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인가 싶으면 주전부리 같고, 아이 간식인가 싶으면 어른 술안주지 싶다. 튀각이라는 음식이 그렇고 부각이라는 음식이 또 그렇다. 귀한 줄은 알겠는데 자주 접하지 않았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밥상에 올려야 할지, 술상에 올려야 할지, 그도 아니라면 아이 손에 쥐여줘야 할지 고민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정답은 아무렴이다. 누가 먹어도, 어떤 자리에서 먹어도 맛있으니까.
   

겨우내 요긴하게 먹는 간식이자 반찬

 

중국이야 워낙 튀김 음식이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튀기는 조리법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기름을 두르고 지져내는 전을 주로 먹었을 뿐이다. 예외가 바로 튀각과 부각이다. 튀각은 김이나 다시마, 파래 등을 튀겨 건져 기름을 뺀 음식이다. 그 중에서도 다시마가 가장 많이 쓰이는데 네모지게 잘라 그대로 튀기거나 잣을 끼워 매듭 묶음 한 것을 튀긴다. 감자, 고구마, 단호박, 가지 등을 얇게 썰어서 물에 헹궈 녹말기를 뺀 후 간간한 소금물에 살짝 익혀 말려 쓰기도 한다.
 
부각은 튀각의 한 종류로 찹쌀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긴 것을 말한다.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의 《전촌호방煎川椒方》을 보면 “찹쌀가루를 청장에 반죽하여 이것을 시루에 쪄내어 천초川椒가루를 섞어 목판木板위에다 잘 이겨 떡가래 모양을 만든 것을 썰어서 건조시킨다. 이것을 향유香油 속에 넣어 전하면 부풀어 올라 씹으면 아삭아삭하다”라는 조리법이 나온다.
 
이성우 선생은 책 《한국요리문화사》에서 이 음식을 튀김의 범주에 넣었는데 단순한 튀김이라기보다는 부각의 모양새에 더 가깝다. 담백한 감자부각의 맛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부각은 튀각보다 만들기가 좀 더 까다롭다. 밑 손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용할 수 있는 종류가 다양하고 밑 손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라도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어 솜씨 가늠하기에 더 좋은 음식이다.
 
부각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고추나 당근, 도라지처럼 부피가 있는 재료는 한입에 먹기 적당한 크기로 손질한 후 물에 헹구고 물기를 털어낸 다음 찹쌀가루를 듬뿍 묻혀 찐다. 이걸 채반에 담고 햇볕에 바싹 말린 후 잡냄새가 들지 않도록 밀봉해두었다가 기름에 튀겨내는 것이다. 고추는 찹쌀가루 입혀 찌고 다시 찹쌀가루를 입혀 찌기를 세 번 정도 반복해야 아삭아삭하다. 찹쌀가루 입혀 쪄낸 고추를 바로 갖은 양념 넣고 무쳐내면 맛있는 즉석 반찬이 된다. 고추 농사를 많이 짓는 농가에서는 가을에 거둔 끝물 고추로 장아찌를 담그거나 고추 부각을 만든다. 창고처럼 쓰는 빈방에 가보면 바짝 말린 고추부각을 담아 둔 자루 몇 개쯤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만든 부각은 겨우내 튀겨 반찬으로 먹거나 매콤한 간식, 혹은 술안주로 요긴하게 활용된다.
   

찹쌀풀 발라 말리고 튀기고
부각은 정성과 인내로 만들어진다

 

깻잎이나 김, 들깨송이 같은 재료는 찹쌀풀을 발라 햇볕에 바짝 말린 후 튀겨 먹는다. 간단하다고? 모르는 말씀. 만들어보면 안다. 무궁무진, 흥미진진한 부각의 세계를. 십여 년 전, 지리산으로 산채 취재를 가 구례 어디쯤에 있는 한옥에 묵은 적이 있다. 뜨끈한 아랫목에서 한 잠 잘 자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와 보니 대나무로 엮어 만든 평상에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가죽 부각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대나무 기둥 두 개를 박아 만든 빨랫줄에는 이미 완성한 가죽부각이 척척 널린 채 한들한들 봄바람을 맞고 있었고 평상 위 할머니들은 손바닥으로 덜어낸 찹쌀죽을 새들새들하게 말린 가죽나물에 척척 비벼가며 발랐다. 곱게 쑨 찹쌀풀이 아닌 쌀알 듬성듬성 보이는 찹쌀죽을.
 
“쌀알이 섞여 있어야 튀겼을 때 더 많이 부풍께 파삭허니 맛나지. 찹쌀풀 발라 만들면 제대로 부풀지가 않어야. 참기름 듬뿍 넣고 3년 묵힌 젓국 넣어 간맞춰야 비리지 않아 맛나고. 찹쌀죽 바른 거 몇 장 쪄서 갖은 양념 넣고 무쳐도 밥반찬 하나는 금방이지.”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깨송이 부각도 잊지 못한다. 가을에 파랗게 알이 맺힌 들깨송이에 묽은 찹쌀풀을 발라 말렸다가 튀겨낸 것이었다. 찹쌀풀이 되직하거나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바르면 튀겼을 때 뭉쳐서 모양이 나지 않는다며 한 송이 한 송이 붓으로 섬세하게 발라 만든다고 했다. 마당 한쪽 장독대 항아리 뚜껑마다 초록 분홍 플라스틱 채반이 얹히고 그 위에 빙 둘러가며 깨송이를 널어 말리는 광경이 장관이었다. 멀리서 보니 아카시아꽃 송아리가 독 뚜껑마다 올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높은 온도에서 튀기면 쓴맛이 올라오고, 낮은 온도에서 튀기면 눅진하니 무거운 맛을 내기 십상인 것이 깨송이 부각이련만, 한입 물자 파삭하게 퍼지던 들깨 향이라니.
 
