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속의 숨결을 잇다

이종철 전 관장 / 김홍남 전 관장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 80년간 한민족의 생활문화를 기록하고 연구하며 국가 대표 생활사 박물관으로 성장해 왔다. 그 여정의 중심에는 시대의 변화를 읽으며 박물관의 방향을 제시해 온 전임 관장들이 있었다. 민속의 지평을 확장해 온 이들의 고민과 선택은 박물관의 현재를 만들었다. 개관 80주년을 맞아, 박물관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자리를 지켜온 두 전임 관장의 목소리를 통해 국립민속박물관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이어갈 길을 되짚어본다.

이종철 전 관장
(1986~1994년, 1998~2003년 역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2·3대 총장

약 13년 동안 총 두 차례 관장으로 재임하시면서, 국립민속박물관을 한국을 대표하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공헌하셨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가장 강하게 기억되는 장면이나 순간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우선 국립민속박물관의 큰 전환점은 1992년 10월 30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속에서 벗어나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독립하게 되었고, 지금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사실 그 전해인 1991년 11월 30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법적으로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 체계 속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민속자료의 수집·보존·전시와 조사·연구를 담당하는 핵심 중추 기관으로 법제화되면서, 비로소 민속문화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박물관으로 위상이 확립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을 돌아보면 박물관은 한국민속관이라는 이름으로 경복궁 수정전 건물을 사용하다가 1975년 4월 11일 향원정 뒤편 옛 현대미술관 건물로 이전하면서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1993년 2월 17일 현재 위치에서 개관하기까지 약 18년 동안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 성장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독립 이후 가장 중요하게 추진한 과제가 바로 조직과 생생한 기능, 예산의 확보였습니다. 국가대표 민속문화 박물관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과 예산, 그리고 실천 조직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1993년 이전 개관 후 필사즉생의 각오로 민속연구과, 유물과학과, 섭외교육과를 신설했고, 이런 조직 개편을 통해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시급한 조사·연구·교육·교류 기능을 고루 갖춘 전문 기관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민족의 생활문화사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민족 생활사 박물관으로서 다양한 기획전시와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며 관람객에게 폭넓은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해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관람객 만족도를 높이고 박물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93년 개관 이후 2001년 5월까지 약 8년 만에 2천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함으로써 국립민속박물관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또한 1998년 10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방문과 같은 해 11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문,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2000년)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1993년)의 방문은 박물관이 한국의 생활문화를 대표하는 국가적 문화유산이자 국제적 문화교류의 장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기억됩니다.

퇴임 이후에도 박물관과 민속문화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이들에게 ‘연안옛길민속문화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 계십니다. 이 상을 제정하게 된 계기와 관장님 기억에 특별히 남아 있는 수상자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연안옛길민속문화상을 제정하게 된 계기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헌신해 온 수많은 분들의 노고를 역사에 기억하고 세계적 박물관으로 도약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기리고자 한 데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박물관은 특별 전시와 조사연구, 학문 성과와 함께 감추어진 무대 뒤의 기획·행정·예산·방호·미화·안내 등 숨은 관우들의 헌신이 민속 르네상스를 만드는 유기체입니다. 음지의 그늘 속에서 땀 흘리며 관객을 맞는 현장 종사자들과 박물관 유기체를 국민과 만나게 하는 문화장인들이 하나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지원과 협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들의 공로는 상대적으로 기록되거나 조명되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에 박물관의 역사와 가치를 최선을 다한 사람 중심의 기록으로 남기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헌신하며 희생하신 숨은 공직자분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하고자 저의 가족들과 역대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1억 6천만 원 기금을 모아 상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박물관 구성원 간의 상호 존중과 연대의 문화를 확산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후대에 계승하려는 의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2015년에 연안옛길민속문화상을 제정한 이후 2025년까지 매년 1회씩 총 11회 시상했고, 38명의 수상자에게 작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1966~2003년 이전 개관 초창기 40여 년 동안 끼니도 거른 채 새벽부터 밤까지 헌신했던 직원들의 3분의 1도 수상하지 못해 참으로 아쉬운 마음입니다. 수상 대상은 방호·미화·안내·행정지원·문화교육·유물관리· 조사연구·전시기획·운전 등 박물관 곳곳에서 함께했던 분들은 물론, 자원봉사자와 문화, 언론, 교육, 홍보, 전시, 행정예산부처 등 외부에서 박물관의 운영과 발전을 든든히 성원하고 뒷받침해 주신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까지 고르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의 국립민속박물관이 세계에서 우수하고 생동하는 문화기관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늘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태동기부터 성장기를 함께한 분으로서, 80주년을 맞은 오늘의 국립민속박물관이 앞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국민의 삶과 생활문화를 담아내는 세계적 공공문화기관이라는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물관은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기억과 일상을 기록하고 보존, 교육, 공감하는 미래 한국 문화의 모태가 되어야 하며, 관람객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공공성과 사회적, 교육적 책임과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
또한 민속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확장되는 살아있는 미래문화라는 인식을 상시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전통의 보존 전승은 물론, 오늘날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생활양식과 문화현상의 변동까지 폭넓게 기록하고 연구함으로써 박물관이 현재와 미래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 교육기관으로 존재 의미를 잊지 말기를 기대합니다.아울러 학문적 연구와 과학적 보존에 기반한 전문성 역시 흔들림 없이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입니다. 더불어 자료의 체계적 축적과 정보화는 박물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서, 분석된 자료와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적 전시와 연구의 깊이를 더해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의 생활문화를 지구촌 세계와 나누는 문화교류의 젖줄이라는 역할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합니다. 국제 교류와 디아스포라, 해외 전시를 통해 한국 민속문화의 가치와 정체성을 세계 속에 알리고, 다양한 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박물관의 시야와 역할을 더욱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흔들림 없이 이어질 때, 국립민속박물관은 1946년 4월 25일 송석하 선생의 국립민족(인류학)박물관 개관의 참뜻을 살려 지난 80년의 성과를 넘어 앞으로의 시대에도 세계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살아있는 참 박물관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전 개관 후 첫 외국인 관람객

