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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2 | 낙동강 수로 이주민 조사보고서

낙동강 1,300리 물길 따라 펼쳐진 수몰민들의 삶

수몰 이주민 조사와 수몰 이주단지
‘낙동강 수로와 수몰 이주민 생활문화 조사’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강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조사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2018년 ‘한강수로와 어로문화’로 시작된 이 일련의 조사는 2019년에는 ‘금강 수로와 강변마을의 식문화’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2020년에는 ‘낙동강 수로와 수몰이주민’을 주제로 하였다. 2021년 올해에는 ‘영산강의 포구와 장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낙동강 댐 수몰 이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여러 수몰 이주단지를 방문하다 보니, 나중에는 짐작만으로 이주단지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사실 집단 이주단지를 알아보는 법은 간단하다. 이주단지는 인근의 다른 마을에 비해 길이 반듯하고, 주택들은 일렬 또는 바둑판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또 주택의 외형들이 서로 매우 비슷하다. 이는 자연지형에 맞게 주택이 하나 둘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택지를 조성하고 동시에 주택을 건축하였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경북 상주시 중동면 오상2리 전경사진을 보면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이 마을은 기존에 있던 마을 바로 옆에 수몰민들이 새로 이주단지를 조성하였다. 본래부터 있었던 마을을 본마을, 새로 온 수몰민들의 이주단지를 새마을라고 부르는데, 본마을의 주택이 산자락을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다면 새마을의 주택들은 비슷한 모습에 바둑판식으로 정렬하고 있어 그 모습이 매우 대비된다.

 

수몰민들의 다양한 선택과 다양한 삶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이주단지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정은 또 각기 다양하다. 300호가 넘는 대규모 단지도 있고, 10여 호 정도만 있는 소규모 단지도 있었다. 1970년대에 조성되어 이제는 주택도 노후화된 곳이 있는가 하면, 조성된 지 5~6년 된 그림 같은 전원주택도 있었다. 생업이 어떠한지에 따라 이주단지 사람들의 생활 양상도 달라지는데, 크게 수몰 이전의 주요 생업이 농업인 경우와 그 외상업 등인 경우로 나누어졌다. 특히 수몰 이전의 삶이 농업을 기반으로 한 경우에는 수몰 이후 농토의 확보 여부가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였다. 댐은 대개 산간 협곡 지형에 건설되기 때문에 그 인근에 조성되는 수몰민 이주단지는 충분한 농토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상주시 중동면 오상2리 이주단지인 ‘오상이주단지’ 역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농토를 확보하기 위해, 임하댐 수몰민들이 안동에서 상주까지 이동하여 이주단지를 조성한 사례이다. 생업인 농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농토를 확보하려는 노력 끝에 고향 지역을 아예 벗어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터전을 개척한 것이다. 물론 수몰 이주민들이 모두 집단 이주단지를 선택하여 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통계상으로는 집단 이주민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수몰민들은 자유 이주를 선택하여 각지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서 이주단지의 수몰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현실적인 조사 편의성 때문도 있었지만 낙동강 댐 수몰 이주단지만을 보더라도 충분히 다양한 수몰 이주민의 삶의 일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는 큰 변화를 맞이한 수몰민들은 각자의 환경과 상황에 따른 다양한 선택을 했다. 하루아침에 농부에서 어부가 된 이도 있었고,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농부들도 있었고, 댐 건설 후 몰려든 낚시꾼들을 상대로 낚시가게를 차린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 댐 건설과 수몰, 이주라는 현실은 ‘국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손실 보상이 미비하다는 지적 또한 내·외부에서 있어왔다. 수몰이주민이라 하여 당연히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조사자 역시 조사 이전에는 수몰민에 대한 일종의 연민과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수몰민들은 주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왔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오히려 수몰 이주의 경험을 업그레이드의 기회로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 조사자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코로나19와 현장조사
글 첫머리에 언급한 이전의 ‘수로와 생활문화 조사’와 이번 낙동강 수몰민 조사의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이번 조사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전의 조사 사업들이 연 초에 시작하여 가을 정도면 마무리가 되지만 2020년의 경우 상반기에는 현장 조사를 거의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방문한 현장에서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마주보고 음식을 먹는 것이 친밀감을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았다. 제보자가 권하는 한국인의 정, 믹스커피 한 잔도 사양해야만 했다. 또한 안동댐 등에서 추석과 성묘 기간에만 운영한다는 ‘수몰민을 위한 특별선 운영’ 모습을 기록하려고 계획하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특별선 운영이 취소되어 계획이 무산되기도 하였다. 결국 조사 사업은 해를 넘겨 1년 반 만에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팬데믹 이후 겪은 첫 현장조사였기에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많은 수몰민이 그래왔듯이 조사자 역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글 | 이주홍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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