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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즐거움 | 대동놀이

대동이 하나되는 신명의 놀이문화

우리는 “놀지 말고 ○○해라”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으며 살았을까? 놀이는 산업화 이후에 일과 분리되면서 점차 부정적 대상으로 바뀌었다. 노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쓸데없는 행위라는 부정적 인식을 하게 되었다. 원래 서구의 학자들은 놀이를 비생산적인 행위로 규정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생산과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정월대보름의 줄다리기에서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여 당기거나, 남녀 대결에서 여성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인식이 이를 반영한다.

놀이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까이요와Roger Caillois는 인류의 문화가 놀이에서 발생했다고 말한다. 놀이는 비일상의 설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정한 규칙에 의해 육체 및 정신적 행위를 반복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를 말한다. 놀이판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며, 신분적 차이나 나이, 성별의 차별을 받지 않는다. 놀이 과정에 현실적 일의 어려움과 갈등을 풀어내기도 한다. 또한 승부놀이를 할 때는 적당한 긴장, 유쾌한 긴장 속에 즐기게 된다. 대동大同이란 말은 “다같이 참여한다”라는 의미로, 집단놀이 중에 많은 숫자가 참여하는 놀이를 말한다. 대동놀이란 마을이나 고을 단위로 이루어져서 지역민의 공동체를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놀이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도 도구 제작이나, 비용 추렴, 적극적 응원을 통해 간접적인 참여를 하게 된다. 한국의 대동놀이는 주로 정월대보름 놀이가 많다. 대표적으로 줄다리기, 차전놀이, 쇠머리대기, 고싸움 등이 있고, 여성놀이로는 원무인 강강술래와 월월이청청 등이 있다. 줄다리기는 마을이나 고을 대항전을 지니는 대동놀이기에 세시 축제적 성격을 지닌다. 볏짚을 이용해 거대한 줄을 엮고, 두 줄을 연결해서 당기는 행위는 집단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함께 어울리고 풀어가는 대동놀이
지역 축제가 많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대동놀이적 축제는 경남 창녕의 영산삼일민속문화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영산면을 동서부로 나누어 쇠머리대기와 줄다리기가 며칠에 걸쳐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대동놀이성 축제이다. 원래 정월대보름 행사가 1961년에 영산지역 3·1운동의 정신을 살려 삼일민속문화제로 바뀌어 3월 1일 전후로 바뀌었다.

 

영산쇠머리대기는 나무로 만든 소 형태의 대형 구조물을 맞부딪치면서 승패를 겨루는 격렬한 놀이이다. 앞놀이로서 전초전격인 진잡이와 서낭대싸움을 하고, 이어 본놀이인 쇠머리대기가 이루어진다. 쇠머리는 상하좌우 5m 내외의 목조 구조물로서, 50여 개의 통나무와 각종 새끼, 짚을 이용해 제작한다. 동서부에 3명의 장군이 각각 위에 탄 상태에서 쇠머리가 맞부딪치는데, 구조물이 부서질 정도로 양쪽에 강한 힘이 가해지는 위험한 놀이라 할 수 있다. 영산줄다리기에 동서부 줄은 30가닥에 80m 길이로 제작한다. 암수줄을 결합해서 당기는 행위는 성性이 주술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풍년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사전에 이루어지는 골목줄다리기는 아이들 중심의 줄다리기이기잠, 일종의 전초전의 성격을 지녀 전 주민이 참여한 가운데 열광적으로 진행된다. 다음에 앞놀이로서 서낭대싸움과 진잡이가 있고, 본놀이인 줄다리기가 연속해서 이루어진다. 원래 영산면을 동서부로 구분하던 것이 확대되어, 이제는 창령군을 북부와 남부로 구분하고, 다시 구마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전국을 동서로 구분한다. 이 대동놀이가 주목받는 것은 행사 진행과 경비 염출, 도구 준비, 본놀이 참여 등을 지역민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또한 놀이 과정에 주민들이 각 마을 농악을 앞세워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인다는 점이다. 이 놀이는 예전에 대학축제 및 지역문화운동과 연계된 모범적 사례를 보이고 있다. 초기 지도자로 3·1운동에 참여한 하봉주1906~1969, 1960년대 교원노조를 이끌던 지역문화운동가 조성국1919~1993이 주도하며, 지역문화운동과 대학 대동제와 유기적인 관련을 맺었다. 특히 보존회는 1980~90년대에 총 136회에 걸쳐 대학축제를 현장 지도하면서, 줄다리기가 한때 대학 대동제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영산 면민이 대략 5천여 명인데, 실제 축제 참가자는 2~3만 명에 이른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각 동과 지역 단위의 대규모 농악패를 앞세워 동서부가 경쟁적으로 흥겨운 놀이판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본 놀이에는 지역민들이 색색의 작은 영기를 손에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지역 공동체 중심 대동놀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당진에서 전승되는 기지시줄다리기는 3월 초에 냇가를 사이에 두고 물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이에 이루어지는 줄다리기에서 출발한다. 기지시 장터를 중심으로 초기에 상인들이 적극 참여했기에 지역에서는 ‘줄난장’이라고도 한다. 20세기 중후반에 점차 참여 인원이 늘어나고,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면서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근래 기지시 줄은 암수줄이 각각 20톤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따라서 줄을 엮어서 놀이가 이루어지는 운동장까지 운반하는 일이 하나의 큰 행사가 되었다. 축제 측에서는 지역민과 관광객에게 자발적으로 줄을 운반하도록 유도하고, 이들로 하여금 줄을 당기도록 해서 자연스럽게 외지인의 참여를 이끌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각 마을의 농악대가 대형 농기를 들고 참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놀이에는 마을별로 용이 그려진 대형 용기가 다수 등장한다. 광주고싸움놀이는 줄다리기가 변형된 형태이다. 곧 암줄과 수줄 사이에 버팀목이라는 통나무를 끼우지 않고, 줄의 머리로 상대의 머리를 미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암수줄을 만들어 연결해서 당기기 전에 미리 노는 앞놀이 형태가 어느 순간에 본놀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놀이는 대장이 상대 고 위에 기어올라 몸싸움을 벌이고, 상대를 밀어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격렬하게 진행되어 매우 박진감이 넘친다.

