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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민속

원숭이, 일문일답

우리의 구비전승에서 원숭이는 꾀를 부리고, 재주 많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이야기된다. 도자기나 회화에서는 모성애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 많이 표현되기도 한다. 원숭이의 어떤 면들이 이런 상징성을 갖게 했을까. 옛 이야기와 유물 속에 그려진 원숭이를 통해 원숭이에 대한 궁금증 몇 가지를 해소해 보자.

 
 

우리나라에도 원숭이가 살았을까?

 
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았다. 그래서 원숭이에 얽힌 이야기도 흔치 않다. 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조선 초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들어온 듯하다는 가설만 있다. 그러나 원숭이 상이나 조각 그림은 통일신라부터 무덤의 호석·부도·고분벽화·석관 등에 보인다. 이들 유물은 모두 불교가 전래된 이후의 것들이다.

 
 

원숭이 엉덩이는 왜 빨간색일까?

 
게와 원숭이가 떡을 해 먹기로 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원숭이가 다 된 떡을 몽땅 가로채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고, 게가 나누어 먹자고 사정하는데도 혼자 먹다가 떡을 땅에 떨어뜨렸다. 게가 그 떡을 얼른 주워서 굴 속으로 도망가자, 원숭이는 게의 굴을 엉덩이로 막고는 방귀를 뀌었다. 그 때 게가 앞발로 원숭이의 엉덩이 물어뜯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원숭이의 엉덩이는 털 없이 빨갛고, 게 앞발에는 아직도 원숭이 엉덩이의 털이 붙어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원숭이 낯짝 같다·원숭이 볼기짝 같다·원숭이 똥구멍 같다” 등의 속담은 빨간 원숭이의 얼굴과 볼기짝에 빗대어 술이 취해 얼굴이 붉어진 사람을 일컫는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로 연결되는 말 이어가기 놀이에서도 원숭이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빨간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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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 그림에 등장한 원숭이의 모습. 왼쪽은 <백납도>, 오른쪽은 <백동자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옛 그림 속 원숭이는 왜 천도복숭아와 포도를 먹을까?

 
천도복숭아는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바위, 소나무, 폭포, 천도복숭아와 함께 그려진 원숭이 가족은 천도복숭아 나무 근처에서 서로의 등을 손으로 잡고, 천도복숭아를 따거나 들고 있다. 천도복숭아를 먹거나 손에 잡은 것은 장수를 나타내며, 원숭이 가족이나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 등을 잡고 있는 것은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포도알의 탐스런 모습은 풍요다산豊饒多産을 뜻한다. 청화백자靑華白磁, 백자白磁의 항아리나 걸상의 장식에는 원숭이가 포도 넝쿨 사이로 다니거나 포도를 따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벼루의 문양에서도 포도와 원숭이가 함께 담기는데, 선비의 사랑방 기물이나 문방사우 등에 원숭이를 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원숭이 후’자는 ‘제후 후’자와 발음이 같아 원숭이는 곧 제후, 높은 벼슬을 얻는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 높은 직위는 부와 명예를 모두 포괄하는 인생의 지복至福 중 하나였다.

 
 

원숭이는 어쩌다 스님의 시중을 들게 됐을까?

 
불교 설화나 서유기와 등에는 스님의 시중을 드는 원숭이가 등장한다. 나무 아래에 앉아있는 스님에게 원숭이가 천도를 바치는 그림, 노장의 지팡이를 원숭이가 잡고 있고 뒤에는 동자승이 호로병을 들고 있는 그림 등이다.
 
동양문화권 신화에서 원숭이는 사랑 받는 동물 중 하나이다. 원숭이는 보통 추하고 장난을 좋아하는 재수없는 동물이었다. 그러다 스님을 도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는데 공헌한 원숭이의 용감성, 장난, 심술기의 이야기가 여러 희곡이나 소설에 등장하면서, 원숭이는 악귀를 물리치거나 쫓을 수 있는 힘이 있어 인간의 건강과 보호·성공을 이루게 해주는 동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장사나 시험 등에 실패하는 것은 악마 때문이고, <서유기西遊記>의 손오공처럼 귀신을 쫓기 위해서는 축귀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원숭이를 흉내 낼까?

 
원숭이는 봉산탈춤, 양주별산대, 송파산대놀이, 강령탈춤, 은율탈춤에서도 등장한다. 붉은 얼굴과 가장자리에 털을 붙인 종이나 나무의 원숭이 탈을 쓰고, 발을 올렸다 내렸다 몸을 흔들며 깡충깡충 걸어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원숭이다. 탈뿐만 아니라 원숭이처럼 붉은 옷을 입고 대사도 없이 그저 사람 흉내만 낸다. 탈판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모두 인간의 외설스러운 음험한 행위를 흉내낸다. 그 모습을 통해 파계승 노장의 형식적인 도덕과 신장수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폭로한다.
 
원숭이의 재주를 이용한 장사는 탈판의 신장수장사꾼에서 비롯되어, 이후 장터나 서커스단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시골 장터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는 으레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부리게 해 구경꾼을 모은 다음 약을 판다. 서커스단에서 공굴리기, 줄타기, 자전거타기 등의 묘기는 원숭이 차지다.

 
 

원숭이해는 육십갑자에서 갑신甲申·병신丙申·무신戊申·경신庚申·임신 등 다섯 순행한다. 12지의 아홉 번째 동물인 원숭이는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원숭이해에 태어난 ‘잔나비 띠’는 천부적인 재질과 지혜, 재주를 지녔지만 자기의 재주를 너무 믿어 방심하게 되므로 스스로 발등을 찍기도 하니 주의하라고 한다. 흔히 원숭이 꾀 하면 잔꾀를 연상하게 되어 가볍게 받아들여지기 일쑤이기도 하다. 2016년 병신년에는 잔꾀가 아닌 큰 꾀와 슬기로 승화하여 평화롭고 알찬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글_ 천진기 | 국립민속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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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윤양노 댓글: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첫 째 글 과 키워드 중 게는 개의 오타인거죠?

    2016년 한해동안도 좋은 글과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 정민영 댓글:

    자세히 읽어보니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모르던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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