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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는 | 해수욕장

전쟁 때도 북적거린 부산 해수욕장

7월 1일 부산에 있는 해수욕장들이 일제히 개장했다. 코로나19 여파 탓에 올해 해수욕장 풍경은 매우 독특하고 낯설다. 해수욕장 곳곳에서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해수욕장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피서객들의 모습이 일상이 돼버렸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7월 20일부터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은 피서객에게 최대 3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올 여름에는 일몰 후 백사장에서의 로맨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야간 치맥 금지령’이 발령됐기 때문이다. 7월 19일부터 야간에 해수욕장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다 적발되면 역시 벌금 300만 원을 내야만 한다. 여러 모로 해수욕장 이용하기가 불편해지니 추억의 옛 해수욕장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00년 해수욕장 있지만 통계는 10년치
부산에는 해운대·광안리·송도·송정·다대포·일광·임랑 7개 공설해수욕장이 있다. 이중에서 송도가 전국 제1호 공설해수욕장으로 1913년에 개장해 역사만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부산시가 공식적으로 집계한 해수욕장 이용객 통계는 2009년부터다. 지난해 6~8월 부산 7개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은 연인원으로 3,695만 명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으면 전체 인구 중 73.9%에 달하는 숫자가 부산 해수욕장에 놀러 온 셈이다. 물론 각 지자체마다 자기 지역에 있는 해수욕장에 사람이 많이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끔 집계를 부풀린다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10년 중 2017년에 4,856만 명이 찾아 가장 많았지만, 당시 이동통신사를 활용한 빅테이터 방식으로 집계해 보니 이용객 수는 이 보다 훨씬 작아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가장 적은 이용객이 찾았을 때는 2,843만 명을 기록한 2014년이었다. 당시 태풍이 몰고 온 폐합판 200t이 해운대해수욕장을 덮치는 불운이 있었고, ‘부산바다축제’ 기간 중 나흘 동안 비가 130mm 이상 쏟아지면서 축제를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연도별 부산 해수욕장 이용객 | 부산일보

부산의 해수욕장 중에서 특히 해운대, 광안리, 송도, 송정해수욕장의 개별 추이를 살펴보면 역시 부동의 1위는 해운대다. 2017년에 광안리가 15만 8,000명 차이로 해운대의 턱 밑까지 추격한 적도 있었지만, 역전은 아직 먼 것 같다. 최근에는 부산 서구에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송도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송도 이용객도 꽤 많이 늘고 있는 추세다.

전국은 ‘피란 행렬’, 부산은 ‘피서 행렬’
지금은 부산에서 해운대해수욕장 천하지만, 과거에는 제1호 공설해수욕장 송도를 찾는 이용객이 제일 많았다. 그래서 공공기관이나 언론이 해수욕장을 다룰 때 제일 먼저 거론하는 게 바로 송도였다. 실제 <부산일보> 1954년 8월 10일 자 2면 ‘바다로, 바다로, 13만 명 사람의 파도’ 기사를 보면 부산의 주요 피서지 별로 주말 풍경이 나와 있는데, 송도, 광안리, 송정, 신선대, 감천 순서로 열거돼 있음을 볼 수 있다. 해운대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송도하면 또 다이빙대와 해상케이블카, 구름다리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이 시설들은 한때 다 사라졌다가 다이빙대는 2013년, 해상케이블카는 2017년에 복원됐고 올해 5월에는 구름다리의 명성을 잇는 ‘송도용궁구름다리’가 개통됐다. 송도 인기가 어찌나 좋은지 70년 전 6·25 전쟁이 한창일 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일보> 1951년 8월 14일 자 2면에는 ‘전쟁 모르는 송도, 수영복 위를 오가는 추파’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우리 젊은 용사는 붉은 악마북한와 더불어 어제도 오늘도 아니, 이 순간도 싸우고 있는데… 호화로움을 자랑삼아 피서하는 시국의 역류군상들이 날마다 찾아도는 송도”라고 개탄하고 있다.

