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는 말이 안동 말하고 울산 말이 마구 섞여가지고 이 말도 아니고 저 말도 아니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안동 억양이 있다고 알아듣더라구요. 울산서도 다 알아들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울산 말이 디게매우 세고 하니까 말이 안 나와 가지고 동생 노트를 사야 되는데 문방구를 빙빙 돌기만 하고
다부다시 돌아왔어요. 말이 안 나와 가지고. 근데 말은 막 섞여도 그래도 이제 나도 울산사람 아닝교!”
김운현1954년생, 안동 출신의 울산사람

 

도시는 사람과 문화, 기술이 유입‧확산되고 서로 섞이고 넘나들며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역의 역사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일까? 또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2017 울산민속문화의 해, 광역시 승격 20주년 기념 특별전 <나도 울산사람 아잉교-수용과 포용의 도시, 울산>의 전시를 기획한 박혜령 학예연구사에게 들어보았다.

 
 

Q. <나도 울산사람 아잉교-수용과 포용의 도시, 울산> 특별전은 무엇을 담고 있나.

 

박혜령 학예연구사이하 박혜령_ 이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은 지역과 공동으로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조사‧연구하여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울산은 광역시로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곳으로 올해 ‘울산민속문화의 해’를 맞이하여 선정되었습니다. 전시에서 울산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많이 고민했는데요. 울산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과 기술, 문화가 많이 모여드는 대도시로서, 서로 화합‧적응하면서 도시가 만들어지고 울산사람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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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시 기획‧준비 기간 동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박혜령_ 울산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울산이 과연 수용과 포용의 도시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도시나 일명 토박이의 텃세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울산은 70%가 외지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늘 소외되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도 존재했고, 실제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고민을 하고 조사‧연구를 한 결과 울산은 역사적으로 봐서도 끊임없이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자체가 수용의 도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엔 서로 섞이고 화합하고, 넘나들면서 포용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고요. 울산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근로자는 근로자끼리, 가족은 가족끼리, 또는 한 아파트에 같이 살았던 이웃끼리 굉장히 끈끈하게 화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울산의 정체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역사적으로 울산이 가지는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

 

박혜령_ 현재까지 발굴된 우리나라 청동기 유적 중 4분의 1이 울산에서 발굴되었습니다. 그만큼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지요.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달천철장’이라고 삼한시대부터 존재했던 철광석 광산도 있었습니다. 철을 가진 지역은 무기를 철로 만들기 때문에 세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울산지역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일찍부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화를 보면 신라의 왕이 된 석탈해도 아진포에 닿았고, 처용설화의 배경도 울산입니다. 또한 전시에서 소개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인 반구대암각화도 울산에서 발견되었지요. 이후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한반도 전역에 바위그림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울주 반구대암각화가 시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Q.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선정되면서 지역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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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공업지구 지정선언문, 1962년 _울산박물관 소장

박혜령_ 이미 일제강점기 때 이미 공업도시로서 기반이 다져졌다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먼저 울산의 지리적 요건이 뛰어났던 거죠. 울산 삼선동에 국제비행장을 만들고, 울산과 일본을 연결하는 연락선도 운영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울산을 공업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워 부지를 매입하고 해안을 매립하여 공단부지를 많이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부국과 강병에 대한 열망이 커진 상태에서 박정희 장군이 특정공업지구를 선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정공업지구 즉 공업도시의 포문을 열면서 울산에는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Q. 전시에서는 울산으로 모인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울산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만 게 있을까?

 

박혜령_ 굉장히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울산에 살았던 소시민들은 서로 돕고, 위로하고, 화합하며 살아왔던 듯싶습니다. 근로자끼리, 가족끼리, 이웃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러한 관계들이 형성된 듯합니다.

