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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문화사 | 책읽기 변천사

독서문화의 변화와 ‘하이브리드 독자’의 등장

우리나라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책을 읽고, 다른 한 명은 전혀 읽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독자, 비독자라 부른다. 왜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읽지 않을까.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책 읽기를 강조하여 ‘독서문화진흥법’까지 만든 우리나라의 국민 독서율이 점차 하락하는 현상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독서 현상은 ‘독자’를 둘러싼 복합적인 사회 환경을 반영한 것이자, 역사적으로 누적되며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독서환경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독서의 대중화, 독서 매체, 독서 내용콘텐츠, 독서 관련 공간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인쇄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독서의 대중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책과 독서는 권력과 동의어였다. 책은 귀했고 매우 비쌌으며, 읽을 줄 아는 사람 또한 많지 않았다. 그러니 가난한 옛 선비들은 글을 베껴 쓰는 필사筆寫가 책을 구하는 과정이자 학습의 방법이었다. 독자가 많아지려면 교육받은 인구가 증가하여 문맹률이 낮아야 하고, 책을 부담 없이 구해볼 수 있는 조건들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 초기에 어려운 한자를 대신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조선 후기까지도 글을 읽거나 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까막눈이 줄고 식자율識字率이 증가하는 데는 근대식 학교의 설립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 진학률이 눈에 띌 만큼 높아진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이처럼 근대식 교육의 발달1), 출판과 인쇄의 발달2), 도서 구매력의 증가3)를 뒷받침하는 경제 발전 등이 어우러짐으로써 비로소 ‘독자 대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글을 몰라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적다. 책값에 부담을 느낀다면 도서관에서 얼마든지 무료로 빌려볼 수 있으니 경제적 부담도 크지 않다. 오랜 기간 책값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보다 낮았다. 1년에 8만 종이 넘는 책신간이 나올 정도로 출판은 포화 상태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오늘날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독서 습관이 없거나, 책 읽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거나, 인터넷·스마트폰·동영상을 비롯해 책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필요한 정보와 콘텐츠를 구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곤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다양한 책이 주는 즐거움과 지혜, 상상력, 지식은 어떤 매체로도 대체 불가능하다. 이것을 누리지 않는 것은 인생의 큰 손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독서 매체의 변화
독서와 관련한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때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독서의 수단, 즉 책의 매체 형태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종이책의 시대가 이어져 오고 있는데, 같은 종이책이라 해도 인쇄와 제본제책 방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찍 목판과 활판 인쇄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에도 개화기 이후 서양식 인쇄술과 제본 형태가 도입되었다. 시대가 지날수록 본문 페이지에까지 화려한 컬러 인쇄를 하고, 책의 크기나 디자인도 무척 다채로워졌다. 이제 한국은 과도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책을 만들고 향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경쟁하는 수단은 내용만이 아니라 외양의 차이에 따라 독자의 시선을 끄는 힘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내용콘텐츠을 알기 위해서다. 따라서 그 내용을 실어 나르는 매개체인 책의 매체 형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종이책을 디지털화한 전자책, 귀로 듣는 오디오북, 인터넷상에서 즐기는 웹소설, 웹툰만화, 웹진잡지, 여기에 전용 앱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콘텐츠를 읽거나 듣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책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 간격으로 조사하는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종이책 52.1%, 전자책 16.5%, 오디오북 3.5%, 종합 독서율은 55.7%였다. 여기서 ‘종합 독서율’은 조사 시점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한 가지 이상을 이용한 독자의 비율을 말한다. 종이책은 전혀 읽지 않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만 이용하는 사람도 3.6% 정도다. 이 조사 시행 이래 처음으로 오디오북이 독서 매체로 포함되었는데, 이는 책 읽기를 듣는 것도 독서로 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오디오북 이용자의 증가를 반영한 것이다. 여러 매체가 공존하는 상황이지만, 대체로 종이책 독자가 다른 독서 매체도 이용한다. 이른바 ‘하이브리드 독자’의 증가 현상이다. 이는 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 독서 선호도가 높은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책을 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미국 퓨PEW리서치센터가 조사한 미국 성인의 2019년 독서율종이책 65%, 전자책 25%, 오디오북 20%과 비교해보면, 한국 성인의 독서율은 미국인보다 종이책에서 13%포인트, 전자책에서 8.5%포인트, 오디오북에서 16.5%포인트가 각각 낮다.

