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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추천

손대원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성냥>

더 이상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며 몸을 녹이지 않는다.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멋 부리던 주윤발은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 성냥이 사라지고 있다. 엄지 손가락 하나로 찰칵 불을 붙이는 라이터의 등장은 성냥의 자리를 단숨에 장악했고, 이제 케익 상자에 함께 담아준 봉투에서나 겨우 성냥을 만날 수 있다. 2012년 우리나라 마지막 성냥공장인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를 조사한 손대원 학예연구사에게 성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성냥은 삶이다
한 시대를 밝히고
한 가족을 살게 한

“예전에 성냥은 필수품이었어요. 불을 피우기 위해선 꼭 필요한 도구였으니까요. 성냥이 있어야 군불도 떼고, 풍로에 불도 붙이고, 담배도 태우고, 촛불도 켰죠. 지금은 대부분의 일들을 라이터가 대신하는 데다 사람이 직접 손을 대지 않아도 스스로 발화가 되는 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발화 도구가 필요 없어졌죠.”

외갓집 부뚜막 한 켠에는 항상 커다란 성냥갑이 놓여있었다. 아궁이에 신문지를 구겨 넣고 할머니가 성냥에 불을 당겨 집어 넣으면 금세 불이 활활 타올랐다. 밤에 오줌 싼다고 오래 들여다보지도 못하게 하셨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이제 거의 존재감이 없어진 물건이 되었죠. 하지만 성냥이란 것이 단순히 발화 도구가 아니라 근현대사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마지막 성냥 공장인 ‘의성 성광성냥공업사’를 찾아가 몇 개월 간 조사했습니다.”

그가 공장을 찾아 조사한 2012년 당시 공장 직원은 11명으로, 실제 생산직 직원은 8명이었다. 한창 번창했던 1960~70년대에 200여 명 남짓이 하던 일을 8명의 인원으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만큼 주문량도, 생산량도 전성기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조사를 마치고 얼마 후,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다.

“한창 때 성냥 공장이 있던 마을은 공장을 중심으로 살았어요. 학교를 졸업 한 마을 분들이 이 공장에 입사하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겼고, 성냥이 많이 팔리면 자기 집의 수입도 덩달아 올랐죠. 조사 당시 성냥 공장 사장님도 일반 사원으로 입사했다가 여러 보직을 거치면서 사장님까지 오르셨어요.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이 산업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이었다고 해요.”

공장은 문을 닫았지만,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분들은 여전히 계모임 등을 통해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성냥은 삶이었던 거다. 생계의 바탕이고, 질 좋은 성냥을 만들어내겠다는 사명감과 성취감,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까지 지속케 하는.

성냥 개비 수만큼
삶의 지혜가 있다

성냥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일반인들이 모를만한 정보가 있었는지 물었다.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다.

“성냥도 각 지역마다 대표 브랜드가 있어요. 의성은 향로, 영주는 돈표, 천안은 아리랑과 유엔, 광주는 공작, 대구는 비사표 등등. 쉽게 말해 지역마다 그 지역만의 소주가 있잖아요? 그것과 같은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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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도 지역마다 대표 브랜드가 있었다. 성냥갑의 모양과 사용 방법에도 각자의 아이디어가 듬뿍 담겨있다.

그렇다면 그 지역 대표 브랜드들의 특징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모두 사라져서 아주 정확한 비교분석은 힘들겠지만, 제가 조사했던 의성 향로 성냥의 경우 강원도 지역 어촌에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해요. 습기에 강하게 만들어져서 습도가 높은 바닷가에서도 불이 잘 붙었고, 쉽게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겨울철에 선박 엔진에 시동을 걸 때 그 주위에 불을 넣어 시동을 걸었고, 강한 바람 속에서 불을 피운다거나 바다에서 불 쓸 일이 참 많은데, 그 지형적 성질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비싼 성냥이라고 해도 소용없었겠죠. 향로 성냥은 그 부분에 탁월했다고 해요.”

제작 중에 발생한 불량품 처리 방법도 재미있었다. 불량 성냥개비들만 헐값에 사들인 업자가 자루째 장에 내놓고 바가지로 퍼 담아 또 헐값에 팔았다고 한다. 성냥갑에 예쁘게 채워져 있는 것보다 실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알뜰한 사람들의 거래법이었으리라.

