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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민속

새해, 도화서 화원은 도망치고 싶다

이 전각에 납시었을 때 신은 춘추각에 봉사하고 있었다. 이날 이조판서가 세화歲畵를 바쳤다. 상이 신을 돌아보며 이야기하기를 ‘사관이 늙었으니 <남극노성도南極老星圖>를 주려 한다’고 했다. 이때 한림원 신하가작은 소리로 ‘학을 탄 신선이 이상하다 하니 나도 작은 소리로 용을 탄 신선만 못하다’ 하였다. 상은 남극노성도 두 폭과 용을 탄 신선 그림 두 폭을 내려 신은 감개무량 해서 받았다.

 

조선 후기의 문신 양주익梁周翊1722~1802은 정조로부터 <남극노성도南極老星圖> 두 폭과 용을 탄 신선그림 두 폭을 받고 이와 같은 글을 남겼다. 그 외에도 세화를 받은 기록이 종종 남아 있어 조선 후기에는 왕이 연말연초에 신하들의 무탈과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그림을 선물하는 풍습이 성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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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생도, 작자미상 / 2. 송학도, 변관식 작 / 3. 수성노인도, 작자미상 모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전하, 오래오래 사시옵소서”
장수를 기원하는 송축 인사

 

연초에 먹는 술을 세주歲酒, 연초에 먹는 밥을 세찬歲饌이라 하듯이 연말연초 집안 내외를 장식하고 주고받는 그림을 세화歲畵라고 했다. 조선 후기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도화서圖畵署에서 수성壽星·선녀仙女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하는 것을 이름하여 세화라 한다. 그것으로 송축하는 뜻을 나타낸다.’ 이처럼 세화는 처음 왕실에서 시작되었다가 점차 아래로 퍼져나간 풍습이었다.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기록에 의하면 고려 말,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몸이 아플 때 왕으로부터받은 그림을 보며 몸을 추슬렀다고 나와 있어, 고려 이전부터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던 신년 풍습으로 추정된다.

 

새해를 송축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림의 주제는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주로 나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하는 의미로 장군將軍과 계견사호鷄犬獅虎, 장수를 의미하는 십장생十長生이나 신선神仙의 모습이 그려졌다. 장군과 계견사호 그림은 주로 왕실과 귀족들의 크고 작은 문에 붙이는 그림으로 사용되었고, 십장생이나 신선 같은 그림은 왕이 신하들에게 선물하는 그림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기록으로 보아 왕에게 선물 받은 세화로 가장 많이 그려졌던 그림은 십장생도나 수성노인도壽星老人圖로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신년을 송축하는 의미로는 오래 사는 것이 제일이었던 듯하다. 옛 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세간에는 까치, 호랑이 그림도 세화로 많이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대충 그리는 자들은 엄히 다스릴 것이다”
사연 많던 세화는 이제 사라지고

 

왕실에서 나눠주는 세화는 왕실 그림을 담당했던 도화서의 화원들이 그렸다. 화원들에게 세화를 그리는 일은 일종의 의무였는데,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모든 화원들이 1인당 20~30장씩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산술적으로 매년 400~600장 정도가 그려졌다. 신한평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한 화원 역시 세화를 그렸다. <일성록> 정조 5년의 기록에는 화원들의 세화에 대한 재미난 평이 실려 있다. ‘솜씨가 좋은 화원들이 대충대충 그리는 시늉만 내서 그림의 품격과 채색이 매우 해괴해 그 해 화사 중에서 신한평申漢枰, 김응환金應煥, 김득신金得臣에 대해서는 곧 벌을 내릴 것이니 나중에도 다시 태만히 하고 소홀히 할 경우에는 적발되는 대로 엄벌할 것’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대에 잘나가던 화원들에게도 세화는 피해갈 수 없는 숙제였나 보다. 대소가大小家에 불려가 세화를 그리는 건, 참 하기 싫은 일이 아니었을까?

 

세화는 화려하고 선명한 채색화가 많았다. 신년 초 한양의 부유한 집들의 대문은 장군 그림들로 도배가 될 정도로 성행했는데, 이를 금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매년 몇백 장씩 그려진 많은 세화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자취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풍습도 사라져 지금은 신년 초 그림을 선물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작은 마음이 연하장 겉면에 남아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메일이 우편을 대체하면서 그림이 그려진 연하장마저 줄어들었지만, 붉게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소나무와 학이 그려진 그림은 여전히 새해에 가장 어울리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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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도, 작자미상,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글_ 김윤정 |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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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배경문 댓글:

    여기서 중요한점은 연말연초가 지금의 12월 1월이 아니고 음력 설 전후라는점~ 입니다^^

  2. 최윤경 댓글: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연하장구경한 지도 한참입니다. 정겨운 그림으로 한 해의 안녕을 빌어주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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