여성들의 집단적 놀이문화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호남의 ‘강강술래’, 영남의 ‘월월이청청’은 주목된다.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원무가 기본이고, 서로 문답식 놀이에 다양한 노래가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대문열기’나 ‘꼬리따기’ 놀이도 들어가 있다. ‘강강술래’는 주로 해남과 진도의 해안가에서 전승되는데, 추석의 달밤에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선소리꾼의 노래에 맞추어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 놀이이다. 원 안에 몇 사람씩 나와 남생이 흉내를 내며 춤을 추는 ‘남생이놀이’, 멍석을 말았다가 펴는 ‘멍석말이’, 앉은 사람의 팔 위로 넘어가는 ‘고사리꺾기’, 어깨 밑으로 빠져나가는 ‘청어엮기’, 허리 굽혀 문을 빠져나가는 ‘대문열기’, 그리고 ‘가마타기’ 등의 다양한 움직임과 노래로 진행되는 흥겨운 노래춤 형태이다. ‘월월이청청’도 유사한데, 경북의 영덕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세시적인 여성 놀이이다. ‘절구세’는 두 편이 서로 마주 보고 전진 후퇴하며 노래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노는 ‘우리 집에 왜 왔니’놀이와 유사하다. ‘달넘세’는 원을 만든 뒤에 옆 사람과 맞잡은 팔 사이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실꾸리감기’ 놀이는 실을 감았다가 푸는 형태를 놀이화한 것이고, ‘산지띠기’는 문답형식으로 자연물을 말하면서, 동물 흉내를 내기도 한다. 대문을 통과하는 ‘대문열기’, 꼬리 따며 노래하는 ‘동애따기’도 있다. 대동놀이는 일정한 시기에 집단이 참여하다보니 자연히 세시축제적 성격을 지닌다. 이런 놀이축제는 일상의 단순한 반복에서 벗어나, 현실적 억눌림을 극복하고 삶의 활력과 신명을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지역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지역민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신명을 놀이로 풀어가는 민족
대동놀이의 본질은 신명에 있다. 신명은 대체로 억압되어 있는 본원적 생명력의 분출이라 할 수 있다. 놀이에 수반된 집단의 신명은 현실적 억압과 한을 풀어주고, 더불어 사는 삶을 확인하면서 지역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다. 신명은 한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한은 현실적 억압 구조로, 기본적으로 슬픔과 고통을 바탕으로 한 부정적 속성이다. 이것은 맺힌 것이며, 방치하면 우울증, 의욕상실,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한의 풀이 과정이 신명이 되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 해원解寃이 이루어진다. 한은 자기가치의 손상에서 오는데, 이것은 부당한 차별, 심각한 상대적 결핍, 현실적 좌절 등에 의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환적 사건, 우리의식, 자기표현 등에 의한 신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신명의 요소를 지닌 것이 해마다 반복하는 세시적 대동놀이라 할 수 있다. 놀이 과정에서 직접 참여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그리고 다같이 놀이, 춤, 노래, 음악을 통해 풀어가면서 신명이 나타난다. 한이 자기가치의 손상을 의미한다면 신명은 손상을 입은 자기가치가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한 신명풀이는 집단적인 어울림에 참여하면서 분출된다. 특히 일탈적 행위 속에서 신명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현대 사회에도 신명이 필요한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는 심리적, 정신적 안정을 추구하는 웰빙과 힐링, 건강・치유의 축제가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타당할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은 게임이나 유흥에 더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개인주의에 의한 인간소외, 자기포기, 타인경시의 사회상을 고려하면 집단적 대동놀이나 신명의 축제는 오히려 더욱 필요하다. 이것은 스포츠나 게임, 개인 중심 여가생활로 대치할 수 없다. 현대는 오히려 대동놀이에 직접 참여하면서 자기 생명력과 타인존중을 확인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

현대에도 결핍을 느끼는 대중들이 집단적 교감에 통해 아픔을 공유하고, 신명을 풀어가며 치유하는 과정에 삶을 긍정적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 갈등을 화해로, 대립보다는 포용을, 거부보다는 수용이란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글 | 정형호_서울시 무형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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