양이 밖에 더 있겠냐는 것이다.

-『조선기행Voyage en Corée』, 샤를 바라(Charles Varat, 1842~1893), 1892년

그 외에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발생하면 지인의 집으로 피접避接을 가고, 집 안의 외딴 곳에 자신 스스로 격리하는 일 등이 빈번했다. 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 자가격리 생활의 원형이다.

황생이 점괘로 인일寅日을 얻어 차도가 있을 것이니, 내일 이곳에서 동쪽으로 나가 피접하라고 말하였다.
-『승총명록(勝聰明錄)』, 구상덕(仇相德, 1706~1761), 1732년 윤5월 3일

3부 ‘일상±역병’: 역병으로 잠시 잊힌 우리의 일상, 그리고 다시 함께 할 날을 위한 노력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상을 지속한다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집 밖의 활동을 집 안으로 들여온 작년과 올해는 이색 풍경이 연출되었다. 그 예로 만남을 온라인 공간을 활용하고, 비행기 기내식 음식을 집으로 배달시키는 등이 있다. 까다로운 검역 절차로 해외여행은 꿈꾸기 어려울 때, 무착륙 비행을 이용한 제한적 관광도 하는 시기였다. 역병 속 축복과 축하를 받아야 할 결혼이나 조상을 기리는 제사는 연기하거나 진행규모를 축소하였다.

제례(祭禮)
행랑에 홍진을 앓고 나서 요절한 아이가 있다.
내일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할지 논의하며 『예의유집禮疑類輯』을 찾아보았다.

-『흠영(欽英)』, 유만주(兪晩柱, 1755~1788), 1786년 5월 25일

(코로나19 때문에) 그렇다고 같이 모여 앉아서 먹을 수도 없고,
그래서 제사에 쓰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같이 나누는 그런 뜻에서
도시락을 싸서 하나씩 드리는 것으로 음복의 예를 대신했습니다.

-2021년 9월 불천위제사를 지낸 석담 이윤우 종가 종손 이병구 인터뷰 중

혼례(婚禮)
김순을 만나 혼사 일을 의논하였는데, 내가 두창 때문에 속히 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자 김 친구(김순)가 저쪽에 통지해서 가을까지 기다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해주어서 돌아왔다.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노상추(盧尙樞, 1746~1829), 1767년 4월 25일

이 시국에 드리는 청첩장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2020년 11월 어느 청첩장의 문구

긴 시간을 비추어 볼 때, 역병의 상황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현재의 코로나19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 끝은 역병의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야 앞당겨 올 수 있다. 대면이 어려운 상황에서 전시 자료 수집을 위해 100여 명의 이야기를 다방면으로 들었다.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다시’, ‘함께’였다. 3부 공간 속 기둥마다 배치된 인천 계산 1동 자율방범대의 마을 방역활동, 전남 순천의 권분운동에 참여한 라일락봉사단, 천 마스크 제작 재능기부를 이끌어낸 개인의 사례는 ‘다시 함께’의 일상을 꿈꾸는 관람객에게 울림을 준다.

나가며: 돌아올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
전시장 내내 울려 퍼지는 노래 한 곡이 있다. 2020년에 발표된 이적의 ‘당연한 것들’이다. 노래는 현재 누릴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다. 노래와 함께 상영되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다니는 모습,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모습은 모두 우리가 왜 다시 함께 평범한 일상으로 가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의 당위성을 전송한다. 어떤 대단한 희생정신이 아니라 개인의 위치에서, 개인의 능력만큼 서로를 위하는 생각만 있다면 일상회복은 머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른 역병이 오더라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함께일 것이다.

1) 손님은 두창신(痘瘡神)을 의미한다. 두창은 중국에서 물건너 왔다고도 여겨져 손님으로 불렸다.


글 | 나훈영_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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