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80년을 시작한 소장품
글 김윤정(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번호 1번은?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품 번호 1번은 어떤 유물일까? ‘민속’으로 시작되는 소장품 번호 1번은 1966년 구입한 동합금으로 만들어진 ‘촛대’이다. 우리 박물관이 1946년 개관했는데 왜 소장품 번호 1번은 1966년 구입한 촛대일까? 그 배경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설립 기원에 대한 지난한 논쟁의 역사가 있다.
1996년, 개관 50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기획되었다. 이때 박물관 및 학계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역사를 국립민족박물관에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두 기관이 소장품이나 행정상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 논란의 이유였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과 직접적으로 연계 지을 수 있는 출발은 1966년 한국민속관이라고 하는 견해가 우세했다. 한국민속관을 기획하고 설립을 담당했던 故 장주근 관장(재임 1966. 10. 4.~1975. 4. 20.)이 『국립민속박물관 50년사』에서 옛 국립민족박물관과의 연계 문제를 다음과 같이 썼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생일은 송석하가 민족박물관을 개관했던 1946년 4월 25일로 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까지도 생일만을 그렇게 정했을 뿐, 양자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다. 국립민족박물관이 1950년 12월 국립박물관의 남산 분관으로 흡수된 후 회복되지 못하였다. 문화재관리국이 1966년 한국민속관을 설립한 것은 당시의 관광정책 등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이때 송석하의 국립민족박물관을 계승하지 못했다. 1966년 한국민속관이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1979년 다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996년 50주년의 생일에 관해 민속학자들과 역대 관장들이 논의한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6년을 국립민속박물관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완전한 실효성을 위해 1950년 「구민족박물관 소장품 수입 명령서」에 의해 국립박물관에 인계한 4,555점이 민속박물관에 다시 이관되어야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50년사』 p.389-390.

촛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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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족박물관
(국립박물관 남산분관 시기 촬영 추정)
유추컨대 당시 민속학자와 관장들의 의견은 ‘국립민족박물관이 1949년 대통령령 235호로 내려진 정부의 정식 직제에 편재되어 있었고, 1960년까지 그 직제가 살아있었으며, 1966년 정부에 의해 추진된 한국민속관은 내용상 그 연장선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한국민속관 설립 시 여러 상황 상 국립박물관에 인계한 소장품을 다시 인수하지 못했지만 석남의 민속 조사와 그 수집품이 기반이 된 소장품이 사라지지 않고 국립박물관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국립민족박물관의 맥은 살아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립박물관 남산 분관으로 흡수되면서 인계한 소장품의 제자리 찾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이은 80년
2021년 11월 25일 국립민속박물관은 1950년 「구 민족박물관 소장품 수입 명령서」에 의해 국립박물관에 인계했던 소장품 중 오방신장 등 84건 84점을 이관 받았다. 이로써 끊겼던 80년 역사의 맥이 이어졌다. 1950년 인계 이후 71년 만의 귀환이었다.
돌아온 구 국립민족박물관 소장품 84건 84점은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번호 석남1932번부터 석남2015번까지의 번호를 부여받아 파주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구 민족박물관 소장품 수입 명령서
| 분류 | 수량 | 소장품 번호 | |
|---|---|---|---|
| 건 | 점 | ||
| 가면극 탈 | 46 | 46 | 석남1941~1986 |
| 탈 부속품(가면극 의상, 소품 등) | 29 | 29 | 석남1987~2015 |
| 중국 가면 | 9 | 9 | 석남1932~1940 |
| 총계 | 84 | 84 | |
이들은 1996년과 2005년에 기증된 송석하 선생의 민속조사 카드에 유난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가면극(탈놀이) 관련품들이다.
송석하 선생은 문헌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학문 방식을 탈피하여, 직접 발로 뛰는 현지 조사를 강조했고 몸소 실천했던 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집중했던 분야 중 하나가 가면극(탈놀이)이다. 선생은 사라져 가던 우리 탈놀이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전한다. 그는 경남 지역의 ‘오광대’와 ‘야류(들놀음)’를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하고 체계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통영오광대, 가산오광대 등의 현장 조사를 통해 그 전승 계보를 추적하였다. 현지 조사는 사진기, 녹음기 등 기록 매체를 적극 활용했고 내용을 꼼꼼히 조사 카드에 기록하고 사진을 붙여 작성했다. 우리나라 초기 민속학자의 현지 조사 카드는 그 자체로도 민속 분야의 보물 같은 자료이다. 여기에 이관 받은 현지 수집품들이 합해지면서 조사기록과 수집품이 함께 소장되어 민속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졌다. 이들 국립민속박물관 석남1932번부터 석남2015번까지의 84건 84점의 가면극 관련 유물은 바로 국립민족박물관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의 80년을 시작한 소장품이다.

민속 현지조사 사진카드

할미탈
송석하 선생은 민속을 조사와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재현과 보급에도 관심이 많아 1930년대에 직접 탈춤 공연을 기획도 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우리 민속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의 가면극과 비교 연구도 시도하여 자료를 수집했고, 2021년 이관된 가면 가운데 섞여 있는 9건 9점의 중국 탈은 이러한 배경에서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세종 시대를 열며 세계 민속으로의 주제 확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미 80년 전부터 그 씨앗이 뿌려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돌아온 84건 84점의 구 국립민족박물관 소장품은 국립민속박물관의 80년을 시작했던 깊은 뿌리이다.
민속소식 제314호 (2026년 3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