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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는

평소에 과묵하던 사람이 말이 많을 때 … “‌경칩이 지난 게로군~”

경칩驚蟄이 지나면 대동강물이 풀린다고 하여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된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개구리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초목의 싹은 돋아나고 동면하던 개구리가 입을 떼고 울기 시작하듯이, 입을 다물고 있던 자가 말문을 열게 되었음을 이르러 ‘경칩 지난 게로군’이라 한다.

공자가 진땀을 흘리며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손사래를 친 일이 있었다. 진지하기로 소문난 공자가 어떤 농담을 했기에 서둘러 발뺌했을까.

춘추시대 진나라의 봉지 춘추 5패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했던 진나라는 주나라 천자의 농담 한마디 덕분에 건국됐다. 중국 중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땅을 봉토로 삼았다.

‘농담 사건’은 공자가 제자 자유子游가 다스리고 있던 무성武城 고을에 가면서 시작됐다. 공자는 마을 곳곳에서 비파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마치 요순 시대의 고복격양가鼓腹擊壤歌와 같은 태평성대의 노래였다. 이때 공자가 빙긋 웃으며 “어째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 같다割鷄 焉用牛刀”고 한마디 농담을 던졌다. 일종의 야유였다. 이 정도의 작은 고을을 다스리면서 뭐 그렇게까지 거창한 ‘예악禮樂’을 펼치냐, 그것은 견물발검見蚊拔劍, 즉 모기 잡는데 칼 뽑는 격 아니냐는 힐난 같았다. 그러자 자유는 정색했다. “예악으로 백성을 다스리라는 스승의 높은 뜻을 힘들게 실천하고 있는데, 어찌 스승님께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 운운하느냐”고 항의한 것이다. 제자의 ‘뜻밖 정색’에 공자는 머쓱해져서 ‘앞의 말은 취소’라며 뱉은 말을 주워 담았다. 평생 단 한 번 던진 공자님의 가벼운 한마디가 다른 이(자유)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사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다. ‘한마디 농담’으로 건국된 나라가 있으니 말이다. 주나라의 2대 임금인 성왕재위 기원전1042~1021이 왕위에 오른 나이가 불과 13살이었다. 어느 날 성왕이 코흘리개 동생인 우와 소꿉장난을 하다가 오동나무 잎으로 규珪1) 만들어 주면서 “내 너를 당지역에 봉하노라”고 약속했다. 물론 소꿉놀이 농담이었다. 그러나 어린 천자의 한마디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졌다. 성왕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던 사관史官이 “천자께서 우를 당나라에 봉했으니 빨리 책봉날짜를 잡아야 한다”고 재촉했다. 당황한 어린 성왕이 “난 그저 농담으로 한 말吾與之戲耳”라고 했지만 사관은 “천자는 농담을 해서는 아니 된다. 天子無戲言”고 딱 잘랐다. 성왕은 꼼짝없이 ‘중국 중원’으로 일컬어진 노른자 위 땅을 동생인 우에게 내줬다. 그렇게 태어난 나라가 바로 ‘춘추 5패’ 중 가장 강성했던 진이었다. 춘추시대를 주름잡은 진나라는 철없던 천자의 한마디 농담 때문에 건국된 것이다. 이 일화는 ‘동엽작희桐葉作戲’, 즉 ‘오동나무 잎 소꿉놀이’라는 성어로 남게 됐다.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재위 기원전 202~195의 ‘피바람 한마디’도 간과할 수 없다. 한고조 유방의 조강지처이자 정부인은 여태후였다. 그런데 고조에게는 따로 총애하는 후궁인 척부인이 있었다. 고조는 이미 태자로 책봉된 효혜제여태후의 아들 대신 척부인이 낳은 아들여의을 예뻐했다. 고조는 늘 척부인과 여의만 감싸고돌았다. 급기야 기원전 198년, 고조가 태자태부태자의 사부 숙손통에게 “내가 농담 한마디 하겠다”고 하면서 “태자를 바꾸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숙손통은 “저의 목을 쳐서 그 목에서 나오는 피로 이 땅을 더럽히겠다”고 정색했다. 숙손통의 반발이 예상보다 더 거칠자 고조는 당황해서 쩔쩔 매면서 “경은 그만하라! 난 단지 농담한 것 뿐”이라 했다. 그러나 숙손통은 “어찌 천하를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있단 말이냐”라면서 “태자는 천하의 근본인데, 근본이 흔들리면 천하가 진동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고조는 태자 교체의 속내를 거두게 되는데 이때 던진 한마디가 무시무시한 피바람을 불렀다. 앙심을 품은 조강지처 여태후는 남편고조이 죽은 뒤 척부인과 여의에게 잔인하게 복수한다. 여의를 독살한 뒤 척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운 뒤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였다. 그런 뒤 돼지우리에 던져 넣고는 사람들에게 ‘사람돼지人彘’라 부르도록 했다.

‘한마디’의 결과는 이처럼 참담했다. 오죽하면 ‘뭇사람의 말은 쇠도 녹이고’2), ‘혀舌는 네 마리의 말이 끈 마차보다 빠르다’3)는 성어가 있겠는가. 중국 오대907~978 때 5왕조에 설쳐 8개 성을 가진 11명의 임금을 섬길 정도로 처세에 능한 풍도882~954는 ‘입조심’을 신신당부하는 시를 남겼다. “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4)

조선의 연산군재위1494~1506은 1504년연산군 10년 환관들에게 ‘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5)’라는 시구를 새긴 나무패, 즉 “신언패 愼言牌를 차고 다니라”는 명을 내렸다. 임금의 최측근인 환관들에게 ‘입을 잘못 놀리면 곧 죽음’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연산군도 입조심과 관련하여 주나라 성왕의 ‘동엽작희 桐葉作戲’를 코스프레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503년연산군 9년 창경궁 내전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질탕한 술자리를 벌였다. 연산군은 영의정 성준1436~1504과 좌의정 이극균1437~1504 등에게 호피虎皮에 어의御衣까지 하사했다. 그런데 그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겨 술김에 몇몇 인사들에게 자리를 보장해주었다.
“그래 과인이 어제 김감1466~1509의 품계를 올려 지성균관사성균관의 정2품를 시켜준다고 했지. 또 한형윤1470~1532을 이조참판으로 삼는다고 약속했지. 어젯밤의 약속대로 그렇게 임명토록 하겠다. (주 성왕의 고사처럼)임금의 약속을 ‘없는 일’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때까지 연산군은 나름 낭만 있는 군주였던 것 같다. 술김에 내뱉은 한마디를 취중진담으로 여겨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연산군이 대신들과의 격의없는 술자리를 벌이면서 몇몇 신하들에게 승진을 약속한 뒤 그 약속을 지켰다는 내용을 기록한 <연산군일기> 1503년 11월22일자 © 조선왕조실록

말문이 봄처럼 따뜻하게 열린다면 그 또한 ‘경칩이 오는 게로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옛 일화들에서 알 수 있듯 말 한마디가 ‘몸을 베는 칼’이 될 수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고,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가’니 움츠려 지냈던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력이 소생하는 경칩에는 봄을 깨우는 만물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바르고 고운’ 말만 가득하길 바란다.

1) 제후를 봉할 때 하사하던 신표
2) 중구삭금·衆口鑠金
3) 사불급설·駟不及舌
4)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5)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이 드나드는 문이며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은 것이다.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어느 곳에 있든지 편안하리라.


글_이기환 | 경향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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