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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쥐 이야기

온양민속박물관

2020년 경자년, 쥐의 해가 밝았다. 경자년庚子年의 ‘자’는 쥐를 뜻한다. 자축인묘子丑寅卯에서 진사오미辰巳午未 신유술해申酉戌亥까지 열두 동물 가운데 첫 순서에 해당하는 것이 쥐다. 이 열둘을 ‘지지’라 하거니와 갑을병정甲乙丙丁 등 10개 ‘천간’의 짝이 된다. ‘하늘의 줄기천간天干’에 연결된 ‘땅의 가지지지地支’이니, 하늘의 힘이 지상적으로 발현된 바라 할 수 있다. 왜 인간은 거기 없나 의아할 수 있겠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힘 곧 천간과 지지를 함께 지닌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 신이 인정한 영민한 지혜와 정보력

십이지지에 해당하는 동물들 가운데 왜 쥐가 첫째인지에 대해서는 유명한 유래담이 있다. 하늘신이 세계 질서를 이룰 적에 지상의 여러 동물들한테 특정한 날짜에 하늘로 찾아오면 도착한 순서대로 ‘띠’를 주겠다고 했다. 동물들이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고양이가 쥐한테 와서 날짜를 묻자 아무래도 고양이를 못 이길 것처럼 생각한 쥐는 하루 뒤의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른 동물들보다 앞서 길을 떠난 소의 등 위에 살짝 올라탔다. 소가 부지런히 길을 걸어 하늘 도성에 도착하자 등에서 뛰어내린 쥐가 한발 앞서 들어가 소를 제치고 일등을 차지했다. 이어서 호랑이와 토끼, 그리고 용과 뱀, 말, 양, 원숭이, 닭이 차례로 도착했다. 느지막이 찾아온 개와 돼지까지 총 열두 동물한테 신은 띠를 부여했다. 날이 바뀌자 고양이가 곧바로 도착했으나 그의 몫은 없었다. 띠를 못 받은 고양이는 화가 나서 그 뒤로 쥐를 잡아먹게 됐다고 한다.

곱돌제쥐상. 설화 속 쥐는 지략을 펼쳐 십이지 동물 가운데 첫째를 차지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어찌 보면 좀 엉뚱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사기꾼’에 가까운 쥐가 소나 호랑이, 용 같은 동물을 제치고 지상 질서의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결과는 불합리한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헤아려보면 저 쥐의 형상에서 만만치 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쥐는 열두 동물 가운데도 가장 작은 존재다. 그럼에도 저보다 수백 배 큰 동물들을 제치고 승리를 거둔다. 이야기에서 소가 ‘부지런한 노력’을 상징하고 호랑이가 ‘압도적 위력’을 상징한다면 쥐는 ‘영민한 지략’을 상징한다. 이 설화는 외적인 크기나 힘보다 내적인 지혜가 더 우선적인 가치임을 말해준다. 인간이 특유의 지혜로 세상의 지배자가 된 것을 생각하더라도 이치에 딱 맞는 내용이다. 비록 작고 약하더라도 다른 이의 큰 힘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그가 곧 진짜 능력자일 것이다. 우리에게 ‘쥐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에서 특별히 주목할 바는 쥐의 정보력이다. 쥐의 성공은 정확한 정보 분석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인 고양이를 따돌린 일이나 소를 콕 찍어서 이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쥐의 영민함을 잘 말해준다. 다만 그 영민함은 함정을 지닌 것이었으니, ‘거짓 정보’를 부당하게 활용함으로써 영원한 천적을 갖게 된 일이 그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쥐로 상징되는 지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혜는 정도正道로 펼쳐질 때 부작용 없이 지속적인 힘을 낼 수 있을 테다.

쥐는 십이지 동물 가운데 예지와 민첩성을 상징한다.