국립민속박물관 직원과 문화체육관광부에게 문화교육 공직 43년을 헌공한 선배로서 남기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요?

문화공직자로서 자기가 맡은 문화사 책무의 핵심 전문분야를 열심히 조사한 후 연구의 결과 수집, 전시, 교육을 통하여 사회에 활용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공인이라는 소명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또, 문화적 자료의 수집, 조사, 연구, 전시, 문화교육에 따뜻한 공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박물관 생산성을 추구하기를 바랍니다.
거시적 철학을 가지고 민박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1년 동안 밤을 새워 작업한 후 대통령 재가까지 승인된 ‘국립민속인류학박물관’을 서울 경복궁 현 건물에 뿌리를 내리게 해 세계는 물론 한강 이북 서울 북촌에 문화 젖줄이 흐르게 하길 바랍니다. 세종시에는 세계의 어린이와 부모, 조부모가 문화적 통신을 할 수 있는 ‘세계어린이손자녀문화박물관’을 뿌리내리게 하면 됩니다.

“관장의 직급 위상 ‘가급’ 상향 시급하고 절실”

2000년 건립된 한국어린이박물관의 효시로서 독립된 건축과 국립어린이박물관의 직제와 명칭을 복원하고, 박물관법에 대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법제화된 관장의 직급을 가급(국립현대미술관장, 국립국악원장 직위)으로 상향하고 나급의 ‘행정기획 소통전략 국장’과 ‘학예연구실장’의 직제를 부활 추진해 주시길 최휘영 장관께 타는 목마름의 기도로 소원합니다.
또, 파주 출판단지의 소극적 운영을 탈피하여 통일민속촌 안에 이북5도의 생활문화박물관과 155마일 휴전선 DMZ의 6.25 한국전 기억을 예비한 현장으로 참전국의 생활민속과 가옥, 공예,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국동포의 ‘디아스포라센터’를 추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안동, 순천 지방관과 2020년부터 진행 중인 전주, 충주, 부산, 인천 등의 지역 민속박물관의 문화느티나무를 식목 재배하기 바랍니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바람이 있으신가요?

역사 문화의 복원을 통한 민족문화박물관의 소명인 법고창신, 온고지신의 문화 정신 추구와 육성, 함양 없이 조국의 미래문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이 지켜왔던 한민족의 사회, 정신, 생활문화를 깊게 뿌리내리게끔 가꾸어 세계 일등 국민의 문화적 긍지와 자부심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보편적 문화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민족박물관의 목표를 가지고, 젊은 선각자들의 시대정신과 거시적 기획 및 섬세한 추진하에 한국 문화 연구의 미래 씨앗이 잉태되어야 합니다. 창조적 소수가 헌신과 사명감으로 봉직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직 후배들은 ‘생각을 높게 가지고 생활은 평범히 하되 정신은 맑고 깊은 긍지와 자부심, 사명감, 소명의식, 전문성으로 무장된 문화 순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적 인류학·민속학 박물관’으로 도약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인류학, 지역민속학, 역사민속학, 박물관학의 통섭 총화 된 수준 높은 문화 소통 학자로서 복수 전공의 통섭 큐레이터가 요구됩니다. 원대한 목표와 더 높은 꿈을 가지고 더 많은 노력으로 국민 사랑을 모아 민족문화 핵심 주제 선정의 과정에 국민과 정부를 설득하며 문화 부흥에 함께 진력하기를 기대합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에서 ‘거친 바다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 했습니다. 이집트, 황하, 쉬메르,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모두 거칠고 가혹한 환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00년간 세계를 떠돈 유태인의 디아스포라도 문화변동의 시대에 민속전문가에게 주어진 마찬가지의 사명입니다.
길이 없으면 직원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민족 문화의 큰 길을 만들어 가시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길을 찾으면 반드시 길은 있습니다. 위기가 문 앞에 왔을 때 위기의 대처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의 철저한 준비가 가장 확실한 위기 대처의 극복 방법입니다.
역경 속에서 국민문화의 배움터이자 휴식터를 운영하시는 문화체육관광부도 과거 1년 320만 관람객이 찾았고, 한국 방문 외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서울 본관의 문화유산 지정 지원 육성과 세종 어린이인류학박물관의 건립이라는 일석이조의 선순환 문화정책을 부활하여 복원하기를 바랍니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과 수준 높은 한국의 문화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올리며 소명의식에 빛나는 전국의 민속문화사 박물관 협력망 가족님들, 늘 강녕하시고 빛나는 미래의 문화 초석을 함께 창조하기를 기대합니다.

