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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대담 | 술의 맛

전통주 주조가와 와인 소믈리에

우리나라 주세법酒稅法에 의하면 알코올이 1도 이상 함유된 음료를 술이라고 이른다. 인류가 수렵하며 살아가던 시절부터 이어져온 술은 함께한 시간만큼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설이면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도소주屠蘇酒를 나눠마셨고, 농사일이 시작되는 3월이면 청명주淸明酒를 담갔다. 또 추석에는 그해에 첫 수확한 햅쌀로 신도주新稻酒를 빚어 제사상에 올렸다. 이처럼 시기마다 다른 술을 빚고 마시며 우리는 삶에 풍류를 더하였다. 술과 노래, 춤을 즐기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지난날에 자주 등장하던 탁주와 청주, 약주와 맥주, 와인, 보드카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술이 더해져 우리 민족의 술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배로 더하고, 슬픈 일에는 위로를 건네며 말없는 친구로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술. 이번호에서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술’을 주제로 주조가 김현종 씨와 소믈리에 양윤주 씨를 만났다. 술과 같이 살아가는 이들의 눈과 입을 통해 한 잔 술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본다.

술에 대해 알려주세요! 술은 어떻게 분류되나요?
주조가
우리가 마시는 술은 포괄적으로 발효주, 증류주, 혼성주 세 가지로 나뉩니다.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시킨 발효주로는 탁주, 맥주, 와인이 있고 발효주를 증류시킨 증류주로는 소주, 브랜디, 위스키 등이 있습니다. 혼성주는 이 두 가지를 섞은 것으로 와인에 브랜디를 섞은 포트와인과 약주와 소주를 섞은 과하주가 이에 속합니다.

소믈리에 발효주의 일종인 와인은 크게 색에 따라 분류됩니다. 청포도로 만들어 투명하고 맑은 빛을 내면 화이트와인, 적포도를 사용해 붉은 색을 띠면 레드와인으로 불립니다. 짙은 레드와인과 달리 선홍빛의 로제와인은 압착방법을 달리해 색이 약하게 배어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여기에 발포성이 추가되면 스파클링으로 분류되고 있죠. 최근에는 화이트와인을 일부러 산화시켜 만든 오렌지와인도 와인의 한 종류로 추가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조방법과 트렌드도 조금씩 바뀌고 있나요?
주조가
20세기 초반까지 삼해주는 서울 마포 일대에서 수백, 수천 독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항아리에서 36일간 발효시킨 술에 다시 새로운 재료를 더해 발효를 세 번 반복하죠. 그렇게 108일간 발효시킨 술을 증류시키면 최종적으로 삼해소주가 만들어집니다. 당시에는 자연적으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힘들었기에 잘 담가진 술에 덧술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술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저온창고에 보관해 더 오래 발효하고 숙성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환경적으로 안전한 술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이제는 술을 빚는 사람들에게 복 달아나니 안달복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술이 잘 익을 수 있도록 조건만 갖춰준다면 술은 절로 익을 테니 말입니다.

