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식이름은 아주 단순하다. 주재료에 조리법을 붙이면 된다. 우리나라 음식명에는 좀처럼 음식 맛이나 생김새 등을 표현하는 미사여구가 붙질 않는다. 예를 들면 ‘두부찌개’도 주재료+조리법을 따서 단순하게 지은 이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된장 맛이 들어갔으면 ‘두부된장찌개’, 돼지고기에 두부를 넣고 고추장맛으로 했다면 ‘돼지고기 두부 고추장찌개‘ 이렇게 붙인다. 그렇지만 아닌 것도 간혹 있다. 신선로라던가 구절판, 탕평채, 승기악탕 같이 재료, 조리법과는 상관없이 그릇의 형태나 한문을 우리말로 그대로 음을 붙여 음식명을 만들기도 한다.
   

녹말로 만든 가느다란 국수 ‘나화’

 
음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재료의 수급이나 외래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은 존재조차 알 수 없는 낯선 음식들도 있고 재료는 같지만 조리법이 달라진 것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나화·낭화’라는 음식이다. 어느 누구도 나화라는 이름만 듣고는 맛, 모양, 먹는 법을 떠올릴 수 없을 거다.
 
나화는 1670년대 쓰인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1670년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어 《주방문酒方文1600년대 말 추정에 나오는 ‘토장 착면着麵’,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년의 ‘창면昌麵’법,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1827년의 ‘창면暢麵’,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년의 ‘화면花麪’등 시대에 따라 착면, 탁면, 창면, 청면, 화면 등으로 달리 불리는 것을 알 수 있다.
 
나화, 낭화란 말은 《훈몽자회訓蒙字會1527년에 보면 ‘박탁餺飥’에서 연유되었다고 하는데, 중국 북송대의 책에 당나라 사람들은 ‘탕병湯餠’중 하나가 ‘박탁’이라 하였으며, 반죽을 손바닥으로 눌러, 짧고 얇게 만든 것을 삶아 낸 것으로 마치 수제비와 같다고 했다. 국어사전에도 낭화는 이렇게 쓰여 있다. “밀국수의 하나로 보통 국수보다 굵고 넓게 만들어 장국에 넣고 끓인다.” 그러니까 일종의 칼국수인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옛 조리서에 나타난 나화는 밀반죽한 박탁이 아니고, 수제비 같지도 않고, 녹말로 만든 가는 국수형태이다.
 
녹도나화는 《음식디미방》에 잘 소개가 되어 있는데, 먼저 ‘싀면틈 사이로 새는 면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2, 3월에 하며 정화수를 여러 번 갈아주며 쉬지 않게 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다.
 
“싀면 가루를 물에 풀어 넓은 그릇에 떠 놓고 끓는 물에 중탕하여 엉키면 말갛게 익는다. 이것을 떠서 냉수에 담가 식거든 편편히 지어 썬다.” 또한 “나화를 오미자국에 잣을 웃기로 타면 여름음식으로 가장 좋은데, 이것을 탁면이라 한다,” 또 “참깨를 볶아 찧어 냉수에 걸러서 녹도나화를 말은 것을 ‘토장녹두나화’라 하고, 오미자국에 말면 탁면이라 한다”라고 나화 먹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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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음식을 해먹는 집에서만
만들어 두었던 녹두녹말

 
원래 녹말은 녹두의 전분이지만 어느 전분이든 지금은 녹말이라 부른다. 옛 조리서 반가班家 음식책에는 요리책 앞부분에 녹두녹말 만드는 법을 소개한 것이 많다. 매우 만들기가 까다로워 쉽게 쓸 수 있는 재료는 아니었던 것 같다.
 
녹말은 봄철 계절음식에 가장 잘 쓰였는데, 녹말을 풀을 쑤어 굳히면 포르스름하고 투명한 청포묵이 만들어진다. 하들하들 매끄럽고 선뜻한 하얀 묵에 봄 미나리를 섞어 초간장으로 무쳐 내면 탕평채라는 멋스러운 음식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생선이나 푸른 채소를 겉에 묻혀 데치거나 찌면 투명하고 매끈거리는 음식이 된다.
 
