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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소장한 | 향낭

선인들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났을까?

길을 걷다가 기분이 좋아지고 때로는 과거의 추억이 생각나는 향기를 맡아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후각은 추억과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냄새를 향기香氣라 하면서 미적으로 인식했던 것은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보면 극히 최근에 이르러서이다.

초기에 향을 사용하는 방법은 훈연爋煙으로 추정된다. 향을 피워 그 연기를 통해 몸에 붙어 있는 잡귀를 쫓고 깨끗한 몸으로 종교의식을 치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불교의 영향으로 향료가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향을 피우면 부처님이 내려와 기원하는 이의 소망을 들어준다는 믿음으로 인해, 향을 피우는 것은 불교 의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불교가 점차 민간으로 전파되고, 널리 퍼짐에 따라 향의 사용도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향은 몸에 지니고 다니며 향기를 발산하고, 나쁜 냄새를 감추는 치장용 이외에도 여러 가지 목적과 이유에서 사용되어 졌다. 첫 번째로 신분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독서를 할 때나 시를 지을 때,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향로에 향을 피우곤 했다. 선비들에게 향은 자신의 인품을 상징하는 수단으로써 큰 의미가 있었다. 최한기1803-1877의 『기측체의氣測體義』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진 이가 사는 방엔 난초와 지초 냄새가 있고, 어둡고 어리석은 이가 사는 방엔 혼탁한 냄새가 있다.” 1)

두 번째로 향은 치료나 병의 예방을 위해 사용되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보면 침향沈香은 풍수독종2), 복통, 곽란3), 구역질, 귀신을 물리치고 정신을 맑게 하며, 여러 가지 악창4), 내장을 보호하고 체증, 류머티즘, 구토, 피부 가려움증, 설사, 이질5) 등에 효능이 있다6)고 한다. 또 사향麝香은 막힌 것을 뚫어서 정신을 깨어나게 하며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여 경락經絡이 통하게 하고 맺힌 것을 흩어지게 하여 통증을 멈추게 하는데 중풍으로 인사불성이 된 사람을 깨어나게도 한다고 알려졌다.
그 밖에도 일상생활에서 좀벌레 예방을 위해 옷이나 서책에 향을 쏘이거나 실내의 해충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또 부부침실에 사향이나 난향蘭香을 사용하여 분위기를 돋우기도 하였다.

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향이 집단적인 사용에서 개인의 소유로 확대됨에 따라 향을 소지하고 다니는 방법의 하나로 향집이 나타나게 되었다. 향집이란 장신구의 일종으로 향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상자나 주머니를 뜻한다. 향집은 크게 향낭香囊과 향갑香匣으로 나눌 수 있다. 향낭이나 향갑을 몸에 지니기 위해 주로 의복에 패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복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점차 장식적인 기능을 가진 노리개로 이용되었다.

노리개는 우리나라 여성 장신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 허리끈에 차던 패물의 일종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향갑노리개민속 1085도 그 중 하나다. 노리개는 조선 시대에 왕실은 물론 평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여성이 아끼고 소중히 간직하였으며, 가례家禮나 혼례婚禮 등의 경사 시에는 물론 일상에서도 즐겨 착용하였다. 노리개의 기원은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삼국시대 요패腰佩의 여러 장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은삼작 노리개 | 조선시대 | 향갑 14.5/15, 장도 16.5, 술 20cm

칠보삼작 노리개 | 조선시대 | 길이 37cm


『삼국유사』에 “혜공왕… 벌써 첫 돌부터 즉위할 때까지도 언제나 여자들이 하는 장난을 하고 비단 주머니를 차기 좋아하며…”7)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는 고려시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인종 1년1123 고려를 방문했던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 고려도경』 제20권 귀부貴婦에는 “부인은···감람橄欖빛 넓은 띠 수건을 매고 색깔 있는 끈에 금방울을 달고 비단으로 만든 향 주머니를 패용한다. 이것이 많을수록 귀부인으로 여긴다.”8) 라는 내용을 볼 수 있어서 향낭이 달린 노리개를 착용했다는 것이 확인된다. 향갑노리개는 움직일 때마다 발산되는 부드럽고 은은한 향을 가지고 있어 한층 기품 있는 멋을 냈다. 장식적인 측면에서 향갑노리개는 그 자체만의 심미성과 더불어 복식과의 조화미도 빼놓을 수 없다. 향갑에 색채나 자수, 문양, 매듭, 술 등의 장식적인 요소들을 더해 복식과 조화를 이루고 아름다움을 더했다.