독서 내용(콘텐츠)과 독서 방식의 변화
시대가 바뀌는 만큼 많이 달라진 것이 책의 내용이다. 책은 세상의 변화와 독자들의 관심사를 마치 스폰지처럼 빨아들여 그대로 반영한다. 중세 시대 이래 출판의 역사가 종교 도서, 교육 도서, 문학 도서, 실용 도서 순으로 발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개화기에는 근대화, 일제 강점기에는 한민족의 자주독립과 신지식에 대한 열망을 담은 책이,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는 교육·문학·교양·실용서가 차례로 강세를 보였다. 1980년대에는 100만 부 넘게 팔리는 시집의 등장과 사회과학책 붐, 1990년대에는 컴퓨터 및 어학 관련서 붐, 근래 코로나19 상황에서 주식 급등에 따른 주식 관련서의 인기와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위로와 꿈을 전하는 책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담지 않은 책은 없다. 독자에게 필요한 내용을 전하는 것이 책과 출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문학이 독서의 지지기반 역할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교양을 위한 독서보다는 실용적 목적에 도움이 되는 책 위주로 독서 패러다임이 크게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독서 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낭독에서 묵독으로, 정독숙독에서 속독으로의 변모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옛 선비들은 글을 읽는 경우 거의 큰 목소리로 낭독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글을 소리내어 읽지 않는다. 눈으로만 읽는다. 과거의 책 읽기는 ‘전신 독서’였다. 온몸의 감각을 동원하여 책과 하나가 되는 과정, 즉 눈으로 보고 입으로 낭랑하게 읽으며 내용의 율조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행위였다. 학습이자 암송이요, 성찰이자 수신이었다. 눈으로만 읽는 묵독은 음험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독서문화가 발달하면서 독서는 차츰 눈으로만 읽는 것으로 변모되었다.

독서 관련 공간의 변화
우리나라에서 책을 판매한 최초의 기록은 1534년명종 9년에 발행된 『고사촬요故事撮要』로 알려져 있다. 책 가격에 해당하는 쌀과 면포의 양이 적혀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서점은 1897년 서울 한복판광교에 설립하여 1950년대까지 운영된 ‘회동서관’이었다. 1970년대에는 종로 일대에 대형 서점들이 운영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교보문고를 비롯한 전국 체인서점이, 199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서점이 등장한다. 1990년대 중반기에 전성기를 누리던 도서대여점은 이후 급속도로 사라진다. 이와 같은 책의 판매 경로 다각화는 2000년대 들어 더욱 활발해진다. 기업형 중고서점의 전국적 확대, 출판사가 아닌 개인이 펴내 판매하는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독립서점의 증가도 주목할 현상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독자의 비율은 대폭 많아진 반면 지역서점동네서점의 위상은 더욱 후퇴했다. 독서문화의 토대 중 하나인 공공도서관은 1970년대를 전후해 대형 도서관들이 지어지기 시작하여 점차 대학도서관, 학교도서관, 작은도서관, 병영도서관 등 다양한 관종별 도서관이 촘촘히 들어서게 되었다. 과거에는 입장료를 받던 공공도서관 풍경도 1980년대에는 사라졌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성인의 도서관 이용률은 4명 중 1명 꼴약 24%로 선진국들보다 낮은 편이다. 도서관은 독서 습관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냉난방이 완비된 책의 천국이다. 전자자료나 오디오북 서비스도 대폭 확충되었다. 최근 도서관들은 최신 장서 비치와 리모델링을 통한 쾌적한 환경 조성, 각종 맞춤형 독서문화 프로그램 운영, 유튜브 책 소개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독서문화의 보루 역할을 다하고 있다. 책의 원형은 사람이다. 사람의 기억과 소통을 돕는 기록매체의 하나로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달한 것이 책과 독서의 역사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살펴본 독서문화 역시 기술과 문명의 변천, 그리고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매체, 콘텐츠, 독서 방식, 공간의 진화를 거듭해 왔다. 독서문화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생활 속에서 책 읽기를 즐기고 누리며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 중 하나일 것이다.

1) 독자의 문해력 증진과 독서 동기 촉발
2) 독서 매체의 활성화
3) 독자의 경제적 수준


글 | 백원근_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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