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크고 작던 가족이라는 하나의 사회집단에 속해 있다. 그렇게 혼인 또는 출산을 통해 형성된 가족은 대대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가문’을 형성한다. 다양한 가문들이 가진 가풍과 가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올곧게 살아가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족전시 <성산이씨 응와 이원조의 가족 이야기> 전시를 기획한 최순권 학예연구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이번 전시에 대해 소개해 달라

 

최순권 학예연구관이하 최순권_ 그동안 매년 상설전시실 3관 가족코너에서는 진성 이씨, 영천 이씨, 풍산 류씨, 재령 이씨 등 한 문중을 선정해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전시를 마련해왔습니다. 올해에는 응와 이원조李源祚, 1792~1871를 중심으로 성산 이씨 가문의 가계 계승과 가학의 전승을 주제로 관련 자료 220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산 이씨 가문은 경상북도 성주 한개마을에 처음 들어온 이래로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영남에서는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에 이어 세 번째로 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Q.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

 

최순권_ 성산 이씨는 학자 가문입니다. 이 가문에서는 책 읽는 씨앗이 되라는 독서종자讀書種子,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을 뜻하는 무괴심無愧心의 가르침을 대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성산 이씨 후손들은 학문에 힘썼으며, 이규진, 이원조 등은 과거에 급제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선조의 가르침을 이어온 성산 이씨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가족을 있게 해준 조상을 생각해보면서 가족 간의 소중한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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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비 현판(北扉 懸板), 20세기, 북비는 북쪽으로 낸 사립문으로, 이원조의 증조할아버지인 이석문을 가리킨다. 그는 노론(老論)의 인사들이 집 앞을 왕래하는 것을 보고 남쪽 문을 뜯어서 북쪽으로 옮겼으며, 이 문을 향해 절하며 사도세자를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 _성산이씨 응와종택 소장

 

Q. 무괴심이란 무엇인가?

 

최순권_ 이원조의 증조할아버지인 북비北扉 이석문李碩文, 1713~1773은 1762년영조 38에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하자, 이를 잘못된 것이라고 영조에게 직언하다가 관직을 삭탈 당해 고향 성주로 낙향했습니다. 그는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을 뜻하는 ‘무괴심’ 세 글자로 자신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 앞으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이끈 노론 인사들이 지나자 남쪽으로 나있던 문을 뜯어 북쪽으로 옮기고, 그 문을 향해 절하며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북비는 이석문의 충절과 지조를 상징하게 됩니다. 이후 이석문의 손자인 이규진이 정조 때 장원급제를 하게 되는데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이규진이 이석문의 손자라는 것을 알고, 그 때 일을 가상하여 여겨서 북비가 남아있는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Q. 전시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최순권_ 가족전의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유물이 문서라는 점입니다. 그래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현판’이 있는데요. 북비北扉, 이석문, 사미당四美堂, 이민겸, 농서農棲, 이규진, 응와凝窩, 이원조 등 4대에 걸친 당호堂號 현판을 전시했습니다. 또한 이원조는 자료수집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 다양하고 방대한 문서를 남겼습니다. 전시에서 현판과 서화를 비롯하여 지방관으로 있을 때 그 지방의 유명한 글씨를 탁본한 자료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서종자실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요. 후손들이 대학자가 되는 데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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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와선생영정(凝窩先生影幀), 1865년, 이원조가 74세에 기로사에 들어갔을 때
창경궁 영수각에서 도화서의 화공이 그린 초상화
_한국국학진흥원 소장(성산이씨 응와종택 기탁)
Q. 전시 준비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최순권_ 현판을 가져오는 작업이 약간 난감했습니다. 전시를 일 년 동안 하기 때문에 종손에게 현판을 떼어오고, 원래 있던 자리에는 복제품을 걸어놓으면 어떤지 제안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기꺼이 협조를 해주셔서 저희가 직접 성주로 내려가서 현판이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업하여 박물관으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현판을 떼는 작업을 하기 전날 밤에는 혹시라도 흠집이 날까봐 뒤척였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Q. 이번 전시는 응와 이원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원조는 어떤 사람이었나?

 

최순권_ 1809년순조 9에 18세로 과거급제를 한 영특한 분이었지만, 당시 노론이 집권하던 시기라 남인이었던 이원조는 28년 동안 지방관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청도 결성, 강원도 강릉, 경상북도 경주 등에서 공조판서 등 내직과 제주목사 등 외직에서 공조판서 등 내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만년에는 주로 가야산 만귀정에 머무르면서 후학들을 양성했습니다. 그는 74세 때 기로사耆老社, 국조에 문신으로 재직 중인 자로서 정2품이며, 나이 70세 이상인 자를 위해 설치한 관사에 들어가 영정影幀을 하사받았고, 1869년고종 6에는 과거에 급제한 후 6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회방홍패回榜紅牌를 받는 명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Q. 전시품 중 시아첩과 침병에 대해 소개해 달라

 

최순권_ 퇴계 이황이 아들에게 자신을 경계하는 글을 직접 써준 것처럼, 이원조도 시아첩視兒帖과 침병寢屛 등을 만들어 집안에 교훈이 될 수 있는 좋은 글을 모아서 세 명의 아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가족 간의 교육을 통해 집안 대대로의 학문을 전승하여 당대에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생가 조카인 이진상李震相, 1818~1886과 종손자인 이승희李承熙, 1847~1916는 한주학파寒洲學派라는 당대의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현재 시아첩은 장남 이정상李鼎相에게 전해진 것만 남아 있으며,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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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관람객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전시품이 있다면?

 

최순권_ 이번 전시에서는 색채가 눈에 띕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붉은 색의 홍패 세 개가 걸려 있고, 청색 계통인 현판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시실 가운데에는 응와선생의 영정이 놓여 있는데요. 대부분 고문서가 주된 유물인 가족전시에서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최순권_ 고문서가 많다 보니 전시를 어렵게 느끼는 관람객들이 많은 듯합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보면 성산 이씨 가문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개마을을 촬영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이 영상을 보고 민속마을인 한개마을을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순권_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가문에 대해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족을 있게 해준 조상들을 생각해보면서 선조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는지를 느끼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가족전시 <성산이씨 응와 이원조의 가족 이야기>는 2017년 5월 16일(화)부터 2018년 4월 30일(월)까지 국립민속박물관 상설3전시실 가족 코너에서 열린다.

 

글_편집팀
http://bit.ly/2rSxR0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