 

1951년 8월 12일에 충무동 도선장에서 송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남부민동에서 송도로 가는 도로에는 ‘피란 행렬’이 아닌 ‘피서 행렬’이 늘어섰다. 신문은 백사장에서 다음과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고 묘사했는데,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이 한 벌에 10만 원 한다는 해수욕복을 입고, 하얀 두 다리를 뻐치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으며, 정체 모르는 어떤 사나이는 정욕에 불타는 눈초리로 수영하는 여학생들에게 이상야릇한 행동을 하고 있다.” 기사를 통해 1950년대 초반,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었는지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버스 타기 전쟁에 안전사고도 속출
7월 말부터 8월 초 사이 주말에 부산 해수욕장에는 수십만 명이 전국에서 몰린 것은 예사였고, 100만 명이 훌쩍 넘을 때도 많았다. 문제는 해수욕장 주변 인프라가 이 많은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어서 여름마다 피서객들이 해수욕장까지 이동하는데 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사람들이 해수욕장 주변으로 모여들면서 버스 타기가 전쟁이었다. <부산일보> 1967년 7월 24일 자 3면에 실린 ‘피서인파 30만 아비규환… 귀로의 차 잡기’ 기사는 열악했던 교통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일요일이었던 7월 23일 부산의 낮 기온은 30도 이상 치솟으면서 피서객 30만 명이 부산 7개 해수욕장에 한꺼번에 몰렸다. 지하철도 없었던 시절, 7개 해수욕장 정류소마다 합승을 기다리는 피서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귀로의 해수욕장 주변은 차를 잡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혼잡 상태. 송도해수욕장에는 아예 차 잡기를 단념한 보행자들로 충무동까지 인파가 이어지는가 하면 해운대 버스 정류장에는 300~400명씩, 광안리 정류장에는 500~600명씩 줄을 지어 평균 1~2시간을 기다리는 실정.”

<부산일보>에 실린 부산 해수욕장 관련 기사

해수욕장 개장 기간 월요일 자 신문에는 익사 사고 소식을 어김없이 볼 수 있기도 했다. 1968년 8월 8일 자 7면에 난 ‘부쩍 는 익사자, 올들어 벌써 19명’ 기사에는 “8일 말복, 삼복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면서 물가엔 인파가 붐비고 익사사건이 부쩍 늘었다. 7일 하룻동안만 해도 부산시내에는 어린이 3명을 포함한 익사 사건이 4건 발생했다”고 전했다. 그해 들어 부산 해수욕장에 하루 평균 15만 명이 찾았는데 익사자 19명 중 7명이 송도·해운대 등에서 발생했다. 안타까운 것은 익사자 대부분이 15세부터 20세 미만이었다는 것이다. 신문은 “청소년의 수영 미숙과 부모의 부주의 때문에 비극적인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 부모들의 특별한 관심이 요청된다”고 하지만 부모만 관심을 둔다고 될 일은 분명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열악했던 사회안전 시스템의 민낯이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익사 사고에서 잘 드러난 셈이다.

피 끓는 청춘은 시대 불변
이번에는 해수욕장에서 벌어지는 청춘남녀들의 ‘애정행각’을 살펴보자. 군사정권 시절 사회 분위기가 워낙 고압적이다 보니 당시 해수욕장에서 이뤄지던 남녀 청소년들의 로맨스는 일탈이나 탈선으로 매도됐다. 부산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진하해수욕장에는 특히 남녀 혼성캠핑·민박으로 악명(?)이 높아 신문 지면에도 할애됐다. <부산일보> 1972년 8월 13일 자 9면에 실린 ‘난잡한 10대 남녀 혼성 캠핑·민박’ 기사에는 “진하해수욕장에는 무분별한 10대를 포함한 난잡한 남녀혼성 민박·혼성캠핑족들이 몰려와 밤낮을 모르고 광란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혀를 찼다. 이 청춘 남녀들은 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술 마시고, 퇴폐적인 가사로 고친 노래를 부르고, ‘고고춤’까지 추면서 새벽 2시까지 불야성을 이뤘다 한다. 기사를 쓴 기자가 이중 한 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누구와 함께 왔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빠하고 왔소”라고 당당하게 밝힌 청소년의 패기(?)가 돋보인다. 며칠 뒤 후속보도에서는 경찰이 진하해수욕장을 덮쳐 10대 ‘난잡 캠핑족’ 57명을 즉결심판에 회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해외에도 맘대로 갈 수 없던 그때에 부산 해수욕장은 전국 최고의 피서지였다. 열심히 일만 하다 해수욕장에서는 한 번쯤 과감한 일탈을 꿈꿔보지도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옛날 해수욕장 모습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차림과 행동의 피서객들 사진을 꽤 찾아볼 수 있었다.

2020년으로 다시 돌아와 코로나19 때문에 마음 졸이고 사는 현재를 보면, 그 옛날 팍팍했던 삶과 얼추 비슷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는 점도 그때와 공통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올 여름에는 부산 해수욕장에서 철저히 거리두기 하면서 고단한 몸과 맘을 좀 다독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 | 황석하_부산일보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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