“성냥갑이 보통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물이 닿으면 속으로 물이 침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성냥개비에 물이 스미면 불이 붙질 않으니 다 버려야 했죠. 그래서 향로 성냥갑에는 바닥에 나무를 댔어요. 물이 쉽게 스며드는 걸 막기 위해서요.”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하나 둘 반영되면서 성냥은 발전해갔다. 한때 광고, 마케팅 용으로 가장 많이 활약했던 것도 바로 이 성냥이다.

“조사를 하기 전에는 저도 잘 몰랐지만, 성냥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약 서른 번의 공정을 거칩니다. 우리가 성냥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고, 그 불씨를 완전히 꺼트리는 데까지 드는 시간이 고작 3, 4초에 불과한데 그 잠깐을 위해 드는 시간과 인력과 공정이 어마어마하죠. 마지막까지 그 일을 해내시던 분들의 가치를 되돌아 봤으면 합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예의

성냥은 점차 사라져가고, 얼마 남아있지 않은 성냥의 역할도 아마 새로운 도구들에게 내어주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그저 사라지는 것을 바라만 보기에는 성냥에게 많이 미안하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불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이사할 때 불씨를 들고 가기도 했을 정도로 불이란 절대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고, 보존해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짐을 덜어준 것이 바로 성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언제 불씨가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탈피시켜 주었던 해방도구였던 셈이죠. 성냥만 있다면 언제든 불을 켤 수 있어요. 일부 선진국에서는 자연 재해나 전쟁 등의 위기 상황에 쓸 수 있도록 비축해두는 용품 목록에 성냥을 넣고 있어요. 라이터나 가스 버너가 가지는 한계를 성냥은 갖고 있지 않거든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도구, 발화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의 도구로서 인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손대원 학예연구사도 성냥에 대해 조사하기 전까지는 성냥에 대해 잘 몰랐노라 고백했다. 그저 불을 일으키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성냥이 가진 파급효과나 지역경제, 그리고 그 문화적 가치까지 알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성냥갑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써요. 스스로 디자인해서 판매하거나 선물하죠. 또 ‘マッチの日’라고 하는 성냥의 날이 있어서 성냥을 기억하고, 애정을 갖게 하고요. 이처럼 문화 상품으로서 성냥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바람이 생기지 않을까요. 한때 필수품이었던 성냥이 급격하게 사라지면서 마치 ‘사라져도 되는 물건, 없어져도 괜찮은 물건’으로 인식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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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성냥
지금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물건들이 너무 흔한 나머지 하찮고 보잘것없이 여겨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유물이 되고, 또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손대원 학예연구사는 덧붙였다. 지금부터라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물건이나 현상에 대한 기록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금 가장 자주 사용하는, 너무 자주 사용하는 나머지 그 특별함이나 소중함을 잊어버린 물건은 무엇일까. 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그 물건이 사라지고 없을 때를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 물건이 처음 나에게 주었던 놀라움과 고마움도. 당신이 잠시 잊고 있던 동안에도 그 물건은 오로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늘 당신만을 위해 쓰이고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것이 그 물건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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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보고서 <의성 성광성냥공업사와 극장 간판화가 백춘태: 사라져 가는 직업> – PDF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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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권종연 댓글:

    성냥을 사용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고 하니 너무나 아쉽네요.시골에서 부엌이나 쇠죽 끓일 때 땔감을 아궁에 잔뜩 넣은 다음 성냥 한개비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붉은 황종이 딱지에 살짝 긁어 불을 지필 때의 쾌감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서 기억되어 있습니다.비온 날이나 습기가 높은 날에는 서너개의 성냥개비를 불발로 만들 때의 아쉬운 감정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도 또한 뚜렸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른 예전의 필수품인 성냥은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고 후속 타자에게 임무를 인계하였다고 하는 조사 보고서를 대하니 이제는 안도의 감정으로 마감하여야 할 것 같네요.

  2. 김영숙 댓글:

    예쁘고 작은 디자인으로 특색을 보여주었던 성냥갑 모으기를 했던 추억이 떠올랐어요. 각양각새의 크기와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던 성냥갑들…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언제나 소중하게 여겼던 성냥개비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첨단의 제품들이 탄생을 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은 진화하고 변해가지만 역사적 가치로 조사와 보존의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는걸 또 한번 실감했습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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