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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즐거움 | 활쏘기

활쏘기, 그 아름다운 매력

역사 속의 활
활은 우리 인류의 역사상 생존을 위한 가장 오랜 사냥도구로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구석기舊石器시대 말기로 추정을 하고 있다. 즉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원시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수렵을 위한 생존수단의 생활도구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우리 민족도 언제부터 활을 사용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함경도 등지에서 발굴된 타제석촉打製石鏃과 전국 각지에서 발굴되고 있는 마제석촉磨製石鏃 등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예부터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하여 중화中華의 동쪽에 있는 이민족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나 이자는 큰 대와 활 궁의 합성어로 ‘큰 활을 가진 민족’ ‘동쪽에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해석된다. 조선 중기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은 ‘활과 화살의 날카로움이 동방의 최고’라고 하였는데 조선 후기 근대 신식무기가 도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물리친 우리 민족 최고의 호국무기로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최종병기였다. 고구려 시대 ‘안시성 전투’의 영웅이었던 양만춘은 명궁名弓으로 당 태종의 눈을 맞추어 침입을 저지하였고, 고려 시대 몽고족蒙古族의 끊임없는 침략에 맞서 승군僧軍의 김윤후는 처인성경기도 용인에서 몽고의 장수 살리타이를 격살擊殺하여 퇴각하게 하였다. 또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전라도 남원의 ‘황산 전투’에서 승리하는 등 신기에 가까운 활쏘기 관련 일화 등이 많이 전해지고 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亂中日記에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왜선倭船 31척을 격파하니 후퇴하여 가까이 오지 못했다.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고 하는 등 해전海戰에서는 물론 행주대첩과 진주대첩 등에서 왜군倭軍의 조총에 맞서 국난을 극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전통문화로서 활
수천 년 역사에서 우리 민족을 지켜낸 최고의 민족 병기요, 호국 무기였던 활은 오늘날 심신단련의 수단인 스포츠로 발전하는 동시에 민족혼이 깃든 전통문화로서 그 맥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예기禮記에서 ‘활쏘기를 통해 활 쏘는 사람의 덕행을 볼 수 있다.’고 하였듯이,1) 유교儒敎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는 덕과 예를 함양하는 수단으로 활쏘기가 크게 장려되기도 하여 역대 왕들은 물론 문신文臣이라도 군자君子가 갖추어야 할 육예六藝교육에서 활쏘기는 심신단련과 국가사회의 지도층으로서의 역할을 위한 중요한 과목의 하나였다. 또한, 국왕이 군신君臣 상하 간의 명분을 밝히고 통치질서의 확립을 도모하고자 성균관成均館에 행차하여 공자 등 성현을 모신 문묘文廟에 제향배례 후 신하들과 활쏘기 행사인 대사례大射禮가 있었으며, 지방에서는 해마다 봄기운이 왕성하고 봄꽃이 만개하기 시작하는 삼짇날음력 3월 3일과 가을철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개성부開城府와 여러 도의 주·부·군·현에서 향사례鄕射禮가 열리기도 하였다.2)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봄과 가을에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무사武士와 동네 사람들이 편을 갈라 활쏘기를 하여 승부를 겨루고 술을 마시며 흥겹게 놀았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3)

이러한 활쏘기는 19세기 말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며 침체기를 맞기도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의 말살정책이 있었음에도 특이하게 활기를 띤 것으로 보인다. 많은 백성의 삶이 힘들었던 시절이었음에도 허구한 날 활쏘기만 하는 일부 한량閑良들과 활쏘기대회가 지나친 흥행성은 물론 도박성 등으로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여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4)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시절에 활쏘기는 백성들에게 힘들고 고통스런 삶의 생활 속에서 입장료를 내고서라도 보고 즐길 수 있는 전통문화이고 스포츠였으며 이후 6·25 전쟁과 근대화 및 산업화의 급변하는 생활환경 속에서도 그 맥을 계속 이어 왔다.

활쏘기의 특징과 효과
활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든지 자기 힘에 맞는 활을 선택하여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활쏘기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거나 혼자서도 즐길 수 있으며, 활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사新射와 어느 정도 궁력이 있는 궁사弓師들이 함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할 정도로 남녀노소男女老少가 함께 사대에 서서 어울려 즐길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의 신체 활동 중에 근대이전의 신분사회에서는 최하위 계층이었던 노예와 백성들부터 문무백관 및 임금에 이르기까지 활쏘기를 하였고 현대에도 빈부貧富나 지위와 관계없이 일반 국민부터 부유층이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거나 할 수 있는 조상의 얼과 슬기가 담긴 가장 아름답고 자랑스런 전통문화요, 심신단련과 정신수양을 위한 스포츠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어린 유아나 어린이들에게 활쏘기는 활을 당기며 인내심忍耐心과 자신감自信感을 심어 주고 정신이 산만한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며 신체의 올바른 자세와 균형의 유지 및 예절교육 등에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국궁교실에 참여한 지체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정신건강과 회복탄력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연구결과와5) ‘지적장애아동의 뇌기능의 변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다.’는 연구결과도6)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영국에서는 ‘19세기 빅토리아시기Victorian Age에 성장하는 여성에게 너무 심한 운동은 해로울 수 있기에 활쏘기가 권장되었다.’고 하며, 독일에서는 ‘활을 쏠 때의 긴장과 완화, 집중과 이완, 규율과 오락 사이의 반복으로 인해 심리치료Psychotherapie의 한 방법으로 의료계로부터 각광을 받고 치료 효과도 크다.’고 하였다.7) 또한, 터키에서도 ‘활쏘기는 특히 학령기 아동의 집중력, 동기부여, 산만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정신적, 체육적 교육의 치료법으로 추천되고 있다.’고 한다.8) 그런데 국궁교실은 물론 전국의 관광지나 지역축제, 각종 체험교실 등에서의 대부분 활쏘기체험은 형식적이거나 양궁사법 또는 장난감 같은 활로 체험지도를 하여 오히려 전통 활쏘기를 왜곡歪曲하거나 좋지 못한 이미지image를 남길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지도가 필요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문화재청은 2020년 7월 30일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하였다. 일본의 궁도弓道가 세계 여러 나라가 참여한 국제궁도연맹을 창설하고 세계궁도대회를 개최하는 등 세계화를 가속화 하고, 터키의 전통 활쏘기는 201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시점에서 우리의 전통무예 활쏘기가 늦은 감이 있지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음은 다행스럽고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관련기관들과 언론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협조로 활쏘기가 더욱 활성화 되어 국민들의 심신단련과 정신수양은 물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함께 하며 궁극적으로 세계화에도 기여하고 우리나라의 전통 활쏘기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대해 본다.

1) 예기 射者 所以觀盛德也
2) 『세종실록』오례/군례 의식/향사의
3) 장유승, 2016,『동국세시기』, p123
4) 시대일보 1924년6월13일(도박적 궁술경기로 철야), 매일신보 1925년6월24일(촌민 수십명이 편사터를 엄습)
5) 심태영 외, 2013,「전통무예 국궁교실 참여가 지체와 청각장애인의 정신건강 및 회복탄력성에 미치는 영향」『한국특수체육학회지 제21권 제2호』, p69
6) 김동원, 2015,「지체장애아동의 국궁교실 참여가 뇌기능에 미치는 영향」『한국체육학회지 제54권 제4호』, p650
7) 김태산, 2015, 「독일 활쏘기의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학예지 제22집』, p130, 135
8) 유네스코 공식유투브채널(http://www.youtube.com/c/UNESCO/about Traditional Turkish archery)


글 | 박성완_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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