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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 | 기증자료전

서랍 속에 넣어둔 평범한 기억이 첫눈처럼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추운 겨울, 식구들과 아랫목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김이 나도록 뜨거운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 살얼음이 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사발채 들이켰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아름다운 기억, 그 기억이 첫눈처럼 특별하게 다가온다면 어떨까? 코로나19로 지친 일상, 거리두기로 방구석의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 내 방안 서랍에서 나올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전시로 구현된다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한 해 동안의 기증자료를 모아 그 서랍 속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시간, “기억의 공유共有, 2020년 기증자료전”을 열었다. 2020년 11월 25일(수)부터 2021년 10월 18일(월)까지 상설전시3관 기증전시실에서 <배냇저고리>도경재 기증 등 2019년 기증자료 90건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1964년부터 시작된 기증의 역사 –1,311명이 기증한 53,151건의 삶이 기록되다
작년 2019년에는 모두 61명의 기증자가 소중한 자료 1,230건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간직한 기증품들은 “2020년 기증자료전-기억의 공유共有”를 통해 특별한 의미로 거듭나고 있다.

1964년 첫 기증을 시작으로 60년 가까이 총 1,311명이 53,151건의 생활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고, 이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생활문화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우리나라 대표 생활사박물관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수증은 자료에 담긴 개인의 기억과 자료가 사용되었던 사연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있다. 박물관은 개인의 삶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며 연출하는 공간이다. 기증품들은 그 안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복원하는데 머물지 않고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생명력을 가진다. 관람객들은 세대를 넘어서서 기증자의 추억의 시간으로 함께 돌아가서 그 이야기에 집중하는 보편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기증품’을 통해 일상을 함께 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기억을 간직하다
이 전시는 기증품에 담긴 사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일상을 함께 하고’에는 사람의 성장, 살림살이 등 일상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전시한다. 그중 도경재 기증 <배냇저고리>는 ‘4형제가 함께 입은 배냇저고리’로 특별하다. 1954년, 서울시 성북구 명륜동에서 살림을 시작한 기증자의 어머니채옥순, 1931년생는 큰아들 출산을 준비하며 정성껏 손바느질로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물자가 귀하던 시절, 둘째 아들1959년생, 셋째 아들1962년생, 막내아들1966년생까지 4형제 모두가 이 배냇저고리를 돌려 입는 동안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낡은 배냇저고리에는 4형제의 건강과 무탈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다.

‘2부 즐거움을 나누고’에는 지친 일상을 일으켜 줄 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모았다. 특히 이종철 기증 <태권도 도복>에는 젊은 날의 우정과 정직한 땀이 담겨있다. 이 도복은 1962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대학교 태권도 동호회 ‘권우회拳友會’에서 수련하며 입던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전 관장인 기증자는 학창시절부터 박물관 재직시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태권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있다. 이 도복에는 정의, 노력, 우정 등 그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담겨있다.

‘3부 기억을 간직하다’에는 추억이 남아있는 근현대의 다양한 기억과 기록의 과정, 이를 소중하게 간직한 실생활 자료들로 꾸며졌다. 그중 심원섭 기증 <야학부夜學簿>에는 특히 ‘나눔의 가치’가 돋보인다. 기증자의 할아버지故 심진택, 1915년생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맛바위마을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주민들을 위해 농한기에 야학을 운영하며 한글을 가르쳤다. 이 야학부는 1939년 12월부터 1940년까지 정암야학회亭岩夜学会에 대한 기록으로 일제강점기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한글을 지키려는 귀한 마음이 간직되어 있다. 이 외에도 전경수 기증 <할아버지의 애틋함이 담긴 애기구덕>, 백국빈 기증 <조선시대 통역전문기관의 운영서, 통문관안通文館案>, 백승룡 기증 <길림성吉林省에서 사용하던 옥수수탈립기> 서춘식·서승현 기증 <마을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한 벽시계>, 이상억 기증 <부모님의 백년해로가 담긴 시경詩經 관저關雎 자수 액자> 등 다양한 기증품들의 각각 소중한 이야기가 작은 전시장 안에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다.

기증품에 담긴 선한 마음, 그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다
61명 기증자의 이야기를 담는데 전시장의 설명카드는 너무 작기만 하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은 그들의 소중한 기억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자료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지 않고 박물관이란 공공의 장소에 기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숭고한 나눔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결국 박물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증품에 담겨 있는 기증자의 마음을 읽고 그 가치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 공감이 전달될 때 전시도, 연구도, 교육도 생명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기증품에 담긴 선한 마음, 바로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글 | 안정윤_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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