소믈리에 앞서 언급한 오렌지와인도 새롭게 등장한 와인에 속하지만 현재 와인 업계의 핫이슈는 내추럴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포도농가에서 조금 더 맛 좋은 과육을 위해 사용하는 비료나 농약을 두고 과거에는 농약없이 자연 그대로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으니 비료나 농약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만든 와인이 바로 어떤 것도 추가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빼지 않은 내추럴와인입니다. 산화방지제를 거의 넣지 않다보니 다른 와인보다 시큼한 맛에 가벼운 바디감이 특징입니다. 아직까지 내추럴와인은 제조 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분명 기존과는 다른 맛이기에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떠나 맛을 보았을 때 이 와인이 입맛에 맞다면 소비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통주와 와인이 대중에게 다가간 건 언제부터였나요?
소믈리에
와인은 비교적 최근에 우리에게 알려졌을 것 같지만 조선시대부터 포도 양조법이 전해 내려오는 거 아시나요. 꽤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대중이 와인을 하나의 술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만화책 『신의 물방울』이 인기를 얻은 후부터라고 기억합니다. 그때 이후 기업들이 유명브랜드의 와인을 수입해오기 시작했죠. 그 이후 와인을 친숙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기인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 지인들과 있는 시간보다 가족과 보내거나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끼리 마시는 좋은 술, 혼술하기 좋은 술로 와인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주류 판매량을 살펴보면 와인만이 유일하게 매출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조가 전통주의 경우 대부분 각 가정에서 빚었습니다. 집안 대대로 전해졌기에 상업적으로 발달하기보다는 수고스러운 원리와 원칙을 고집하면서 계승되었죠. 그래서 다량의 곡식으로 빚어도 소량의 술이 생성됩니다. 손님을 맞이하거나 제사상에 올리던 것이 이렇게 빚은 술이었는데, 1934년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를 폐지하면서 집에서 술을 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1995년 자가양조가 허가되기 전까지 계속되었죠. 우리 전통주는 그 이후에야 다시금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안주는 무엇인가요?
주조가
전통주는 뭐니 뭐니 해도 한식과 가장 잘 어울리죠. 지금처럼 고기가 풍족하지 않은 시절에는 나물에 막걸리를 먹기도 했고, 7~80년대 구멍가게에서는 아저씨들이 굵은 소금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포장마차에서는 컵에 계란노른자를 넣고 그 위에 소주를 부어 노동자들에게 건네고는 했는데, 한참 일을 하던 노동자들의 땀방울을 닦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답니다.

소믈리에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안주는 순대입니다. 순대와 와인의 궁합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돼지고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많이 먹는 고기이며, 포도 생산지로 유명한 나라들에서도 우리나라 순대와 비슷한 음식을 오래전부터 먹어왔습니다. 어느 와인이든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실제로 저 역시 지인의 갑작스런 방문에는 순대를 안주로 내고 있습니다.

술과 함께하는 두 사람에게 가장 좋은 술은 무엇인가요?
주조가
집에 들어와 술 생각이 가득한데 냉장고 속에 술이 없다면 맥이 탁 풀리겠죠. 술을 필요로 하는 날에 내 앞에 있는 술이 가장 좋은 술이 아닐까요?

소믈리에 소믈리에라는 직업 특성상 잘 보관되어 제 맛을 내는 술이 가장 좋은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실 시기가 되었다고 해서 음용적기, 시음적기라 불리는 술이죠. 이러한 술이 딱 필요한 사람에게 매칭되었을 때 술이 가장 바르게 쓰였다고 여깁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술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주조가
요즘에는 하루를 마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역할로 많이 찾습니다. 그간 제게 술은 즐기기보다 공부하는 대상이었죠. 최근에야 나를 위해 와인을 맛보기 시작했는데, 헛헛한 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때 손님들이 이야기하는 술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죠.

소믈리에 술은 사회성을 증진시키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탁월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손님 접대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나 낯설게 느껴지는 손님도 금세 친한 친구로 만들어주죠. 그래서 언제나 긴장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술은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긴장의 끈을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니 말이죠.

내일의 술은 어떤 술일까요?
주조가
앞으로도 쭉 삼해주를 빚으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의 삼해주는 이전보다 깊은 맛을 낸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저는 여기서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삼해주는 증류 이후에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거든요. 이렇게 맛이 변화하는 장점이자 단점을 모두 품고 있는 이 술의 맛을 중국의 백주처럼 하나의 통일된 맛으로 판매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최상의 맛을 선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소믈리에 배달이 활발해지고 있는 시기이다보니 앞으로는 와인까지 배달하는 시점이 곧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와인을 전문적으로 잘 아는 전문가가 와인과 함께 어울리는 안주까지 밀키트로 포장해 가정으로 보내드리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가짓수가 많아 어렵게 느껴지는 와인을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면서 소비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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