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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장인, 반짝이는 고집불통

‘장인匠人’이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들이 ‘수공업자’, ‘전통의 계승자’, ‘외골수’, ‘도제제도’, ‘달인’, ‘장인정신’ 같은 단어들을 말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부분적으로만 맞을 뿐이다. 만일, 장인을 일의 ‘창조자’라거나 배움의 ‘확장자’라고 한다면 어떤가? 이런 주장에 쉽게 수긍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장인에 대한 이런 새로운 시각이 ‘고집불통’이라는 과거의 이미지보다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스물한 명의 장인에게서
장인성匠人性을 포착하다

나는 지난 5년여 동안 장인의 일과 배움에 대해 연구했다. 일다운 일을 실천하는 장인의 ‘장인성匠人性’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한 달여 전에 〈장인의 탄생〉학지사, 2015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나는 장인을 ‘일하는 사람의 전범典範,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라는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했다. 전통적인 장인의 개념만으로는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더니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장인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전통 수공업 분야에서 일하거나 대한민국 명장名匠으로 선정된 분들뿐만 아니라 의사와 변호사, IT 개발자, 그리고 조각가, 바이올린 코치, 뮤지컬 배우 같은 문화예술인까지 포함되었다. 그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일에서 최고 수준에 있으면서 일하는 사람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국내 장인 16명을 만났다. 독일과 일본의 장인까지 포함하면 총 21명이 보여준 일과 배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살펴보았다.

일하는 사람의 전범으로서 장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장인정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성실하면서도 창조적으로 일하는 행동 습성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렇게 일한 결과로 최고의 생산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단지 정신만으로는 충분하게 다룰 수 없는 장인의 실천력을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장인성匠人性’이라고 불렀다. 장인이 보여준 일과 배움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만든 용어다. 장인성은 장인정신과 같이 정신만을 똑 떼내어 현실과 유리시킨 추상적 개념이라기 보다 장인의 삶이 가진 구체성과 실제성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다. 장인은 정신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곳에 고여있지 않은,
창조적이고 미래적인 사람들 ‘장인’

내가 만난 장인들은 모두 창조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통 수공업 분야든, 첨단 IT 분야든, 또는 전문직이든, 문화예술 분야든 다 마찬가지였다. 단지 전통을 고수하거나 계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통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었다. 또는 불모지에서 새로운 일의 전통을 창조해 나가고 있기도 했다. 새롭게 닥치거나 닥칠 문제들을 창조적으로 해결해 나갔다. 한 분야에서 깊은 숙련을 형성한 이후에는 인접 분야로까지 일을 확장했다. 그렇게 자신의 일의 깊이를 더해갔다. 한마디로, 장인은 새로운 일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새로움을 찾아냈다. 한눈팔지 않고 한우물만을 파며 직업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일의 내용과 수준을 더욱 확장하였다. 깊은 숙련 속에서 일과 배움을 더욱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새롭고 유용한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내가 연구한 장인들의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자동차 명장 박병일은 ‘못 고치는 차 고쳐드립니다’라는 간판을 내걸고 자동차 정비를 했다. 그는 버스 정비소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으나 이미 오래전에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수리할 준비를 마쳤다. 그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출시하자마자, 차를 사서 분해하고 실험하여 미래의 답까지 준비해 나갔다. 이용 명장 최원희는 ‘진정한 이발사라면 머리카락 없는 사람도’ 돌봐주어야 한다는 자세로 일한다. 그는 지금 이용뿐만 아니라 가발과 토탈헤어케어로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송림수제화의 장인들>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로 창조적이다. 그들이 4대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창조적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수제화라는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현시대에 맞게 다양한 신발들을 만들었다. 고객에게 딱 맞는 편한 신발을 만든다는 직업적 정체성은 유지하되 등산화 같은 새로운 신발을 생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의 요구도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소재와 새로운 제품에 대한 배움을 넓힐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창조적인 대응이 이들을 대량생산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게 했고 지금까지 장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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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수제화 4층에 위치한 공장에서 수십 년 사용해 온 펀치와 망치. 반질반질한 표면에 긴 세월이 깃들어있다.

 
장인의 창조력은 자신의 기술을 한 길로 깊이 파서 최고 수준까지 숙련한 이후에 나타난다. 최고의 숙련 단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내적, 외적으로 일을 확장한다. 그런 확장에 따른 배움이 함께 이루어지면서 창조력을 발휘한다. 거기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몰입이 기반이 된다. 이런 창조력을 발휘하였기에 장인은 최고의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장인에 대한 편견을 걷고
모두 그 자리의 장인이 되길

장인의 일이 가진 교육적 의미는 분명하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게, 일단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그 일에서 깊은 숙련을 형성하여야 한다. 일의 최고 수준에 오르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일과 배움을 넓혀간다. 물론 숙련과 창조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은 그런 힘겨운 일의 과정에서 희열과 보람을 느끼고, 그렇게 일한 결과로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

장인을 연구하면서 나는 오랜 시행착오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생각했던 장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오해들을 깨뜨려야 했다. 지금 이 땅에 살아서 일하는 전범으로서 장인들이 나의 무지를 일깨워주었다. 장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장인정신을 갖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장인성이라는 행동습성을 형성하여야 한다. 깊은 숙련의 힘으로 장인은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약삭빠르게 이리저리 좋아 보이는,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를 찾아다니기보다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묵묵히 드높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우리 일터가 장인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란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장인성을 형성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장인을 연구한 이유고, 장인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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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조사보고서 <송림수제화의 장인들>을 살펴보고, 필자가 5년간 조사한 장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 글을 썼다. 조사보고서 <송림수제화의 장인들>은 2012년 발간된 조사보고서로, ‘근현대 직업인 생애사’ 사업을 통해 후대에 우리의 근현대 직업과 생활문화를 전하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창업 80년을 맞는 송림수제화는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4대’의 인생역정이라는 생애사와 생업 활동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다시 보게 했다. 또한, 도시화와 대량 공장생산에 맞서 수제화 업계의 영고성쇠를 통해 삶과 직업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 조사보고서 <을지로 수표교에서 4대 80년 송림수제화의 장인들> – PDF

글_ 장원섭 | 연세대학교 교육학부 교수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UNIVERSITY OF IOWA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이후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였고, 2001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에서 교육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교육과 일의 사회학〉1997, 〈일의 교육학〉2006, 〈교육과 일〉공역, 2007, <THEORIES, POLICY, AND PRACTICE OF LIFELONG LEARNING IN EAST ASIA> 공저, 2010, 〈일터학습: 함께 배우기〉편저, 2012, 〈팀의 해체와 놋워킹〉공역, 2014, 〈장인의 탄생〉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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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오두영 댓글:

    ‘일’의 가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장인의 탄생》은, ‘장인성’을 ‘아비투스(Habitus)’측면에서 살펴보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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