취나물, 동백잎, 뽕잎처럼 질깃하면서도 은은하게 향이 배어나는 나물이라면 모두 부각 재료가 되지만 그래도 가장 흔한 부각 재료로는 김을 빼놓을 수 없다. 엄지손가락에 통깨를 묻혀 꾹꾹 도장 찍듯 모양을 내서 만든. 음식 솜씨에 자신 있다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비법 몇 가지는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김부각 역시 그렇다. 간장을 사용하는 사람, 고추장을 섞은 간장을 사용하는 사람, 고추씨로 칼칼한 맛을 살리는 사람, 갖은 재료를 모두 넣고 끓인 육수를 섞어 쓰는 사람 등 정말 그 비법의 세계가 넓고도 깊으니 그렇게 오묘한 맛들이 나오는 것이다.
 
학생은 아니지만 청강 삼아 잠시 들렀던 어느 강의시간에서의 일이다. 마침 부각 강의를 진행하고 있던 강사분이 김부각 비법을 전수하겠노라 운을 뗐다. 김부각을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찹쌀풀을 바르고 잠시만 두면 마르면서 김이 오그라들기 십상이다. 김을 네모 반듯하게 말리는 비법을 알아내는 데 십 년이 걸렸다며 “비법이 뭔지 아세요?” 라며 묻는 강사에게 저도 모르게 그만 “풀칠을 김 바깥까지 하면 되지요”라고 말해버렸다. 당황한 두 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정말 무안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강사의 10년 세월을 앉은 자리에서 쉽사리 밝혀버린 버린 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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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각, 자반, 부각각 위, 왼쪽, 오른쪽 순.
튀각은 김이나 다시마, 파래 등을 튀겨 건져 기름을 뺀 것, 부각은 찹쌀풀을 발라 말려두었다가 기름에 튀긴 것, 자반은 양념장을 발라 말려 구운 것이다.

 

여문 손끝 맛이 살아있는
건강한 저장음식 튀각, 부각, 자반

 

김부각과 만드는 법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이 있다. 바로 김자반이다. 간장이나 고추장을 넣은 양념장을 발라 말리는 것까지는 비슷하지만 기름에 튀기지 않고 구워 먹는다. 튀긴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한 사람에게 적당한 음식이다. 물만 밥에 한 조각씩 올려 먹어도 좋고. 자반은 한 가지 조리법으로 정의 내리기 좀 모호하다. 간장에 조려낸 음식도 자반이고, 구워 먹는 음식을 자반으로 칭하기도 한다. 고등어, 갈치, 전어 등 생선을 소금에 절인 것을 자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음식방문》에 등장하는 콩자반 만드는 법이다. “맹물에 콩을 고아서 메주콩같이 물러지면 콩물을 따라내고 꾸미를 넣고 간장을 짐작해 붓는다. 장국이 거의 졸아들면 기름 넣고 꿀 넣어서 졸여 놓고 천초가루, 고춧가루, 생강가루, 계피가루, 껍질 벗긴 참깨와 잣가루를 넣어 먹는다”. 《주방문酒方文》에서는 “껍질을 벗기고 두드려 펴고 쓴맛이 없도록 모두 우러내어 익도록 쪄서 소금, 기름, 간장, 후추를 한데 화합하여 하룻밤 재운 후에 말려두고 구워 쓴다”라고 더덕자반을 소개하고 있다.
 
튀각, 부각, 그리고 자반. 이 세 가지 음식의 공통점은 여문 손끝 맛이 살아있는 저장식품이라는 점이다. 찬거리가 마땅치 않은 한겨울을 날 때 튀각과 부각 덕을 본다면, 멀리 달아난 여름 입맛을 잡는 데는 역시 자반이 요긴하다. 냉장고와 냉동고는 물론, 김치냉장고까지 갖춰 놓은 요즘 살림이라면 사시장철 이 세 가지를 갖춰두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짜고 달기만 한 감자칩 대신 순하고 담백한 감자부각을, 조미료와 합성첨가물로 범벅된 조미어포 대신 다시마튀각을 즐기는 것이다. 이런저런 튀각과 부각 섞어 한 바구니 상에 올리면 그만한 풍류가 없다. 술상이나 밥상, 혹은 주전부리 간식으로도.
 

글_ 이명아 |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로 있다. 전통 식문화와 한국의 농식품에 관한 글을 쓰는 매거진 에디터 출신의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로 향토 음식에 바탕을 둔 외식 메뉴 개발과 농식품 마케팅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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