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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不老口

한솥밥 먹는 사이란 어떤 걸까?

요즘과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부엌에 가까운 고정식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학교나 일터를 향해 집을 나서는 시간이 제각기 달라 함께 식사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아이들은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져 있고, 부모들은 분주한 일상을 지내다 보니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전통 음식을 즐기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음식을 나누는 정경을 생각하니 가족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한 지붕 아래 한솥밥
가족들의 오붓한 전골 밥상의 추억

 
우리 집은 전형적인 대가족제도 가풍을 그대로 이어받아 부모님과 7남매가 한집에서 생활했다. 위로 삼 남매가 출가한 후에도 식사 때면 둥근 밥상 두 개를 펴서 식구들이 둘로 나뉘어 식사를 하곤 했다. 그때 밥상 한가운데엔 큰 냄비에 끓인 전골에 서로 숟가락을 풍덩 풍덩 담그며 국물을 떠먹었는데, 동시에 같은 걸 떠먹으려다가 숟가락이 부딪칠 때면 손윗사람이 웃으며 양보해주곤 했다. 가끔 할아버지 제사를 지낸 후나 추석이나 설날이 지나, 정월 대보름쯤엔 두 밥상 중 한 곳에 전골 대신 신선로가 등장했는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였던 나는 신선로가 있는 아버지와 겸상하는 호강을 누릴 수 있었다.
 
전골과 신선로가 어떻게 다른지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보통 날에는 전골을 먹었고 명절 무렵에 신선로가 등장한 것을 떠올려 보면, 전골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재료로 간단히 만들어 식탁에 올라왔으나, 신선로는 제사음식을 장만할 때 여유 있게 만들어 놓았던 음식과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신선로에 담아 아버지의 밥상에 올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신선로에 들어가는 재료는 비교적 특별한 재료인 셈이었는데 생선 부침류나 고기산적, 여름에 채취해 두었다가 삶아낸 나물류가 들어 있던 기억이 난다.
 
 

숯불을 화로에 훨훨 피워 끓여 먹는 전골

 
전골과 신선로의 조리물체를 담는 그릇이 다르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음식의 재료나 조리방법, 유래 등 그 문화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기는 쉽지 않다.
 
우선 전골부터 살펴보면, 조자호趙慈鎬 등의 <세계의 가정요리> 한국 편에서,

“전골은 여러 가지 재료를 날로 쓰기도 하고
국물이 탁해질 재료나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미리 처리하여
이들 가자가자 재료를 전골냄비에 색을 맞추어 담고
간을 한 육수를 넣어서 끓여 먹는 즉석 냄비 요리이고,
그것을 보다 호화롭게 만든 것이 신선로神仙爐이다.” 1)

 
라고 하였다. 전골이란 분명 냄비 요리로서 찌개와 비슷하면서도 찌개는 미리 끓여서 내놓는 데 비하여 전골은 불에 냄비를 올려놓고 요리하면서 먹는 것이 특징이다. 그 유래 중 한 예를 보면, 장지연張志淵의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原歷史>에서는,

“전골氈骨은 상고시대上古時代에 진중陣中의 군사들은
머리에 쓰는 전립氈笠을 철로 만들어 썼는데
진중에서는 조리도구도 변변치 못하였던 까닭에 자기가 쓰던 철관을 벗어
고기나 생선 같은 음식들을 끓여 먹던 것이 습관이 되었으며
여염집에서도 냄비를 전립 모양으로 만들어 끓여 먹는 것을 전골이라 하여 왔다.
혹은 말하기를 토정비결로 유명하신 이토정李土亭 1517~1578선생이
항상 철관을 쓰고 다니다가 고기나 생선을 얻을 때는
머리에 썼던 철관을 벗어 끓여 먹었다 하여 선생의 별호를
철관자鐵冠子라 하였다는 말도 있다.” 2)

 
고 하였다.
 