김홍남 전 관장
(2003~2006년 역임)

2003년 취임 당시 관장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목표와 해결방안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컬렉션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민화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소리, 버드나무 스치는 소리, 연자방아 돌아가면서 부르는 소리 등 소리 컬렉션도 수집했습니다. 무형의 민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관람객들이 박물관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도 현대화했습니다. 문화상품 개발과 숍의 위치, 그리고 디스플레이, 카페, 화장실을 비롯해 로비도 대폭 개선했습니다. 전통적인 느낌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섞어서 구성했습니다. 이 외에도 입구부터 MI를 새롭게 하고, 또 관람객들에게 현장감 있고 살아있는 민속문화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옥외전시장의 전통 대장간을 신축함으로써 생활용구, 농기구 등 일상생활에 활용되었던 연장의 제작 과정을 재현했습니다. 노후화된 물레방아 및 통방아도 교체 전시했고요.

2003년 개관한 어린이박물관의 운영 성과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그동안 박물관 전시는 대부분 일반 성인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어 정작 우리 문화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어린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습니다. 어린이박물관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해 어린이의 눈높이와 학교 교과 과정을 반영한 ‘맞춤형’ 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어린이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 내용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이 직접 전통문화를 배우고, 만져볼 수 있는 체험식 학습이 가능한 ‘핸즈온hands-on 박물관’이라는 점입니다.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은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의·식·주 문화를 배우고 체험함으로써 교과서로는 부족했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즉, 어린이박물관은 박물관과 학교 교육의 유기적 연계를 추구하는 동시에 어린이, 교사, 학부모의 사회과 학습을 보조해 주는 수업 도우미가 됐으며, 유치원생을 포함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 맞춤형 문화공간, 그리고 핸즈온hands-on 기법을 수용해 다양한 문화체험이 기능한 열린 공간이 됐습니다.

2004년 ICOM 서울 총회의 논의로 탄생한 『국제저널 무형유산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을 2006년 창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제저널 무형유산』은 지난 20년 동안 무형유산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담론을 확장하는 국제적 플랫폼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2006년 창간 당시, 국내외 무형유산 연구 환경 속에서 『국제저널 무형유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셨던 문제의식이나 계기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003년, 유네스코 총회는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에 합의하고 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ICOM KOREA는 ‘박물관과 무형유산Museums and the Intangible Heritage’이라는 주제로 ICOM 총회(매 3년 개최)를 대한민국 서울에 유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1946년 국제박물관협의회 창설 이래 한국 박물관계와 아시아문화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는 위원회의 역사적인 사업이었습니다.
‘ICOM 2004 서울총회ICOM 2004 Seoul’는 세계 무형유산의 보존, 개발 그리고 지원, 장려가 ICOM 및 세계 박물관들의 사명 중 하나임을 선포하며 큰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대회가 끝난 이후, 한국 대회가 ICOM 총회 중 가장 성공적인 개최였다는 칭송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이 구체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일까 심사숙고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앞장서서 박물관 예산으로 『국제저널 무형유산』 창간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무형유산은 물론이고 세계 무형유산의 모든 측면을 다루고자 하는 의도로 국제적 명성의 편집진도 다채롭게 구성했습니다. 물론, 이 저널이 국립민속박물관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리라는 믿음도 동시에 가졌었습니다. 창간호를 들고 파리의 ICOM 회의에 참석해 창간을 공식 발표했을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2004년 ICOM 서울 총회

80주년을 맞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앞으로 미래 100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이어가야 할 가치와 새롭게 고민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아주 만족스럽게 성장했습니다. 직원들의 자부심도 큽니다. 하지만, 세종시로의 이전이 걱정스럽습니다. 행정 도시에는 분관을 세우고, 본관은 수도에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과 더불어 한국 문화의 3대 축인 국립민속박물관은 서울에 있어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케이컬처K-culture가 꽃이라면, 우리의 민속과 전통은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국립민속박물관은 “뿌리 깊은 나무”이고요. 그래서 국립민속박물관의 사명은 우리의 민속을 더 튼튼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장품의 확보는 물론이고 전시 주제 개발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쏟아야만 합니다.

민속소식 제314호  (2026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