쥐가 펼친 지략과 정보력의 빛과 그림자

쥐가 남다른 지략과 정보력을 지닌 존재임은 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창세신화인 <창세가>에는 쥐가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거대한 창조신 미륵이 하늘과 땅을 가르고 해와 달을 조정한 뒤 불과 물을 마련하려 했는데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이때 미륵한테 불과 물의 근본을 알려준 존재가 바로 생쥐였다. “금덩산 들어가서 한 손에 차돌 한 손에 쇳덩이를 들고 툭툭 치니 불이 솟아나고, 소하산 깊은 산속에서 샘물이 솔솔 흘러나오니 물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쥐가 정보를 알려주기에 앞서 대가를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창조신이 준 대가는 쥐로 하여금 천하의 뒤주를 차지하도록 한 일이었다. 작은 새앙쥐가 거대한 창조신한테 당돌하게 ‘딜’을 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그를 통해 먹고 살 길이 해결했으니 괜찮은 거래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곡식을 갉아먹는 쥐를 싫어하지만 그것이 태초에 신으로부터 받은 권리라 하니 화낼 일만은 아니라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인간보다 훨씬 앞서서 세상에 존재했던 것이 쥐다. 다만 한 가지, 이 이야기에서 쥐가 신으로부터 얻어낸 바가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남다른 지혜와 정보력을 가진 존재로서 더 멀리, 더 크게 바라보았다면 그 처지가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쥐가 옥수수 위에 올라탄 형태의 연적.

쥐의 정보력을 대변하는 말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쥐가 가지는 밤의 정보는 낮의 정보보다 더 비밀스럽고 파괴적인 면모를 지닌다. <쥐가 변한 남편>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옛날에 심성 사납고 고집 센 남자가 결혼해서 살았는데 어느 날 그가 밖에 나간 사이에 똑같이 생긴 가짜 남편이 나타났다. 둘은 누가 진짜인지를 놓고 겨루었는데 승리를 차지한 것은 가짜였다. 가짜가 집안 살림을 더 세세히 잘 알았던 것이다. 그 가짜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면 그 집에 살던 쥐였다. 남자가 함부로 버린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했다고도 한다. 자기 간수를 제대로 못하며 정보를 흘리고 다니는 일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역으로 작은 정보라도 잘 활용하면 큰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물론 저 쥐처럼 따라 하라는 말은 아니다. 쥐로 상징되는 숨은 정보의 힘에 유의하고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어디든 갈 수 있는 정신의 표상

쥐에 관한 설화를 하나만 더 소개한다. 제목은 <혼쥐>다. 인간의 정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옛날에 한 여자가 낮잠 자는 남편 옆에서 바느질을 하는데 남편의 콧구멍에서 하얀 쥐 한 마리가 들랑날랑 하더니 방바닥으로 내려와 문지방을 타 넘으려 했다. 자꾸 미끄러지던 쥐는 아내가 대준 막대기를 타 넘고 밖으로 향했다. 아내는 그 뒤를 따라가며 쥐가 웅덩이나 턱 같은 데 부딪칠 때마다 막대기를 대주었다. 낯선 곳으로 한참을 가던 쥐는 산기슭 덤불에 있는 작은 굴로 들어갔다가 얼마 뒤에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쥐가 다시 남편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 뒤 남편이 잠에서 깨더니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꿈에 웬 선녀 덕분에 담장을 넘고 강물을 건너 커다란 굴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 금이 가득 든 단지가 묻혀 있더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이끌고 그 굴을 찾아가서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땅을 파보니 진짜로 금단지가 묻혀 있었다. 황금을 얻은 부부는 부자가 되었다.

쥐가 묘사된 신사임당의 ‘초충도’. 국립중앙박물관

“이 이야기 속의 하얀 쥐는 사람들의 혼이라고 한다. 그래서 ‘혼쥐’다. 왜 하필 쥐인가 하면 물리적 한계를 넘어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혼쥐는 인간의 정신적 운동의 표상이 된다. 의식이 잠든 상태에서 낯선 곳을 움직이는 이 이야기 속의 혼쥐는 ‘무의식적 상상력’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아내가 막대기를 놓아준 것은 상상력에 길을 터준 일에 해당하거니와, 그 결과는 ‘황금의 발견’으로 표현된 놀라운 성취였다. 아주 그럴싸한 연결이 된다. 사람들 내면에는 제각기 자신만의 생쥐가 살고 있으니 그것을 잘 키워 마음껏 세상을 누비게 할 일이다. 큰 꿈을 펼치고 성공을 이뤄내는 길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어떤 사람은 혼쥐가 두 마리였는데 늘상 하는 일이 도둑질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그 중 하나를 때려죽이자 비로소 그 사람은 두려움이 생겨 물건 훔치는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정보력이든 상상력이든 과다하거나 오용이 되면 부작용을 낳게 된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제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쥐의 힘을 좋은 쪽으로 잘 펼쳐내 멋진 성공을 이루어내는 경자년 한 해가 되시기를 소망한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신동흔 | 옛이야기 연구자, 건국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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