숯을 사용한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는 우리의 전골과 흡사한 식문화가 있었다. 특히 일본의 전골 스키야키는 1543년 이래로 서양문명에 접하게 되면서 상류층 또는 외국손님의 접대를 위하여 소고기 요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골 기원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서울 풍속에 숯불을 화로에 훨훨 피워놓고 번철을 올려놓은 다음
소고기를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 고춧가루에 조미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 앉아 먹는다. 이것을 난로회煖爐會라 한다.” 3)

 
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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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은 주재료에 따라 도미 전골, 오징어 전골, 송이 전골 등으로 불렸고, 고기, 생선, 채소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섞은 냄비 전골은 「모둠 전골갖은 전골」 또는 「모둠 냄비각색 전골」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산업사회의 발달과 인구증가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외식문화의 교류로 인해 다양한 식재료의 전골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릇 복판의 관에 숯을 넣어 끓여 먹는 신선로

 
신선로를 궁중 연회식에서는 열구자탕悅口字湯이라고 한다. 1868년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신설로新設爐라 하였다 한다. <옹희잡지饔餼雜志>에서는 그릇은 놋쇠를 써서 만들고 크기는 대야 같고 그릇 복판에 굴뚝형 관을 만들어 숯을 피워 가열하여 탕이 끓고 재료가 고루 익게 되면 화자시畵磁匙, 자기수저로 떠먹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른바 지금의 신선로 그릇이다. 신선로란 이름이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요리 용기에 화과자火鍋子란 것이 있는데 우리의 신선로 틀과 똑같다고.
 
신선로와 전골의 차이점은 음식에 들어가는 그 재료에 있다. 신선로에 쓰이는 재료는 그야말로 호화롭다. <옹희잡지>에서는,

“신선로의 재료로서 쇠살비고기, 양, 천엽을 데쳐 썬 것, 닭고기, 꿩고기를 기름에 데쳐내어 채 썬 것,
붕어, 숭어의 전유어를 잘게 썬 것, 마른 전복, 해삼, 파, 부추, 순무뿌리, 무, 생강, 고추, 후추, 잣, 대추, 달걀흰자 등을 쓴다.” 4)

 
고 하였다. 요리책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나 참으로 호화롭고 다채롭다는 것을 알게 한다. 완성된 요리를 보아도 신선로는 색감이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우리의 전골과 신선로처럼 가열하면서 먹는 요리를 중국에서는 구오鍋子, guo tzyy라 하고, 일본에서는 나베모노鍋物라 하여 다소 유사한 점이 있으나 기원의 선후를 따지는 것은 오늘날에 별 의미는 없다고 하겠다.
 

외식문화가 들어온 후로 도시의 거리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으나 정작 우리의 전통 음식 중 전골, 특히 신선로는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전골이나 신선로를 가운데 끓이며 정겨운 눈빛을 나누는 우리의 전통 음식 문화가 잊혀져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김 모락이는 신선로를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아버지와 함께한 식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이 글의 필자는 1985년 교문사에서 발행한 《한국요리문화사》를 참고로 하고 있다. 《한국요리문화사》는 우리나라 식품 분야의 저명한 연구가인 故이성우 선생이 집필한 책으로, 농업과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 어떻게 발전하여 왔는지를 보여준다. 요리와 조리, 가열요리의 기원, 밥의 문화, 국의 문화, 곰탕과 설렁탕의 문화, 국수와 냉면의 문화 등 한식의 전 범위를 담아내고 있다.
 
《한국요리문화사》, 이성우 지음, 교문사
 1) 전골의 문화 중에서 _134쪽
 2) 전골의 문화 중에서 _134쪽
 3) 전골의 문화 중에서 _139쪽
 4) 신선로의 문화 중에서 _140쪽
 
글_ 김필영 | 시인·문학평론가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푸드서비스 디자인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음식 64가지를 시로 쓴 《우리음식으로 빚은 시》 음식테마 시집을 발간하였으며, 저서 《주부편리수첩》과 《나를 다리다》 《응》 《詩로 맛보는 한식》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사무총장과 이어도문학회장, 시산맥시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시와 음식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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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김필영 댓글:

    우리 전통음식 전골과 신선로문화의 추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람 맛이 나는지 정겨운 풍경에 흠뻑 적시도록 멋지고 짜임새 있게 디자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ᆢ 김필영올림

  2. 윤혜지 댓글:

    한솥밥 문화란 말에 이런 뜻이 있을 줄이야!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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