향갑노리개 | 광복이후(20세기 후반) | 길이 21.5cm

향갑노리개 | 일제강점기(20세기 초) | 4.5×32cm


본고에서 소개하는 향갑노리개는 상단에 끈과 매듭이 있고 그 아래 향갑이 있으며, 하단은 쌍봉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물에서 매듭은 향갑을 중심으로 상단에 위치하여 향갑을 좀 더 아름답게 장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듭을 지을 때는 노리개의 형태와 크기를 고려하여 만든다. 매듭의 아래엔 향갑香匣이 달려 있다. 모양은 모서리를 둥굴린 직육면체 형태로, 내부는 나무로 갑을 짜고 붉은색 천을 바른 후 도금된 동판으로 외피를 씌우고 향을 넣었다. 향이 유실되는 것을 막고 배색효과까지 고려한 것이다. 동판의 앞면과 뒷면에는 녹색의 난초 장식을 볼 수 있다. 향기가 좋은 난초를 문양으로 사용함으로써 시각과 후각의 공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향기를 더욱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향갑의 하단에는 쌍봉술이 달려 있다. 노리개의 술은 다양한 빛깔로 주체의 끝에 달려 유유한 선의 흐름으로 주체와 매듭의 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향갑노리개 | 조선시대 | 5×35cm

향갑노리개의 화려하고 귀한 재료와 술에서 표현되는 현란한 원색들은 다채색의 복식에서는 화려한 원색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정갈하며 담백한 의복에서는 파격적인 색채조화로 눈길을 끈다. 이렇게 시각을 자극하는 향갑의 장식들은 당시 그 안에 담겨 있던 향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비록 지금은 맡을 수 없지만 “선인들에게서는 어떤 향기가 났을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1) 최한기(1836), 『기측체의(氣測體義)』,賢人所居之室 有芝蘭之臭 昏愚所居之室 有溷濁之臭
2) 풍사(風邪)로 인하여 몸(體)이 몹시 붓는 모양이 심한 병증.
3) 음식이 체하여 토하고 설사를 하는 급성 위장병.
4) 악성 종기나 고치기 힘든 부스럼.
5) 혈액과 점액과 농이 혼합된 대변을 자주 보게 되는 질병.
6) 이시진(1956),『本草綱目』, 卷 34, 風水毒腫,主心腹痛霍亂,中惡,邪鬼疰氣淸人神諸瘡腫宜入膏中.破癥癖,冷風麻痹,筋吐瀉冷氣, 風濕皮膚瘙,癢,氣痢. 『三國遺事』券 第二 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 期晬至扵 常爲女之戱好 流戱 『宣和奉使高麗圖經』 卷 第二十 「婦人」貴婦, 橄欖勒巾 加以采條金鐸 佩錦香囊 以多爲貴
7) 『三國遺事』券 第二 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 期晬至扵 常爲女之戱好 流戱
8) 『宣和奉使高麗圖經』 卷 第二十 「婦人」貴婦, 橄欖勒巾 加以采條金鐸 佩錦香囊 以多爲貴

참고문헌
· 이미석(1994), 「향집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 의류학과 복식의장학 전공, 석사학위논문.
· 이애련(2011), 「당대 향장문화에 관한 연구」, 동아대학교 대학원 : 의상섬유학과, 박사학위논문.
· 최한기(1836),『기측체의(氣測體義)』.
· 이시진(1956),『본초강목(本草綱目)』.


글 | 김바다_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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