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와 바위 곁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암수 한 쌍의 닭. 마치 당장이라도 종이를 톡 쪼고 현실 세계로 튀어나올 듯 생생하다. 이 그림 <쌍계도>는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 선생의 그림으로,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교한 표현과 살아있는 듯한 채색이 돋보인다. 이보라 학예연구사가 추천하는 <쌍계도>의 이야기다.

 
 

닭, 기세 좋은 목청으로
동트는 새 하늘을 알리다

 
“안중식 선생은 도화서의 화원이었는데 화원 중에서도 특히 왕의 초상을 그리는 ‘어진화사’였다고 해요. <쌍계도>에서 느껴지듯, 닭을 묘사한 정교함과 섬세함이 대단하지요. 개인적으로는 그림 속의 수탉이 꼿꼿하고 용맹스러운 자태로 곁의 암탉을 지키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림의 섬세함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몸을 뒤덮은 깃털의 색감은 한 가닥 한 가닥이 각자의 색을 내고 있는 듯 찬란하고, 정갈하게 수 놓은 듯한 털은 볕에 반사되어 반질반질 윤기가 흐른다. 베일 듯한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닭의 눈과 부리, 붉고 탐스러운 벼슬과 손 대면 탄탄한 표피가 느껴질 것 같은 발, 그리고 화려하게 솟아 올랐다가 폭포수처럼 흐드러지는 꼬리 털까지.
 
“유교에서 닭은 오덕五德을 갖춘 동물로 인식되었어요. 머리 위 벼슬의 모양에서 문,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하여 무, 적을 향해 돌진하는 용기에서 용, 먹을 것이 있으면 무리를 불러 함께 먹는 모습에서 인,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아침을 알리는 모습에서 신信. 또 닭의 벼슬은 관을 쓴 것이라고 여겨지기도 해서 입신출세立身出世,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상징하기도 해요. 조선 시대에 학문과 벼슬에 뜻이 있는 선비라면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닭은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고 재앙을 막는 ‘세화’의 소재로도 자주 쓰였다고 한다. 닭이 울면 어둠이 가고 새 아침이 오는 것처럼 지난 해의 어려움이 물러가고 새로운 희망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이보라 학예연구사는 같은 마음으로 2017 닭띠해 특별전 <정유년 새해를 맞다> 포스터에 이 그림을 골랐다.
 
“많은 곳에서 올해의 띠인 닭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홍보물이나 제품들을 내고 있는데, 대부분 닭을 캐릭터화 하거나 일러스트화 해서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실려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실제 닭의 모습을 통해서 닭이 본래 갖고 있던 성품, 성격, 그리고 그 의미들을 더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런 모습의 닭이라면 <쌍계도> 속 닭의 모습이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했고, 전시 기획자 그리고 여러 담당자들과 회의를 통해 이번 닭띠 전 포스터에 싣게 되었습니다.”

 
 

<쌍계도>의 닭이 전하는
2017 닭띠해 특별전 <정유년 새해를 맞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 중 하나인 ‘띠 전’은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렸다. 이보라 학예연구사는 이번 2017 닭띠해 특별전 <정유년 새해를 맞다>의 전시 디자인을 담당했다.

 

“전시 공간을 잘 기획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시의 첫 인상이자 얼굴이기도 한 포스터를 잘 만드는 일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포스터는 전시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전시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분위기까지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해요. 또 관람객들은 포스터의 이미지를 전시의 이미지로 연결해 인식하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과장이나 왜곡 없는 닭의 모습을 포스터에서 보여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이 지나치게 특징적이라면 전시 전체의 이미지를 잘못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닭띠 전 특별전 포스터에는 ‘닭’이라는 직접적인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닭 계鷄 글자에 <쌍계도> 속 두 마리의 닭이 자연스럽게 얽혀 있는 것이 전부다. 작년 원숭이띠 전의 포스터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타이틀이 선명했던 것이나 그 전 해의 ‘행복을 부르는 양’이라는 직접적인 동물의 언급이 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이 포스터는 닭띠 전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유물의 이미지가 홍보물로 가공되려면 그 홍보물에는 타이틀이나 전시 정보 등과도 위화감 없이 잘 어우러지도록 배치해야 하죠. 그러려면 유물의 이미지를 디자인의 요소로서 봐야 합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오동계자도>, <계도>와 <쌍계도> 등의 다양한 닭과 관련된 유물을 살펴 보았는데, 이 중 <쌍계도>가 활용되었죠. 다행히 닭띠 전시라는 것도 잘 전달되고, 균형감도 있는 결과물로 완성되었습니다.”

 

포스터는 관객과 전시를 잇는 가장 첫 번째 단추이다. 전시의 주제와 유물을 연결하여 하나의 세계로 창조된 전시공간으로 초대하고 안내하는 초대장과도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객의 눈높이를 반영하여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보라 학예연구사는 관람객의 시선과 호기심에 대한 이해를 늦추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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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과거와 오늘, 관객과 전시 사이를 잇는
전시디자이너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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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닭띠해 특별전 <정유년 새해를 맞다> 포스터
“전시디자이너는 관람객과 기획자의 접점에서 원활하게 소통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요. 디자이너가 어떤 디자인을 하느냐에 따라 관람객이 얼마만큼 이 전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결정되죠. 그래서 늘 관람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상설전시도 기획전시도 가장 먼저 고려하는 부분이 바로 ‘소통’이에요.”

 

이번 닭띠 전을 준비하면서 닭이 가지는 민속학적, 외형적 특징과 의미들을 더 재미있고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고 찾는 전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더 쉽고 직관적인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

 

“지금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하며 참여했던 전시 중에서는 2013년에 개최했던 특별전 <쉼>이 기억에 남아요. ‘쉰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관람객들이 실제로 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데 과연 이 주제가 잘 전해질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많은 관람객들이 박물관을 찾아주셨어요. ‘쉬기 위해서’요. 이렇게 관람객이 직접 체험하면서 무언가 얻어갈 수 있는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시하는 전시의 방향성이자 박물관이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

 

‘쉼’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그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휴식했는지에 관한 기록만을 전시했다면 전시를 찾은 관람객에게 남은 것은 없었을 거다. 나무로 만들어 둔 너른 마루에 죽부인을 끌어안고 누워 멀리 매미 우는 소리를 듣고, 시간도 잊은 채 깜빡 졸다 개운하게 박물관을 나섰다면, 그만큼 주제를 관통한 전시가 또 있을까.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런 거겠지요. 박물관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설 때까지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시각적, 공간적으로 박물관을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박물관만의 아이덴티티를 제공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박물관 일원으로서의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나 관람객의 시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유물은 과거가 미래에 말을 거는 특별한 방법이고, 과거로부터의 말을 듣고 우리가 건네는 대답은 바로 전시이다. 과거와 오늘이 더 유연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관객의 시선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전시 디자이너들의 끊임없는 고민과 안목 덕분이 아닐까. 조선 후기에 그려진 두 마리의 닭이 2017년 닭띠전의 얼굴로 등장한 포스터가 그것을 증명한다.

 
 

인터뷰_ 이보라 |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글_ 편집팀
http://bit.ly/2jtga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