중국요리는 모든 것이 녹말로 옷을 입혀 튀기거나 소스를 풀기 있게 만들어 음식에 끼얹는 방법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녹말을 아주 귀하게 쓴 셈이다.
 
녹두녹말은 더운 때 만들지 못한다. 전분질이 빨리 삭아 끈기를 만드는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위가 오기 전 초봄에 만들어야 한다. 옛날, 음식을 제대로 해먹는 집에서는 전분마다 끈기가 달라 봄철에 녹말을 만들어 저장해놓아야만 했다. 녹두녹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녹두를 불려 푸른 껍질을 벗기고 맷돌에 간다.이 때 되게 갈면 빈대떡 재료가 된다. 이어 명주자루에 물을 부으면서 주물러 큰 자배기에 뿌연 물을 받는다. 앙금이 가라앉고 맑은 물과 분리되면 웃물을 따라내고 딱딱한 앙금을 한지에 놓아 물기를 뺀 뒤 덩어리를 부수면서 바짝 말린다. 이 가수를 습기가 차지 않도록 잘 보관하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지금은
부드럽고 감성 어린 음식의 언어가
필요한 때

 
종합해보면 나화는 면의 종류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 나화를 깻국이나 오미자국에 말아먹는 차가운 음식을 착면, 혹은 청면이라 부른다. 《음식디미방》에서 본 것처럼 나화를 오미자국에 말면 ‘탁면’이란 음식이 된다 했으니 탁은 착으로 변하고, 오미자국물에 먹으니 시원하게 청량감을 준다하여 화청할 창, 혹은 청으로 변하였다. 달고 상큼하게 먹는 청면에서 목마름을 그치게 하고 시원함을 주는 창면으로, 그러다가 은연 중 창국으로 바뀌고 면을 넣지 않은 찬국으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서 나화를 배나 햇보리 삶은 것, 떡 삶은 것을 대신하는 화채로 만들어 먹었고, 냉수에 초맛과 간장 맛을 넣어 만든 장국에 오이, 가지, 미역, 파 등 채소를 넣어 시원하게 먹는 찬국으로 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 점차 살기 힘들어지니 음식명도 센 발음과 직설적인 표현이어야 기억에 남는가 보다. 점차 음식이름과 맛이 억세게 바뀌고 있다. 뼈다귀국, 내장탕, 쫄면, 떡볶이, 불닭 등. 나화나 낭화, 화면처럼 부드럽고 어감과 강하지 않은 음식의 색과 맛이 감성 어린 언어로 살아 있어야 세상이 순화될 것 같다. 칼국수 집을 고기 낭화집, 멸치 낭화집 이렇게 붙이면 혼동이 올까?
  

봄에 먹는 오미자 화채의 하나인 청면은 이렇게 만든다.

– 녹말에 물을 두 배 붓고, 편편한 쟁반에 0.3cm 되도록 붓고 물을 끓는 윗면에 쟁반바닥이 닿도록 놓아 익힌다.
– 투명하게 익으면 냉수에 넣어 얇은 묵을 떼어 낸다. 곱게 채를 썰어서 달게 만든 오미자국물에 띄워낸다. 잣을 서 너 개 뿌린다.
 

토장 녹도나화는 이렇게 만든다.

– 실깨한 깨를 가루로 빻아 고운체에 걸러 깨 즙을 받아 소금 간을 하고 녹말국수를 띄운다.

글_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기능보유자. 궁중음식 연구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음식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 하는 것에서 사람의 기본을 배울 수 있다고 여기며 우리 고유의 음식 문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림_ 신예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여행과 음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 〈여행자의 밥 1, 2〉 등을 썼다.
http://bit.ly/1rFhnZ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