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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그 겨울 우리가 의지했던 연탄

겨울나기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파로 겨울의 초입부터 전국을 꽁꽁 얼려버린 요즘 같은 날씨에는 매서운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집안의 훈훈함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파트가 많은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전기 난방기나 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연료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도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지금도 겨울철에 하루 3번 정도 늘 난방 연료를 바꿔 넣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면 어떨까? 불이 제대로 붙기까지 30분 넘게 걸리며 가스 중독의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다면? 아마 지금의 겨울은 더 춥고 두려운 계절이 되었을 것이다. 복고풍 드라마 속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어떤 이웃은 사용하고 있는 ‘연탄’에 대한 이야기다.

광복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 시작

연탄煉炭은 가루 형태의 석탄石炭을 뭉쳐 만든 연료다. 원통 모양이며 구멍은 위와 아래를 관통하고 있다. 구멍이 뚫린 모양 때문에 ‘구멍탄’이라고도 불렸다. 연탄의 기원은 19세기 말 일본 규슈九州 지방의 모지시門司市에서 사용된 통풍탄通風炭 또는 연꽃연탄蓮炭으로 알려져 있다. 주먹 크기의 석탄에 구멍을 낸 형태로 그 모양이 연꽃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평양광업소에서 벽돌 모양의 연탄(2공탄)이 최초로 제조되었다. 1930년대 부산의 삼국상회에서 연탄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 연탄은 주로 산업용 혹은 일본인 가정용으로만 보급되었다. 1947년 대구에서 국내 최초의 자주적 연탄회사(대성산업공사)가 설립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였다.

연탄 풍로.

화덕 뚜껑, 연탄 집게, 연탄 받침.

1950년 임시 수도 부산에서 누군가 석탄과 물을 섞어 연탄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수타식 연탄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연이어 1952년에는 최초로 연탄 화덕이 개발되기도 하였다. 1956년 태백선 등 철도 개통을 계기로 석탄 생산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정책적으로 가정까지 연탄이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시작된 산림녹화 5개년 계획으로 연탄의 수요는 크게 늘어나 당시 서울의 가정 90%가 연탄을 사용하였으며, 1백여 개의 연탄 공장이 성업하였다. 전국적으로는 4백여 개의 연탄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으로 농촌까지 연탄보일러가 보급되면서 연탄은 가정 연료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며 1980년대 중반까지 전 국민의 연료로 사랑받았다. 1988년 조사에서 대한민국 가정의 약 78%가 가정 연료로 연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후 1993년 약 33%, 2000년대 약 2%로 크게 감소하였다.

국민 연료였던 연탄의 몰락은 정부가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공해를 줄일 목적으로 기름보일러를 확산시키고 아파트 건설 붐으로 도시가스가 주연료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시작되었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연탄의 원료가 생산되는 탄광의 전국적인 폐광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부산에서 연탄과 석탄이 실려 있는 수레 앞에 선 사람들을 찍은 사진.

22공탄, 연탄의 다른 이름

연탄은 구멍 개수에 따라 불리는 별칭이 있다. 현재 가장 흔히 쓰이는 ‘이십이공탄’은 구멍이 22개 뚫려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구공탄’은 연탄 구멍 개수와 관계없이 ‘구멍탄‘의 변화형으로 쓰인 이름이다.
연탄 구멍은 왜 뚫려있을까? 연탄 구멍은 공기 순환을 도와 불이 잘 붙도록 만들고, 연소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탄 구멍 개수가 표준화된 적은 없지만 수요자와 생산업자의 필요에 따라 1970년대에 가정용 19·23·31공탄, 업소용 41·42·49공탄으로 정착되었다. 이후 1978년에 22공탄으로 통일되었다가 다시 22공탄, 25공탄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이전에는 주로 19공탄을 썼다고 생각하면 된다.
19공탄으로 사용되던 연탄 구멍 수가 1970년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석탄 가공기술의 발전으로 구멍 수가 늘어났다는 설도 있으나 화력을 높이기 위한 사용자들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났다는 의견이 더 유력하다.

현재 국내 대부분 지역에서는 22공탄을 사용하지만, 경남과 전남에는 25공탄을 쓰는 지역도 있다. 과거 남부지방(전남 화순)에서 생산된 석탄은 흑연 함량이 높아 불이 잘 붙지 않았으므로 연탄불이 붙는 온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생산업자가 불이 잘 붙도록 하기 위해 구멍 개수를 늘렸던 것이다. 석탄 정제기술의 향상과 수입탄의 영향으로 지금은 25공탄을 생산할 필요가 없지만 여전히 만들어지는 이유는 관습적인 영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연탄 난로
이동식 연탄 난로
연탄 집게
부일연료주식회사에서 발행한 1972년 달력

살인탄, 겨울철 살인 복병

연탄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는 나무 장작에 비해 순간 화력은 떨어지지만, 연소 지속성과 보관에 편리한 모양 등의 이유로 가정에서 매우 환영받았다. 그러나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일가족이 모두 죽는 참변은 다반사였다. 당시 난방은 연탄 아궁이의 열기가 바닥에 깔린 구들장을 지나면서 방을 데우는, 쉽게 말해 기존 온돌에 연료만 나무에서 연탄으로 바뀐 방식이었다. 때문에 흙으로 바른 구들장이 깨지고 갈라진 곳이나 벽 틈으로 일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이 스며들었던 것이다. 연탄가스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자 어떤 기업은 온수를 이용해 바닥 난방을 하는 연탄 보일러를 개발하기도 했고 김칫국물이 연탄가스 중독에 특효약이라며 신문에 대서특필 되기도 했다.

연탄, 박물관 그리고 여전히 힘든 겨울

2019년 겨울 현재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은 많지 않다. 연탄을 쓰는 이들은 주로 소외계층으로 불리는 극빈층이다. 월동 준비로 연탄을 수북하게 쌓아둔 모습이 부자를 상징했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 세상은 너무 많이 달라져 버렸다.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겨울이 너무 어렵다. 현재는 14만 명 정도만 가정에서 연탄을 사용하며 화훼단지나 연탄구이 식당 정도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연탄 공장도 현재는 전국적으로 40여 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_‘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은 과거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어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연탄 세대인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도슨트가 되어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연탄불 갈던 이야기, 눈 오는 날 길이 미끄럽지 않게 연탄재를 깨서 흩어 놓았던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해하는 아이들 모습도 이채롭다.
필자는 마지막 연탄 세대로서 연탄의 쓰임이 적어지더라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란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될 테니까. 오늘 저녁은 따뜻한 연탄불을 가운데 두고 고기를 구우며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박윤배 | 석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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