 
 

Q. 이번 전시회에서는 ‘방어진 마을지도’를 만나볼 수 있다. 이 방어진 마을지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박혜령_ ‘방어진 마을지도’는 이시모토 카즈에라는 일본 분이 2011년에 그렸습니다. 이 분은 70여 년 전에 울산 방어진으로 이주하여 살았는데요. 방어진에는 어종이 풍부했기 때문에 오카야마현 히나세인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와 살았습니다. 그렇게 온 일본인 중 카즈에는 당시 집집마다 학교 조합비를 받으러 다녔기 때문에 방어진의 골목골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추억이 좋기도 하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여 친구 아들에게 현재의 방어진을 사진으로 찍어와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방어진 마을지도’를 그린 것입니다. 마을의 지형과 지물 외에 방어진에서의 좋은 추억을 군데군데 적어놓았습니다. ‘꽃바위’는 “반딧불을 좇으며 제방에서 산나물을 뜯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즐거운 추억의 장소”로 기억했고, 배를 만들었던 ‘방어진 철공소’에는 “타니 씨의 아버지가 사장이었다”고 써놓았습니다. 당시 방어진은 목욕탕 2곳과 영화관이 있을 정도로 큰 도시였고, 당시 가장 큰 어업회사인 대양어업의 기숙사 ‘하찌켄나카야’, 전당포 등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현재 방어진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이게 무엇일까?’ 궁금해 했던 것들을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당시 방어진에 살았던 일본사람들은 일본으로 돌아가서 방어진을 그리워하며 방어회를 만들어 먹고, 마을박물관도 만들어서 방어진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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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시관 중앙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테이블과 울산의 사라진 해안마을을 볼 수 있는 증강현실이 인상 깊었다.

 

박혜령_ 수용과 포용을 주제로 울산지역을 어떻게 표현할지, 역사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했습니다. 글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울산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도록 역사와 관련된 도시의 지리적인 조건을 프로젝션 매핑기법을 사용하여 대형 미디어테이블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 바다에서 울산으로 들어온 고래부터 현재 울산의 모습까지 울산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반구대암각화, 공업화로 사라진 해안 마을을 증강현실로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전시품이 있다면?

 

박혜령_ 전시품 중에 작업복 두벌이 나와 있습니다. 한 벌은 1970년대 현대자동차의 근로자 작업복이고, 한 벌은 외국인 근로자의 작업복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자동차 작업복의 겉면에는 현대자동차 회사명이 새겨져 있고 뒤집으면 예비군복이 됩니다. 당시 국방과 산업은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외국인 작업복은 인도인 근로자의 것으로 한국분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타국, 타지에 와서 정말 울산사람이 된 분이지요. 작업복에서 이러한 의미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울러 울산 총각을 줄여서 만든 신조어인 ‘울총’들의 가방과 상차림도 눈여겨보셨으면 합니다. 이들은 사실 기혼자이지만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들이죠. 실제로 총각이 아닌데 ‘총각’이라고 표현한 것. 울산에 모두 살지 않으면서도 ‘울산’이라고 붙인 반어적인 표현 속에 숨어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가방과 상차림은 연출이 아니라 ‘울총’ 두 분에게 그날 매었던 가방, 그날 저녁에 먹었던 식사를 그대로 받아 전시해놓은 것입니다. 사회적인 의미가 있고 울산의 특징을 보여주는 전시품들입니다. 이밖에도 우리나라 첫 번째 국산차인 ‘포니’, 울산 반구대를 노래한 한시와 그림, 울산 대곡댐이 생기면서 이주한 50년 이상 일기를 쓰고 있는 김홍섭 할아버지의 일기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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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총(울산 총각) 가방, 2017. _황건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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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총(울산 총각) 저녁상,2017. _최소용 소장

 
 

Q. 전시관을 찾는 관람객 분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박혜령_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제는 자신의 고향에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지역에서 터를 잡는데, ‘나는 어디 사람일까?’라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보시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역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실 겁니다. 갈등과 화합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면서 울산사람이 되는 가는 과정을 전시한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각자가 몸담고 있는 도시와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울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나도 울산사람 아잉교-수용과 포용의 도시, 울산> 특별전은 2017년 4월 19일(수)부터 2017년 6월 19일(월)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에서 열린다.

 
 

글_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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